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되, 대충 쉽게 시작하자.
남편이랑 오후에 신촌엘 다녀왔다.
신촌 거리를 마지막으로 걸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오랜만이었다. 날씨가 흐렸고, 1월 1일이라 문닫은 곳도 많아서 왠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목적지 없이 걷다 홍익문고를 발견하는 바람에 1월에 읽을 책을 사기로 했다. 안읽은 책이야 집에 수두룩하지만,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으로 새해의 소비를 시작하고 싶었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대강 훓어보다 에쿠니 가오리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 권씩 샀다. 에쿠니 가오리 보다는 김난주씨의 글이 그리웠고, 하루키의 책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구입했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이제 10살이 된 까뮈 걱정에 나는 요즘 장수 고양이의 비결이 뭔지 열심히 유튜브로 검색 중이다.
그런 나의 흥미를 돋우는 제목이었기에 손이 간 것도 있지만, 하루키 책치고는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실제로 95년 11월부터 일년 한 달 동안 <주간 아사히>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아 엮은 책이었다. 그리고 왠지 친근한 일러스트는 안자이 미즈마루 라는 작가가 그렸는데, 둘의 친분이 글과 그림에 묻어 있었다.
힘들여 쓰지 않은 글에, 힘들여 그리지 않은 일러스트가 꽤 맘에 든다.
안자이 미즈마루에 대해 검색하니,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으로 작품 스타일이 설명되고 있었는데 이 해석이 좋았다. 내가 소망하는 24년 또한, '마음을 다해 대충 사는 한해'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삶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진심을 다해 하루를 살되, 되면 되는 대로, 기어코 되지 않는 일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서 대충 살고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거 없는 일상이지만 일기를 쓰지 못할 건 또 뭐람...' 이란 생각이 들었고, 아무렇게나 끄적이는 것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 이유로, 1월 1일 첫 일기를 쓸 수 있었다는 시시한 이야기지만, 이런 글이 쌓여 나는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