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포기에는 어쩌면 그보다 더한 용기가 필요하다.
동부간선 도로에서 강변북로를 넘어가는 구간이었다. 우측으로 마포 쪽으로 빠지는 그 구간을 넘어서며 나는 울어 버렸다. 조금은 마음을 다 해서 우는 편이 속은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부재한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이 사라져 간다.
.
2년 전 즈음이었다. 내가 독립출판물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그즈음이었다. 1회성의 독서 모임의 장소에서 출판물들을 처음 접했고 손으로 표지들을 만지며 글을 쓰고 싶던 욕구를 충족할 방법들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그렇게 만만 해서였다. 그 주, 금요일 밤부터 나는 몇 달을 이대, 염리동의 그 책방을 일주일에 한 번씩 들렀다.
블로그를 통해 검색하다 보니 동네, 노원구에도 2주 전 즈음 그런 공간이 생긴 것을 알았다. 책방 프롤로그처럼 회사를 그만두게 된 마음과 책방을 준비하면서의 시작 과정들을 블로그에 적어 놓으신 사장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나는 노원에서 꽤나 오래 살았는데 동네에 이런 공간이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카페가 들어서는 것도 우리에게는 심상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조금 쉬운 마음으로 동네 친구들의 연대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5년의 봄이었다. 정확히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맘 때 즈음의 날씨였고, 시간은 네시였다. 용화여고 건너편의 오래된 건물의 2층에 걸린 소규모 독립출판 "반반 북스"를 처음 찾은 날은 그랬었다. 오후 네 시여서 건물 안에는 빛이 만연했다. 블로그를 보지 않았으며 찾지도 못 했을, 지금까지도 수도 없이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공간을 지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내가 사장님을 찾아서 처음 한 말은 우습게도 이런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조만간 독립출판물을 낼 건데 이 곳에 나중에 입고를 하러 올 거예요."
그리고는 독립출판물을 한 두권 사서 집으로 돌아갔고 그게 사장님과 나의 첫 대면이었다. 패기인지 객기인지 알지 모를 말들을 사장님에게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조금 과했던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나는 그때에는 그게 정말 가능한 일들처럼 보였기 때문에 조금 덜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말을 들어주는 사장님의 선한 눈빛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패기인지 객기 인지도 모를 그 말을. 사장님은 오늘도 재운씨는 글을 쓰니까 라며 무슨 조그만 원고지 같은 것을 챙겨 주었는데 아직도 나는 그 날의 약속과는 꽤나 멀리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마음속으로 감사해했다. 저의 실패를 외면해 주어 감사합니다.
책방에서 처음으로 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에는 사실 나는 책방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 있었다. 인터넷 및 미디어의 발달,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텍스트라는 것을 접하는 일은 너무 쉬워졌고, 어린 시절처럼 동아일보나 중앙일보를 구독하여 보지 않아도 넘쳐나는 텍스트는 굳이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찾지 않게 한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다. 읽은 것도 볼 것도 너무 많은 시기에 우리는 게다가 바쁘기까지 했다, 입에 풀칠을 위해.
반반 치킨데이, 책방에서 처음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고, 공간을 찾는 것은 쉬우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에 밀려 찾지 않는 일이 더 쉽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책방에서 처음 독서 모임이라는 것을 모집했고 나는 노원구 주민의 사명감으로 독서 모임에 참여했었다. 독서량이 많지 않았던 나는 솔직히 책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그 사명감이 더 컸었다. 그즈음은 성묘를 가야 했던 가을이었다. 4명이서 모임을 했던 반반 북스 책반 1기는 서로의 책을 돌려 읽으며 약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을 함께 그 원 안에 머물렀다. 그 모임에서 우리는 일상의 변화를 이야기했고 서로를 응원했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겨울이 되면 책을 팔아서 난방비를, 여름이 되면 책을 팔아서 전기세를 내야 하는 반반 북스는 그렇게 해를 두 번 넘기고 2017년의 5월 10일까지 공식적인 오픈을 하기로 한다고 했다. 알잖아요,라고 대답하는 사장님에게 굳이 더욱이 질문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염려도 했고 조언도 했고 걱정도 했고 책방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조금 좋아했었다. 우리 동네에 책방이 있다는 것을 좋아한 사실은 나 혼자는 아니었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연대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책방 두 곳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어쩌다가 기다림이란 것을 생각했다. 기다림은 너무나 힘든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언제 일어날지, 어떻게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들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기다림에는 시간이 들고 마음이 쓰인다. 나는 그래서 사장님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기다림을 일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이용하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연대해서 공간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되고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기다리는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공간과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을 좋아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