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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륜휘 Feb 17. 2021

우리들의 장난

영감 구구와 할망구 루니 

  “사장님이 먼저 죽기라도 하면 어쩔거야?”

  엄마가 콕하고 미래를 지적했다. 나는 웃으면서 대충 얼버무렸다. “엄마.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대요.” 그리고 혹시라도 그가 먼저 죽게 된다면 나는 야무지게 혼자 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마흔 살이 되면 그는 예순한 살이 된다. 내가 쉰 살이 되면 그는 나와 칠순 잔치를 해야 한다. 그 상황이 너무 재밌어서 자다가도 이렇게 그를 부른다. 

  “영감..”

  그러면 그는 화가 잔뜩 나서는 나를 할망구라고 부른다. 

  “영감. 나는 이제 쉰 살의 아주머니요.” 

  “그대가 쉰 살에 우리가 만났지 않소?” 

  나는 혼자서 키득대며 계속 상황극을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감 공격에 영락없이 무너지는 영감은 상황극이 달갑지 않아 보였다. 그럼 또 조용히 있다가 오빠, 오빠하며 이런 소리 저런 소리하며 잠을 재워달라고 보채는 나다. 단골로 나오는 이야기는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 이야기다. 그가 나름 머리를 써서 변주한 이야기에는 나무가 등장한다. 나무는 우리의 반려견 이름이다. 

  “토끼가 막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니까 거북이가 한참이나 뒤에서 오고 있는거야. 그래서 낮잠을 자기로 했지. 근데 낮잠을 자고 일어나도 거북이가 뒤에 있는거야. 그래서 토끼는 뛰지 않고 걷기도 했어. 걷다가 각산골에서 나무를 만났어. 나무가 수다쟁이잖아. 토끼랑 나무랑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지.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둘이 박수치고 웃으면서 죽이 잘 맞았대. 어느새 해가 질 동안 그 둘이 수다를 떨다가 보니까 거북이가 결승선에 도착해 있었어.” 

  나는 이불을 발로 차며 나무는 수다쟁이야 맞아, 맞아하며 웃었다. 또 옛날이야기 해달라고 우기면 구구는 방구를 가열차게 뀌고는 잠들어 버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웅장한지. 사천시에서 열리는 에어쇼에서 비행기가 내뿜는 배기가스의 량과 흡사할 정도다. 구구의 방구 소리를 따로 따와서 비행기 배기가스 사진에 입히면 찰떡인 그 정도의 힘이 구구에게는 있다. 내가 방귀를 뀌면 구구는 예쁘다고 말한다. 쥐어짜서 온갖 힘을 엉덩이에 몰아넣어 쏟아내도 귀여운 수준에 그친다. 


  오후 1시가 되면 공방 문을 연다. 구구는 쇠 인테리어에 능하고 목공 작업도 수월하게 하는 편이다. 구구가 쇠를 두드리는 시간에 나는 조개껍질을 손질한다. 삼천포와 인근 고성 바닷가에서 수집한 조개껍질을 씻기고 건조하고 바니쉬를 바른다. 헤어핀에 찰싹 고정해두기도 하고 왕소라 껍질 안에 캔들을 녹여 소라 캔들을 만들기도 한다. 구구는 1일 1작 하는 게 목표인 것 같다. 공방의 생명은 공작거리는 소리에 있단듯이. 구구의 작업실에서는 쇠를 용접하고 나무가 갈린다. 나는 멍을 때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공방일이 시시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이 올 것을 대비해 우리는 공방의 슬로건을 만들었다. 

  “파도에 밀려온 것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이 되고자 했다. 

  다시 한 번 읽어 본다. 파도에, 밀려, 온, 것들의 이야기.

  나는 바닷마을에서 태어나 바다를 마주하며 자랐다. 파도에 얼마나 온갖 것들이 밀려오는 지를 잘 알고 있다. 걸리버의 신발 한 짝이 밀려오기도 하고 질피 잎들이 여름날 날파리와 소동을 피운다는 것도 안다. 그런 바다에서 나의 아버지는 배를 타고 멸치를 잡는 일을 하거나 굴을 양식했다. 

  “아빠. 바다 없는데서도 살 수 있어?”

  하고 물으면 아빠는 말한다. 

  “못 살지.”

  그건 아버지의 생계와 연관된 곳이 바다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날 내가 아버지의 작업현장을 돕다가 말했다.

  “아빠. 이 껍데기 버리지마.”

  가리비 선별 작업 중에는 시끄러운 세척 소리가 동시에 들리기에 큰 소리로 외쳤다.

  “뭐라고?”

  “가리비 껍데기 쓸모가 있으니까 버리지 말라고.”

  아빠는 희한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 껍데기를 솔로 씻겨내고 말려서 가리비 발을 만들었었다. 그것이 지금 공방의 모티브가 되었다. 

  아빠는 가리비발을 보고 눈이 똥그래져서는 말했다.

  “우리 딸 작품 백점이다.”

  바다 사나이에게 인정받은 그날의 기쁨은 내 기분도 백점이 된 행복한 날이었다.


  바다가 분다.

  가게 간판을 지나치던 한 할아버지가 들어와 물었다.

  “바다가 분다?”

  “네.”

  “바다가 분다가 뭐꼬?”

  “바다가 바람처럼 불면 어떨까요?”

  “바다가 춤을 추겠네.”

  “맞아요. 할아버지.”

  개업도 하기 전의 가게에서 인사한 그날의 할아버지와는 친구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앞을 지나가다가 내가 있나, 없나를 확인하고 꼭 들어오신다. 내가 없으면 그냥 스윽 지나가버린다. 나는 그 할아버지가 좋다. 할아버지는 이제 나를 딸내미라고 부른다.

  “이 딸내미가 성공을 해야할낀데.”

  “할아버지도 성공하셔야죠.”

  “네가 성공을 해야 내가 성공을 하지.”

  “할아버지가 성공을 해야 내가 성공을 하지.”

  우리는 만나면 말장난을 하며 논다. 그러면 구구는 멀찍이 앉아서 가만히 구경을 하고 있는다. 할아버지가 구구보다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다. 할아버지 수다가 6.25전쟁까지 올라가면 나는 슬슬 피곤해진다. 그럼 나는 구구를 호출한다. 구구가 모른척 한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조금 밉다. 

  “할아버지. 루니 졸려요.”

  할아버지는 서글프게 짐들을 챙기고 마스크를 다시 쓰고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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