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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필 Jul 03. 2020

#003 011에서 010으로

작심3일차

얼마전 뉴스에서 SKT의 2G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기사를 접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할 기사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달랐다.

바로 011번호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부터 써오던 번호, 자전거 세계일주를 5년 가까이 가는 동안에도 유지했던 번호,

모두가 3G 서비스를 이용할때, 에그를 들고 다니면서까지 사용했던 2G서비스.

LTE서비스가 시작되고 나서는 정식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유지하고 있던 번호 011.

사실, 진작에 없애버렸어도 이상할 게 없는 번호였는데, 왜인지 모르게 그러고 싶지 않아서 유지하고 있던 번호 011, 그 번호를 오늘 010번호로 바꾸고 말았다.


예전에 010 번호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결국 011번호 그대로 LTE도 5G도 이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기계안에 번호를 입력하는 것이 011이면 안되고 010이어야만 된다는게 상식적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번호통합이라는 그것을 지키기 위할 뿐,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제는 011이라는 번호에 대한 프리미엄도 무의미하기에 지내다보면 011번호로 모든 이동전화 서비스가 가능해질거라는 그런 착각을 꽤 오래 한 셈이다.


가만보면, 참 무식하고 비경제적인 생각으로 011번호를 유지했었다.

불편을 감수하는 것을 포기하고 에그도 없애고 그냥 LTE폰을 새로 구매해 010번호를 부여받아 생활했다. 카카오톡이 필수인 시대, 스마트폰이 없는 삶은 적어도 내게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달에 최소  1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꾸준히 내며 011번호를 유지해 온 것이다. 특별이 몇몇의 오래된 지인들과 비밀연락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최근 3년간 011번호로는 사실 아무런 연락도 주고 받은 것이 없으니 약40여만원의 돈을 그냥 날린 셈이다. 단지 아직 2G폰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번호가 있어서 연락이 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 실제로는 자랑할만한 일도 아닌 그 상태를 이상한 고집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114에 전화를 걸어 2G서비스 종료에 따른 혜택에 대해 알아보았다.

새로운 기계를 구매할 경우 3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매달 1만원씩 24개월간 요금을 할인해주는 플랜과

SKT의 여러 요금제들중에 자유롭게 선택해서 70%의 요금을 24개월간 할인받는 플랜, 2가지 옵션이 있었다.


처음엔 이미 010번호가 하나 있던 터라, 010번호를 번호이동으로 SKT로 가지고 와서 새로운 요금제를 선택하고 여기에다 70% 요금할인을 받으려고 했는데, 상담원이 그렇게도 가능하지만 그럴경우, 가족결합할인이 불가능하고, 그동안 장기가입으로 인한 혜택도 다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결국 새로운 010번호를 하나 더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신 그렇게 할 경우 가족결합할인 10%가 추가로 할인이 되어 24개월간 총 80%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해서 나는 한달에 79,000원짜리 요금제를 24개월간 약 16000원정도의 금액으로 이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략 1,500,000원 정도의 요금감면혜택을 받게 된 셈이고, 현재 사용중이던 요금제가 한달에 약 36.000원 정도였으니 매달 2만원씩 지출은 더 줄고, 데이터라던지 기타 부가서비스는 더 좋아진 것이다.

내년에 혹시라도 5G서비스가 가능한 폰으로 기계변경을 하고, 요금제를 변경해도 할인은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니, 5G 서비스로 갈아타면 더 많은 할인혜택이 생길것이다.


이런 혜택을 받으려고 011번호를 유지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혜택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 사실은 011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게 해주길 바랬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이상 선택지에 없는 것.


나의 정체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학시절부터 20여년을 함께해온 번호와 오늘 이별했다.

조금은 아쉽고 씁슬한 기분이 든다.

2G폰을 꺼내들고 전화번호부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사람들의 전화번호.

그래 그러고보면 저 폰에 담겨있는 사람들정도가 어쩌면 내가 동시에 관계할 수 있는 번호아니었을까?

카카오톡과 무료통화가 일상이기 이전의 삶, 지금과는 또 다른 그 삶이 잠시 소환된다.

하지만, 삶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잠시 회상은 할 수 있어도 머물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나의 삶도 그렇게 흘러간다.


훗.

숫자로 보면 010 다음이 011인데, 이렇게 보니 또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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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삶을 연명하고 있던 나의 모토로라 레이저야. 그동안 고생많았다. 이제는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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