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시나 봐요? 가서 뭐 하세요?”
몇 년 전, 김포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이었다. 평일 아침에 캐리어를 들고 탄 내가 궁금했는지 기사님이 친근하게 물었다.
“네. 제주도에 걸으러 가요. 걷는 거 좋아하거든요."
"걷는 거 좋죠. 저는 자전거 타요."
그때부터 기사님의 우리 동네 자전거 길 안내가 시작됐다. 자전거 타기 좋은 길부터 그 길마다 펼쳐지는 풍경, 그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대와 코스까지.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고 택시가 멈추자, 그가 뒤를 돌아 핸드폰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들여다본 핸드폰에는 검은색 자전거 앞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그의 모습이 보였다. 딱 붙는 라이딩 복장을 잘 갖춰 입은 채였다.
그와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내가 그 길들을 모를 리 없었다. 나를 사로잡았던 건, 길이 아니었다.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이었다. 정작 여행을 가는 내게는 부재한 그 표정. 그는 일상에서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여행 가서 뭐 하세요?”라는 그의 질문이 맴돌았다. 보통은 '어디에 가는지'를 묻는데, 그는 '뭐 하는지'를 물었다. 여행에서 내가 하던 것들을 찬찬히 떠올려봤다. 액티비티도 즐기지 않고, 별다른 취미도 없는 난 여행을 가서도 대부분 먹고, 걷고, 잔다. 일상 노동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 빼고는 굳이 떠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늘 도피하듯 여행을 떠났다
계약 종료가 되는 1월이면 늘 여행을 떠났다. 죽어라 일만 했던 1년을 보상받고 싶었다. 잠시라도 다음 일자리 걱정에서 해방되고도 싶었다. 그래도 삶은 살만한 것이라고, 나도 행복할 수 있다고 느끼기 위해 무작정 떠났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가면 울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힘들게 일하는 동안 놀고 있던 건가.’ 이런 생각이 나를 또 한 번 주저 앉혔다. 왜 나만 여유도 없이 살아야 하는 건지 분통이 터졌다. ‘돈 좀 벌어놓고, 경력 좀 쌓아놓고.’라는 생각에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렇게 나를 다그치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했다.
올해는 여행을 관뒀다. 그 시간과 돈으로 일상을 풍족하게 보내기로 했다. 먼저 방 청소를 했다. 쓰지 않는 것들을 버리고, 내 생활동선에 맞춰 물건을 정리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다른 사람이 볼 서류만 열심히 썼지, 나를 위해 무언가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뭐를 해보면 좋을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궁리하는 아침이 낯설고 설렜다. 차근차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으로 꾸렸다. 따뜻한 머그컵을 두 손으로 쥐고 마시는 차, 아늑한 색감의 조명, 기분 좋은 햇살이 비치는 오후의 느긋한 산책, 편하고 그냥 좋은 사람과의 대화, 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마음껏 게으름 피우는 아침.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생각보다 별게 아니라서 안심이 됐다.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마다 일상을 돌봤다
이제는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마다 일상을 돌본다. 일할 때는 일 년 내내 바꾸지 않던 침대 위 이불을 계절 별로 바꿨다.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마주하는 것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아기를 돌보고 정원을 가꾸듯 살피고 돌봤다.
손님이 올 것처럼 정성스럽게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다른 사람을 대접하듯 나를 대접했다. 일할 때는 그렇게 부정적이고 화를 잘 내던 내가 잘 먹고 잘 자니 너그러워졌다. 여행을 가서 걷고 싶을 때마다 당장 나가서 동네 뒷산과 골목을 걸었다. 먼 곳을 꿈꾸기보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나갔다.
이렇게 나를 챙길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한다고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조금 여유롭게 생각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마음을 다잡기보단 다독인다. 일상을 충분히 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쌓은 일상의 풍요로움이 내 마음에 한 뼘 정도 여유를 만들어 낸다.
예전에는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처럼 매일 나를 다그치며 살았다. 일이 아닌 나를 채우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를 잘 돌보고 나니, 버틸 힘과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이제 더는 먼 미래에 목표를 위해, 지금의 나를 들볶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채우며 바라는 삶을 지금 여기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