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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린 이수민 Mar 12. 2020

베토벤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림으로 푼 베토벤의 음악들

베토벤의 250번째 생일


올해는 음악의 성자, 베토벤(1770~1827)이 탄생한지 25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베토벤 프로그램으로만 꾸며진 공연들이 기획되었죠, 한국에도 베토벤 특집 공연이라 해도 무방할먼한 공연들이 많이 잡혀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속속 취소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이눔시키...)



원래 이렇게나 많은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에 대하여 흥미로운 말이 있습니다.




바흐는 신을 노래하고,
모차르트는 인간을 노래하고, 
베토벤은 자기자신에 대해 노래한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음악가들의 음악가


몇몇 톱스타들에게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습니다. 다른 이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실력과 경력,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에게 붙는 말이죠. 이런 이들은 후배들에게 큰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베토벤은 '음악가들의 음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열악한 성장배경과 음악인에게는 치명적인 청각 장애를 이겨내고 실력으로 인정받고아직까지도 클래식 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사랑받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음악가 베토벤


1789~94년 프랑스 혁명 이후 귀족은 무너지고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시민계급이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 세계에도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음악가는 더 이상 왕족이나 귀족에게 고용되어 주문된 곡그들의 취향에 맞는 곡만을 작곡하지 않고 작곡가 자신의 철학과 취향에 맞는 곡을 작곡할 수 있게 됩니다이러한 변화로 인해 음악계에서는 <낭만주의사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왕족, 귀족의 굴레를 벗어났다고 해도 일반 대중들이 좋아하고 유행에 따르는 곡이 곧 돈이 되었습니다. 작곡가도 사람인데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작곡가들은 자신이 작곡하고 싶은 곡 vs 대중이 좋아하는, 돈이 되는 곡 사이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베토벤은 생계 걱정 없이 자신이 작곡하고 싶은 곡들을 마음껏 작곡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작곡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당시 대부분의 음악인은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낮은 신분의 악사,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불안한 직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예외적으로 예술 그 자체로 여겨졌고당대 사람들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프리랜서 작곡가 1세대, 베토벤









베토벤의 대표곡들 소개


로망스 2

흔히 ‘로망스’라고 불리는 이 곡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라는 조금은 긴 정식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연상되듯이 느리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곡이죠. 베토벤은 총 2개의 로망스를 작곡했는데 이 중 2번이 좀 더 유명하고 자주 연주됩니다.

베토벤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딱 한 개 남겼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부를 때 ‘협주곡 몇 번’이라고 따로 부를 필요가 없죠. 하지만 그가 작곡하려고 했던 바이올린 협주곡이 한 곡 더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작곡하다가 미완성으로 남긴 곡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개의 로망스들은 완성하지 못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느린 악장을 대체할 목적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되기도 합니다.

베토벤의 작곡시기를 초, 중, 말기로 나눌 때 비교적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작곡된 로망스 2번이기에 베토벤이 흠모하던 모차르트 음악의 영향이 분위기와 형식면에서 물씬 묻어납니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대표곡인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2악장,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의 2악장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베토벤의 곡들과 모차르트의 곡들을 연달아 들어보며 로망스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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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로망스 2번을 듣고 그린 그림



음악을 들으며 그림 그리는 과정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Kreutzer’

문학과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작곡가들이 시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붙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클래식 곡을 듣고 영감을 받아 작품을 쓰는 작가들도 있죠.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톨스토이(1828-1910)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듣고 동명의 소설을 썼습니다. 금욕과 성적 절제라는 청교도적 신념에 따라 살았던 톨스토이 개인의 가치관이 들어간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편과 다툼이 잦았던 아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그녀는 한 파티장에서 미남 바이올리니스트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합니다. 그 둘의 이중주를 들으며 치밀어오르는 남편은 결국 아내를 칼로 찌르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기차에서 만난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베토벤의 음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격렬하게 내달리는 이 곡의 도입부를 듣고 있자면 소설 속 남편이 느끼는 격렬한 감정, 애증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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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프레스토를 아세요?
이 소나타는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건 헛소리이고 거짓말입니다. 음악은 영혼을 자극할 따름입니다.
 에너지와 감정을 끌어올려 파멸로 이어지게 합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 중



베토벤은 작가 톨스토이, 화가 프리네에게도 영감을 주어 동명의 작품을 남기게 했다.










현악사중주 11번 세리오소 Serioso’

유명한 클래식 곡들은 대개 후대 사람들에 의해 별명이 붙여지고 불립니다. 우리가 흔히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운명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듯이요. 하지만 이는 베토벤이 직접 붙인 제목이 아니므로 정확한 제목으로 불러주는 것이 맞습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1번은 예외적으로 베토벤이 직접 <세리오소>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점에서 다른 곡들과 차별됩니다. ‘엄숙, 성실’이라는 뜻이죠.

하이든, 모차르트의 계보를 이어 현악사중주라는 장르의 틀을 다지고 발전시킨 베토벤. 하지만 왜인지 이 곡을 작곡하고 난 후 10년 동안 현악사중주를 작곡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베토벤 중기의 작곡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곡 중에 하나로 꼽힙니다. 




현악사중주

클래식은 가사가 있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나만의 상상력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음악이 클래식입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각각의 악기소리로 가상의 상황과 인물을 그려보곤 합니다. 비슷한 듯 다른 네 명의 사람이 모여 격렬한 토론을 하는 듯한 <세리오소>1악장을 예로 들어볼까요. 


제1 바이올린은 주장이 강한 중년 남자, 제2 바이올린은 중간에서 분위기를 매끄럽게 만드는 여자, 비올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소심해 계속 중얼거리기만 하는 중년 남자, 첼로는 약삭 빨라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박쥐같은 젊은 남자. 이런 식으로요. 연주를 감상하면서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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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3번 영웅 Eroica’

교향곡 3번은 고전주의 전통적 음악 스타일을 계승하던 베토벤이 그 족쇄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 창작자의 자유를 마음껏 펼친 작품입니다. 

타락하고 사치하던 왕과 귀족에게 시달리던 시민들에게 권력과 자유를 찾아주리라 믿었던 나폴레옹에게 헌정할 요량으로 작곡한 곡이기도 하죠. 그래서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의 이름) 교향곡’이라고 표지에 적어놓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권력을 잡자마자 자유, 평등, 박애라는 계몽주의 정신을 기대하고 있는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베토벤은 화가 나서 ‘보나파르트’라고 쓰인 부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영웅’이라는 제목을 새로 붙였습니다. ‘한 때 위대하고 영웅적이었던 이를 추억하며’라는 추모의 글귀와 함께. 

결국 이 곡은 창조자이자 자유인이었던 베토벤 자신을 대변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첫마디부터 음들이 시원시원하게 진행되는 1악장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악장이자 막힌 속을 뚫어주기에 제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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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가 나폴레옹의 주문을 받아 그린 그림 <나폴레옹의 대관식>,  확대한 부분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1악장을 듣고 그린 그림


음악을 듣고 그림 그리는 과정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Emperor’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베토벤의 생활이 궁핍하던 때에 그를 후원해 주던 루돌프 대공에게 바쳐진 곡입니다. <황제>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흔히 연결시키는 나폴레옹과도 관련 없는 곡입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곡의 성격 때문에 나중에 붙여진 별명이죠. 

베토벤은 작곡가이기 이전에 그 자신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기에 그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큰 완성도를 갖고 있습니다특히 <황제>의 2악장은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자신의 장례식에 써달라며 직접 선곡한 곡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생의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음악으로 이 곡을 골랐다는 것은 그만큼 성스럽고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악 같아서가 아닐까요? 

걱정 근심 다 내려놓고 떠난 따뜻한 휴양지의 바닷물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주는 2악장, 아래 동영상의 20분 47초부터 연주되니 꼭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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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9번 합창 Choral’

후대 작곡가들에게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절대적인 기준을 마련한 베토벤그 중에서도 교향곡 9번 <합창>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연말 혹은 연초에 많이 들리는 음악이기도 하죠. 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던 베토벤은 자유로운 표현력을 가진 언어가 음악과 만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습니다당시에 ‘성악’과 ‘기악’의 결합은 오페라나 가곡 등의 장르에만 제한이 되어있었는데 베토벤은 교향곡까지 그 영역을 넓힌 것입니다. 


괴테와 동시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독일 작가 쉴러(1759~1805)의 송가 '환희에 붙여 An die Fraude'를 가사로 채택, 대규모의 합창 파트를 교향곡 9번의 4악장에 넣었습니다. ‘환희와 기쁨 속에서 하나 되는 인류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는 합창을 듣고 있노라면 그 압도감과 성스러움에 온몸이 짜릿해지곤 합니다. 


이 곡을 듣고 영감을 받은 화가가 있었습니다. ‘키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1862~1918)죠. 1902년, 클림트가 이끌었던 빈 분리파 전시회 주제는 ‘베토벤’으로 당시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베토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추모, 존경을 표했습니다. 말러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편곡하여 직접 지휘했고, 클림트는 3면의 긴 띠처럼 생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이 ‘베토벤 프리즈’로 지금도 빈 분리파 회관(제체시온)에 가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제체시온 지하의 <베토벤 프리즈>
1면
2면
3면




합창교향곡 4악장 맨 끝 부분의 테마가 워낙 유명해서 그 부분만 친숙한 분들이 많으실텐데 이 기회에 전곡 다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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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몬트 서곡 Egmont Overture


실존인물 에그몬트 백작의 초상화

'에그몬트'는 실존 인물로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16세기, 네덜란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전쟁에서 훈장까지 받은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고전주의 작가인 괴테(1749~1832)가 이 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아서 희곡 <에그몬트>를 쓰고, 베토벤은 괴테의 <에그몬트>을 위한 동명의 서곡을 작곡했습니다. 


베토벤은 '에그몬트 백작'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웅장하고 비장한 도입부를 작곡합니다. 곡 전체에 걸쳐 고통에 맞서고자하는 한 인간의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데, 이는 베토벤 자신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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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32개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듣는 이에게도 치는 이에게도 이 소나타들은 하나의 도전입니다. 32개 중에서 제일 친숙하고 유명한 곡을 꼽아보라고 하면 8번 비창 소나타, 14번 월광 소나타, 23번 열정 소나타 등이 언급될겁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비창 소나타 2악장에 제일 애정이 가더라고요. 마음이 헛헛할 때 미지근한 물 샤워처럼 몸과 마음을 데워주는 느낌이랄까요. 온통 갈색인 숲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위를 걷는 느낌도 듭니다. 


따뜻한 물로 반신욕 듯 한 느낌



베토벤 비창 소나타 2악장을 듣고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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