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발견한 나의 이면
넉넉하고 솜씨 좋은 분이 우리 모임을 위해 홈플러스 특가를 놓치지 않고 사다 끓여낸 끝내주는 알탕을 먹었다. 무가 들어가 국물 맛이 시원했다. 콩나물도 가득 있었고 고소한 어란도 푸짐했다. 쌀쌀한 가을 바람에 뜨끈한 국물이 당겨서 그랬는지 점심을 적게 먹어 배가 몹시 고파선지. 이렇게 얼큰하고 맛있는 알탕을 먹은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찹쌀과 현미도 넣고 막 지어낸 윤기도는 쌀밥도 한 그릇 가득 먹었다. 동그랗고 기다란 원통의 모짜렐라 치즈를 하나 하나 썰었다. 식칼에 힘을 주면 치즈는 잘려지지 않고 납작하게 눌렸다. 얇게 자르는 것이 어려워 큼직큼직하게 썰었다. 카프레제를 만들 토마토가 없어서 귤을 올려봤더니 맛이 영 아니었다. 올리브를 썰어 올리고 올리브유를 뿌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화려한 빵도 종류별로 조금씩 뜯어 먹고 내가 사들고 간 떡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저녁을 보냈다. 그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외롭다고 징징대며 늘어진 내 모습이 어쩐지 꼴사납게 느껴진다. 여태까지 나는 혼자서도 생활을 풍족하게 꾸리는 걸 참 잘해왔는데. 어떻게 갑자기 나를 실망시킬 수가 있니. 갑자기 나랑 헤어지고 싶은 기분이 좀 들었다. 근데 나는 나라서 헤어질 방도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나를 좀 더 분석해 보기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이러는 이유가 있다면 해결할 방법도 어딘가엔 있겠지.
이런 저런 모임이 많아도 아직 서로를 잘 알고 아껴주기에는 너무 얕은 관계들이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도 어쩐지 외로움이 가시지가 않는다. 어제의 모임은 웃을 수 밖에 없게 하는 온갖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내면이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인 것을 안다. 마음을 열지 않고 있는 건 나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게 된 것은 정말 오래됐다. 아홉 살에도 친구들 무리에 뭉쳐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하며 노는 것보다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 속 세계에 빠지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야근이 많던 전 직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한테도 그랬다. 어느 날은 나보다 한참 나이 많던 한 선생님이, 나를 가르키며 "J는 통 자기 얘길 하지를 않는 것 같아."라고 했다.
나는 "아, 그런가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하고 말았다.
내가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을 아는 친구는 두 명 뿐이다. 이 밖의 다른 친한 친구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가족도 물론이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게 될까봐 도리어 두렵다. 나를 들키는 것만 같아서다. SNS도 비공개로만 운영한다. 아주 적은 사람만 볼 수 있다. 자주 업로드 하는 것도 아니면서. 내 사진과 나의 일상에 대해서 많은 이가 알아채는 것이 무서워서다. 연약하고 혼란스러운 내면과 일상을 나의 가장 가까운 이들만 알았으면 좋겠다.
S는 자신이 겪은 이별과 그리움과 슬픔에 대해, 전애인에 대해 친구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고 했다. 아픔을 털어놓는 것은 그 자체로 정리가 되고 치유가 된다. 말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S의 말이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친구들에게'라는 대목 때문이이었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내가 아프고 힘들고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나는 상처에 대해 털어놓지 못했다. 친구들을 만나서는 웃고 떠들 수 있는 다른 이야기를 하며 그저 재밌게 놀았다. 지쳐서 마음이 너덜너덜한 데도 잘 부여잡고 있던 날, 피정에서 강의를 진행하던 강사님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강의가 끝나고 상담을 요청했다. 단지 몇 가지 물어보고 싶었던 것인데, 어쩌다보니 펑펑 울고 있었다. 나중에 세월호 추모를 갔을 때,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우연히 만난 내게 선생님은 본인에게도 소중한 의미가 담긴 묵주를 선물해 주셨다. 나는 매일 이 묵주를 지니고 다녔다.
어느 날은 성당의 담당 신부님과 일종의 의무적인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요청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만 하는 면담이었다. 카페에 앉자마자 시작된 면담은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 이것 저것 물어 보시는 것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고 간단하게 말했다. 내가 신앙에서 희망을 발견했던 순간은 내가 많이 무너져 내렸던 일들과도 연관이 있었다. 신부님은 조금 놀라신 것 같았다.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너는 유달리 밝고 명랑해서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나는 그저, 다들 모르니까 이야기 말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렸다.
친해지는 데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나의 이야기를 굳이 꼭 많이 해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몇 가지 에피소드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몇 번 만난 것만으로도 가깝게 느껴지는 사이도 있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관계를 더 돈독하고 깊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는 조금 더 나의 시간을 할애하고, 나의 이야기를 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현대인은 다 그런거 아닌가, 누구나 스마트폰과 노트북 네모에 갇혀 있는, 인터넷 사이트의 연대가 실제적인 관계보다 일시적이고 편리한 사회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들 그렇단 말로 쉽게 넘어가주지 말아야지. 일상적인 나를 나누고 보여줄 수 있는 용감함을 쪼끔 더 가져야겠다.
소심한 겁쟁이인 내 모습에 대해 들여다보게 된 외로움의 근원 찾기.
도전적이고 용감한 나도 나고, 꽁꽁 숨어 걱정 많은 나도 나다.
쓰고보니 나랑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다. 이런 날도 있으면,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뭐. 고생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