세 번째 자연출산을 기다리며
세 번째 출산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지금까지 남다른 출산을 경험하고 있는데, 첫 아이를 물속에서 낳았고 둘째 역시 물속 - 그것도 우리 집 욕조에서 낳았다. 그리고 셋째 아이 또한 집에서 낳을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출산 경험을 공유하면 많은 경우 놀라워한다. 흔히 '자연주의 출산'이라고 불리는 방식을 선택하고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출산에 대한 '즐거운 기대감'을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운 좋게도 첫 아이를 임신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연주의 출산을 접하게 되었다. 2011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 자연주의 출산 병원은 한 곳에 불과했고, 개념 자체가 생소한 나머지 자연주의로 출산하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오해와 무지로 이를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방송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자연주의 출산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쓴 연예인까지 생겨났으니 전에 비해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자연주의 출산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대단하다, 용감하다'라고 표현한다. 어떻게 무통주사도 안 맞고 그것도 물속에서 심지어 집에서 낳을 생각을 하냐는 반응이다. 오히려 나는 기존의 방식으로 아이를 낳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 출산이란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이자 그 행위의 주체는 '산모 자신'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의료시스템은 산모를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의료인들이 정해놓은 시스템에 맞춰 출산을 '당하는' 경험은 빈번하게 이뤄지며, 그것은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임신을 한 뒤 진료과정에서부터 불쾌한 경험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혹은 당연하다는 듯이 불쾌한 의료적 행위들을 받아들인다. 이 경험들에 대해서 아직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대부분 충격을 받는다. 이는 기존의 출산 방식이 가진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불쾌한 현실을 전달해 주는 일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지만, '임신과 출산까지의 과정이 편안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산모에게 '다른 선택을 할 권리와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돕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용기를 내어 출산에 대한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고는 한다. 출산이란 생명이 탄생하는 기쁨과 동시에 위험성이 공존하는 일이며 무엇보다 여성의 남은 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때론 출산의 나쁜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을 괴롭히기도 하고, 반대로 만족스러운 기억은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는 아이를 둘 낳아보고 이제 세 번째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행복한 출산을 경험한다면 그 기억은 평생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지금도 첫 번째 출산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고 엔도르핀이 돈다. 미치도록 아팠지만 미치도록 황홀했는데, 아팠던 기억은 잊혔지만 황홀했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진통이 시작되고 너무 아파서 이제 때가 되었겠지 하며 병원을 찾았는데 아직 1cm도 열리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좌절하며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밤새 진통의 파도를 넘기며 자궁이 열리는 운동을 계속하다가 동이 틀 무렵, 죽을 정도로 아픈 지경이 되어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었다. 아파서 말도 못 하고, 기어서 병원문을 밟을 정도가 되어야 진짜 진통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닥치니까 실감이 났다.
이미 이틀간 가진통으로 진을 뺀 뒤라 체력은 바닥났고, 잠이 쏟아졌다. 잠을 자다가 진통이 오면 깨어나 호흡을 하고 다시 잠을 자는 일을 여러 시간 반복했다. 그리고 아침 8시. 자궁문이 다 열렸을 때 어디서 낳고 싶냐는 질문에 '물 속이요'라고 답했다. 따뜻한 욕조에 들어가 있으니 고통이 경감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래도 아프지만, 무통주사를 맞는 효과가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그래서 난 수중분만을 강추한다!). 30분 정도 힘을 준 뒤 아랫배가 불타는 고통을 마지막으로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에는 언제 고통이 있었냐는 듯 행복하기만 했다. 나와 아이 둘 주변이 온통 환한 빛으로만 가득 차 있는 느낌! 그렇게 황홀한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쁘고 또 기쁘다.
두 번째 출산은 좀 더 쉬울 거라고 예상했지만 역시 모든 출산은 특별하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정답이었다. 둘째는 양수가 터지고 51시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보통 양수가 터지면 아이가 바로 나온다고 알고 있지만 진통이 시작되어야 분만의 시작이다. 많은 경우 양수가 터지면 바로 촉진제를 맞고 진통을 일으켜 빠르게 분만을 진행하도록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고자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고 의사와 조산사 선생님도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물론 양수가 터지고 이틀째가 되자 초조한 마음이 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겁은 나지 않았다. 일주일까지도 기다린다는 기록을 찾아가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자 애썼고,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하는데 시간을 썼다.
진통은 막상 시작되자 빠르게 강도가 세어졌다. 가진통이 없었던 덕분에 소진된 체력도 없어 마지막 순간까지 견뎌낼 체력도 충분했다. 욕조와 침대를 오가며 5시간 정도 진통을 했고, 중간에 저녁식사와 과일 디저트까지 챙겨 먹었다. '보통 둘째는 빠르면 30분, 보통 2-3시간 만에 분만이 끝난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진행이 느릴까..' 하는 의구심은 들었다. 알고 보니 둘째는 탯줄을 목을 두 번 감고 있었고, 그래서 (살고자) 천천히 내려온 것이었다. 아이가 자궁을 빠져나오자마자 조산사님은 아이 목에 감긴 탯줄을 풀어내고 호흡을 확인했다. 많은 경우 태아가 탯줄을 감고 있으면 고민 없이 제왕절개를 선택한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병원의 의료진들은 충분히 자연분만을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셨으며 산모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자연출산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혹여나 산모가 겁을 먹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출산을 포기할까 봐 이 사실을 이야기를 하는 대신 수시로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출산을 도우셨다. 덕분에 나는 마음 편히 진통을 견뎌내고 힘을 주었으니 아, 천만다행이었다.
지금은 담담히 적어 내려가지만, 두 번째 출산은 참 드라마틱했다. 촉진제를 거부하며 끝까지 버틴 나의 고집 덕분에 남편도 마음고생을 하고, 프랑스에서 오신 시부모님도 마음 졸여가며 곁을 지키셨다. 둘째 임신 중에는 직장에 큰일이 많아 몸살도 자주 나고 스트레스로 안면마비까지 왔었으니 수많은 역경을 견뎌내고 해낸 출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아이를 비롯해 온 가족이 함께 내 집에서 축제처럼 즐긴 출산이었으니 그 감동은 남다르다.(그 여정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저서 <프랑스식 결혼생활>에도 담겼다)
그리고 세 번째 출산. 이제 베테랑 소리를 들을 만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하던 데로 하면 되지 걱정할게 뭐 있겠어하는 느긋함으로 아이를 기다리는데 그러다 보니 사실 별 준비라고 할 것도 없다. 다만 이사 온 집 화장실에 욕조가 없어서 어찌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동식 욕조를 구매해야 할 것 같아 열심히 온라인 몰을 검색하는 중이다. 욕조를 거실에 설치하고 아이를 맞이하면 커다란 창문 밖으로 산 풍경도 볼 수 있을 것이고 자연과 하나 되어 출산하는 기분이 들겠지? 게다가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교수 기숙사인데, 이 곳에서 출산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기숙사 친구들이 경사스러운 일이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기다려주는 모습 또한 가슴 뭉클하다. 신음소리가 온 기숙사에 울려 퍼질까 봐 조금 걱정이 되어 소란스럽지 않게 출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다. 후후~ 조용히 아래로 내뱉는 호흡을 다시 연습해본다.
아..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출산이 코 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아픔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고통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지나가고 기쁨은 오래갔으면 좋겠다. 출산을 기다리는 막달은 하루하루를 넘기는 일이 힘들지만 이 시기가 곧 끝나고 아이를 만나 행복할 순간을 상상하면 얼마든지 견뎌낼 힘이 생긴다.
아가야, 너와 함께 하는 출산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나는 순간은 너무나도 황홀할 거야. 엄마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단다. 그 날을 기다리고 있어.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함께 해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