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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17. 2022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욕구의 흔적

기록, 기록, 기록.





기록은 남는다. 나의 존재가 여기에 존재했다는 흔적이 남는다.

기록하지 않'는'다면, 내 안의 기억조차 점차 옅어져 사라진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나는 죽음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렇다면, 사라져 버리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기록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그보단 주체적인 이유가 내 안의 기록하고자 하는 욕구를 일깨운다.


기록한다는 것은 삶을 그리고 나를 곱씹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갈 곳 잃은 이처럼 붕 떠있는 영혼에게

두 발 딛고 이곳에 서있을 수 있도록 한다.

허락을 받은 것과 다름없는 영혼은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그때서야 온 감각으로 나라는 존재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게 써 내려가며 흙탕물처럼 혼탁했던 내면이 점차 맑아진다.

마치 신기루처럼 잡힐 듯 말 듯 했던 것들이

나의 언어로 쓰이며 마침내 두 손에 잡힌다.

누구의 구속이나 의심 없이 나의 관점으로

무엇이든 재정의해도 좋다고 허용되는 시간이다.


기록의 과정은 영혼의 숨구멍을 트이게 함과 동시에

그 열린 숨구멍을 통해 충만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한다.

무언가 일렁이며 배불리 차오르는 느낌뿐만 아니라

막혀있던 물길이 뚫려 빠르게 배수되는 개운한 느낌 또한 받게 된다.


'나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닐지라도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 '삶'은 주어졌다.

지구에서 한 생명체로써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똑같이 주어졌지만

모두가 풍요로이 삶을 누리다가 가진 않는다.


이를 좌우하는 것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관점이라 생각한다.

관점은 선택할 수 있는 요소이다. 이 '선택권'을 십분 활용하며 살아가고 싶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가장 개인적인 기록을 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첫째로, 과연 '나의' 관점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둘째로, 현재의 관점이 내가 '선택한' 관점인지를 성찰해볼 수 있다.

셋째로, 나의 관점이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넷째로, '관점'을 다시 정립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다섯째로, 내가 '취한' 관점으로 삶을 재정의해나가며 '나다운' 삶을 살아낼 힘을 기를 수 있다.


결국, 내 안의 일렁이기 시작한 '가장 개인적인 기록'의 욕구는

네게 주어진 삶을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너의 삶으로 살아내길 바라는

영혼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다가 영영 너로 살지 못한 채로 삶을 마감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내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의 흔적'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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