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류장 Sep 27. 2018

가족이 주는 의미

추석을 맞이하여

유난히 햇빛이 반짝거리고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는 아침,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 눈비비고 방에서 나오면 주방에서 분주한 엄마.

이번 연휴의 아침 풍경은 주로 이랬다.


세상 그 어떤 맛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맛을 입안 가득 채워넣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쁜 시간, 엄마 음식을 잔뜩 먹을 수 있는 날들이었던 요번 명절.


원래대로라면 명절을 맞이하여 온 친척이 모여 차례도 지내고, 분주한 인사와 푸짐한 음식들로 잔치를 벌일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고속도로 위에서 긴 시간 보내지 않고 우리 가족끼리 소박하고 단촐하게 추석연휴를 보내기로 했다.  


딸래미의 알러지와 고기 킬러인 아들내미의 식습관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엄마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임금님 수랏상 부럽지 않게 준비해두셨고,

우리는 그저 끝없이 먹고, 먹고, 또 먹으며 며칠의 연휴를 보냈다.


영화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모일 때마다 한 편 이상의 영화를 함께 본다.

이번 추석엔 특별히 놀러갈 계획도 세우지 않아서 차를 끓이고 과일을 놓은 채 느긋하게 1일 1영화를 시청했다.

예고편을 보고,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같은 멋진 평론가의 추천작들도 살펴보며 신중하게 영화를 선정하지만 모두의 취향저격에 실패할 때도 종종 있다. 요번엔 <당갈>, <올더머니>와 같은 실화바탕의 영화와 가볍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들을 번갈아봤다.

영화가 끝난 뒤에 엄마가 바삭하게 부쳐주는 김치전같은 것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도 빼먹을 수 없는 재미다.  

"영화에 나온 그 집안 손자는 결국 마약중독으로 죽었다는데요?" "게티박물관이 무료개방된 것은 그 욕심많던 부자의 바람이었대요." 호기심많은 남매의 검색력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혹시 급성 알러지로 온가족을 고생시킬까 연휴 전 금요일에 미리 병원에도 다녀왔고, 새로 만난 담당의사쌤이 세세히 코칭해주신 대로 식단 주의하고 처방약도 잘 챙겨먹었더니 알러지고생도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잠결에 내가 팔을 긁는 것을 보았다고 걱정하셨지만. 이정도면 무척 감사하다.

오히려 지난 달 교통사고로 아픈 엄마가 자꾸만 걱정되었다. 몸이 아픈대도 불구하고 자꾸만 뭘 더 해주시려 하시고, 쉬지 않고 바삐 움직이시니 더 죄송했다. 어서 나으셨으면.


전국에 뿔뿔이 흩어사는 가족들이기에 모이는 순간이 갈수록 더욱 소중하다.

지금 보고 나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 지 알 수 없으니 엄마는 더 많이 좋은 걸 먹이고 챙겨주고 싶어하신다.

겨우 며칠 머물고 훌쩍 떠나 다음 겨울에야 또 다같이 모일 것이다. 그런 아들딸이 그리우실테니 만난 김에 예쁜 동네의 카페에 찾아가서 음료마시며 몇 마디 이야길 나누고, 인증샷을 찍는 것도 가족모임의 주요코스다.

요번에는 새롭게 조성된 신시가지 동네로 놀러가 산책도 하고, 카페도 가고, 지나가는 분에게 부탁해 가족사진도 찍었다.


순식간에 연휴가 다 흘러가고 마지막 날, 나만의 집에 돌아와 홀로 저녁을 먹으려니

어쩐지 벌써 가족이 그립다.

바리바리 싸주신 엄마 반찬을 아껴먹으며 고향의 본가를 추억하다보면 또 다음 만남이 오겠지.


떨어져 있을수록 애틋하지만, 함께 있을수록 마음 든든한

나의 가족.


 







작가의 이전글 머릿 속 계획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