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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기 Nov 04. 2015

미움

그 부질없는 시간 낭비와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대하여

옛날에는 그랬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었으면 하고.

이제와서는 그렇다. 그저 모두와 사이좋게만 지냈으면 하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지는 않아서 그마저도 잘 되지 않고

서로 좋은 감정만을 나눠 가질 수 없는 각박한 세상 속에 살고 있음을 종종 느낄 때마다,

이마저도 포기해야 하나 싶어 주눅이 들곤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

나는 사실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얄밉다, 마음에 안 든다, 재수없다, 겉으로 내뱉긴 했어도 진심으로 그 사람을 싫어했던 적은 없었다.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도, 그 사람의 존재를 억지로 부정하려 해봤지만 매번 헛수고였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극심한 다툼 끝에도 얼마 안가 누그러진 내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정말 누군가 나를 화나거나 섭섭하게 만들어도 진심 어린 사과 한 번이면 나는 그걸로 족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땐, 끝까지 원망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다 용인하고 말았다.

얼굴을 마주 보며 다시 웃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이야기하고..

어찌 보면 누군가는 가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행동이겠지만 맹세컨대 가식은 없었다.   


이런 나를 가족과 친구들은 답답해하고 걱정스러워했다. 속이 너무 물러 터진 거 아니냐고.

솔직히 인정한다. 스스로도 바보인가 싶을 만큼, 속없는 듯 굴기도 한다는 거.

거기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니까 시시비비를 가려 명백히 짚고 따지거나, 우기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마냥 다 내려놓고 사는 것은 또, 결코 아니다.

나도 모든 감정을 관통당하는 인간이기에 모욕과 무시를 받거나 오해를 사면 억울하고 짜증이 난다.

속이 너무 물러 터진 탓에 남들보다 더 자주 상처받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더 인내하고, 화를 삭이고 침착하려 행동하면서

조금 더 손해를 봐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넘기는 습관이 들었을 뿐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엉키고 꼬인 매듭을 보는 게 더 스트레스여서

되도록이면 척을 지거나 상대에게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배려하다 보니,

그래서 정말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습관.

그래, 어쩌면 나는 미워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 같다.

미움, 이라는 그 어두운 감정의 그림자가 내게 드리워지는 것이 오히려 더 두려운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도 그 음침한 그림자에 가리어져 보이지 않게 될까 봐.     


종종,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차라리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간을 좁힌 채 미워하는 대상을 주시하며 어떻게든 흠을 잡아내려 기를 쓰고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며 애를 쓰는 모습들을 보면, 가장 먼저 연민이 샘솟는다.

왜 스스로를 못 살게 굴어 안달일까, 싶어서.


자신은 어떻게든 뒤에서 험담하고 저주하거나

앞에서 대놓고 복수하여 미운 대상을 못 살게 굴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어쩌면 그 사람은 자신을 미워하는 누군가가 있든 없든 아랑곳하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엔 기분이 언짢더라도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자신을 더 좋아해주는 사람의 품 속으로 찾아들면 그만이라는 방법을 깨우치고,

이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지워지지 않는 먹물을 뒤집어 쓴 채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덧붙여 말하지만 혹여 자신이 누군가의 미운 대상이 되더라도,

자신을 미워하는 상대방의 시간 낭비와 감정 소모를 도리어 안타까워 하자.

미움을 미움으로 되갚는 똑같은 사람이 되지는 말자.

오해를 하면 진심을 더 보여주고

차가운 시선에도 뻔뻔하게 따뜻한 웃음으로 마주하자.

이러한 행동이 어쩌면 더 상대의 미움을 사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 계속해서 미움 받는 것에 익숙해지며, 무뎌지며, 끄떡 않고 살아가자.     


이것이 내가 평생을 고수하고 싶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유하고 싶은 삶의 태도이자 사유 방식이다.     


사실, 미움이라는 감정을 아예 짓눌러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미움을 불러일으키는 시기, 질투, 오해 같은 것들은 살아가다 보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상황이다.

거기다 사람을 미워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저마다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각자의 합당한 사정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조금씩,

미움을 덜어내려고 노력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미움을 덜어내다 보면, 훨씬 좋은 감정을 채울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겨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사실 누군가를 더 좋아할 마음의 여유가 턱없이 부족한 사람인데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동안 변함없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좁은 내 마음속 공간에다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당신이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내 글을 읽고 심경에 변화가 생겨

더 이상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일단 그 미운 대상으로부터 멀어졌으면 좋겠다.

미워하는 그 헛된 마음 씀씀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차츰차츰 줄어들 것이다.


대신에 언제까지나 좋아하고 싶은 사람들,

그들에게 온전히 사랑과 이해의 정성을 베풀다 보면

당신도 이내 빈틈없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둥글게 살자, 둥글게.


둥근 지구, 모난 세상이지만

마음이라도 둥글게 굴러가다 보면

가끔 유독 각 잡힌 사람들과 부딪혀도

더 둥글게 깎이면서 

요란하게나마 요리조리 스쳐가며,

손에 손 잡고 함께

정답게 굴러갈 수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믿고 살고,

그렇게 속고 살고 싶다.


그래서 한결 편안하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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