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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륜휘 Feb 25. 2021

아버님과 케이블카

사천시 바다 케이블카 안에서

  나는 구구의 아버지를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국어사전에 아버님은 ‘아버지의 높임말. 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거나 주로 편지글 따위에 쓴다.’ 그리고 ‘시아버지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도 덧대있다. 아이러니하다. 구구와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를 은근슬쩍 “아버님”하고 부르게 되었다. 구구와 아버님은 바다밭에서 단감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공방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이른 출근으로 쫄쫄 굶었던 탓인지 기운을 차리기 힘든 상태였다. 아버님께 “안녕하세요.” 인사만하고 구구와 맞담배를 피웠다. 테이블에 앉아 계신 아버님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마실 것을 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요구르트를 건내며 나는 다시 나의 책상에 멍하니 앉았다. 육체적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반가운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게 너무 고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은 아버님 옆에 앉아 있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우리는 식사를 하고 사천시 바다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이유는 내가 1형 당뇨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홉 살 때부터 진단받은 소아당뇨는 췌장의 기능을 제로상태로 만들었다. 인슐린이 몸에서 분비되지 않아서, 인슐린 펌프를 몸에 지니며 살고 있다. 수시로 인슐린 주사액을 갈아주어야 하며, 수시로 혈당을 체크하고 투여를 해야한다. 아픈 몸을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다. 몇십년 째 그렇게 살다보니 익숙함에 대한 경계가 희미해졌다. 혈당 체크를 게을리 하거나 폭식을 하거나 저혈당으로 손발이 떨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오늘은 혈당이 말썽을 부리는 날이었다. 컨디션은 쉬라고 말하는데도 고래인형을 여섯 마리 만들어야하는 주문은 들어왔고 아버님이 찾아오셨다. 아버님은 내게 너무 반가운 손님이다. 고래 만들기는 넉넉히 기간을 요청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아버님! 케이블카 타러 가보실래요?”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 아버님과 사천시 바다 케이블카를 타러 가자고 졸랐다. 다행히 흔쾌히 아버님은 좋다고 표현하셨다. 처음으로 삼천포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경험을 한다. 상괭이가 나타날까봐 바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상괭이는 남해안 일대에 서식하는 돌고래이다. 나는 케이블카가 레일 소리를 자장가 삼아 심신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입은 슬프게 웃고 있었고 레일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멋져서 다음에는 혼자서 와 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구구는 무섭다며 오들오들 떨었다. 그런 구구의 모습에 아버님은 이해가 안 간다며 의아해했다. 아버님은 자신이 고안한 창작 동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비 효과를 아니?”

  아버님이 물었다. 

  “네. 알아요.”

  나는 대답했고 아버님은 자신의 동화를 이야기해주셨다.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옛 이야기처럼 나는 잠자코 들었다. 바다가 춤을 추는 이야기는 너무 따뜻하고 명쾌했다. 동화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셨는데, 나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어서 아쉬웠다. 케이블카는 각산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우리는 엉겁결에 꼭대기를 구경하러 많은 계단을 걸었다. 옆에 걷는 아버님의 호흡이 가빨라졌다.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웠지만 아버님은 각산에서 보이는 와룡산을 보며 옛 추억을 하셨다. 각산에서 보는 와룡산, 각산에서 보는 지리산 우리는 자연과 한층 가까워졌다. 저마다의 추억을 한 마디씩 거들며 우리는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지만 지리산에서 곤로를 피웠던 이야기. 와룡산의 정상이 민재봉에서 다른 바위로 옮겨졌다는 이야기. 관광버스와 요즘의 트롯 열풍이 다르지 않아서 시시하다는 이야기. 음악을 하는 구구가 삼천포 노래를 모른다며 타박하는 이야기. 추억에 젖어드는 아버님은 추억을 맛있게 감상하셨다. 와룡산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계셨다. 아름다운 시간은 쌓여갔고 나는 지쳐갔다. 벤치에 누워버렸다. 나는 이 할아버지가 너무 재밌고 궁금한데 내 몸이 버텨내질 못했다. 다급해진 구구는 어서 내려가야 한다며 다시 케이블카에 발을 올렸다. 우리는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주차장으로 걸어 나온 아버님은 “아~ 오늘 좋은 시간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웃음소리를 일부르 점잖게 내며 “저두요.”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건강에 대해서 생각할 일이 많은 요즘이다. 이건 신이 나에게 보내는 경고 같다. 흐릿한 혈당 관리에 후회가 뚜렷하게 남는다. 건강하지 못하면 반가운 손님도 반갑게 맞이할 수가 없다. 오늘 만난 반가운 손님, 아버님이 내게 건강 경보 메세지를 보내는 듯했다. 애플워치보다 한 사람을 만나서 더 경각심을 갖는다. 



*


  봄이 다가 온다. 봄은 핑계가 좋은 계절이다. 봄이 오면 봄 덕분에 집 안에 틀어박혀 있을 이유가 생기곤 했다. 소란스러운 봄날은 내게 소음으로 다가왔다. 지겹게 반복되는 봄에 매번 똑같이 반응하는 사람들이 시시했다. 바람에 날리기만 하는 초록 잎들, 방황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우듬지는 건강하다. 여름은 건강해져야만 했다. 


*


  계절은 약속을 꼭 지킨다. 계절의 일부인 나도 건강을 꼭 지킨다. 그래야 우리는 아름다운 약속을 꼭 지킬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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