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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오리 Oct 24. 2019

나는 '(예비)경력단절녀'

10년 차 직장인의 난임휴직 일기

나는 10년 정도 NGO에서 일했다. 입사할 때의 나는 사회를 바꾸는 정의로운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져서 행복했다. 그것도 NGO에서는 그럴싸해 보이는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 '직장'을 얻어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때도 있었다. 내가 졸업할 때도 당연히 청년실업이 사회적 문제였다. 그런데 나는 감사하게도 큰 구직 고민 없이 졸업과 동시에, 그것도 꿈꾸는 직장에 들어갔다.


당연히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1달의 공백도 없이 숨 가쁘게 10년이란 기간을 3개 이상의 직장에서 일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첫 번째 '정규직'으로 일했던 직장에서 7년을 버텼다. 5년 정도는 즐거웠던 것 같다. 2년 정도는 '버텼다'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거기서 일하는 나는 돈을 버는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고민을 시작했다. 다만 또 한 번 운 좋게도 훌륭한 동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사람을 다른 직장에서는 못 만날 거 같아서 버텼다.


만 7년이 다가오던 겨울,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으로 버텼기 때문에 사람으로 버틸 이유가 사라지기도 했다.


만 7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다행히 한 달만에 다른 NGO로 이직을 했다.


7년을 일한 그 직장에 있으며 나는 결혼을 했다. 딱히 비혼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결혼 생각이 없었다. 좋은 짝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직장생활과 혼자 사는 삶에 심신이 지쳤을 무렵 남편을 만났다. 나와는 아주 다른, 나의 어려운 점을 잘 극복해줄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남자라 기대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결혼을 해도 나를 잃지 않겠다고 혼인서약서에 약속했는데 3년 전의 나와 지금은 너무 다르다. 그러나 바껴버린 그 모든 게 '자발적'인 내 선택이라 포장돼 있다. 난 내가 없어지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았다.


두 번째 이직을 고민하며, 우습게도 (아니 우스운 게 아닌 건가?) 가장 내가 고민한 건, 우리 부부의 자녀 계획이었다. 내 앞으로의 진로도, 처우도, 내 경력 산정도 아닌, 자녀계획을 합의하는 게 우선이었다. 같은 시기에 이직한 남편과는 굉장히 달랐다. 나는 이때부터 경력도, 나이도 비슷한 남편과 나는 '처지'가 굉장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 걸 '예민하다'라고 받아들인다면 곤란하다. 남편은 이직을 할 때 '자녀계획'이라는 게 고려대상 자체가 아니었으니까.) 남편과 나의 처지가 다르다는 문제 대한 가치 판단을 차치하고, 나는 남편보다 학벌이 못해서, 경력이 짧아서가 아니라, 나는 '기혼 여성'이라는 라벨이 커리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감했다.


남편은 때로 그 처지에 대한 고민을 대기업과 작은 회사의 차이 또는 내 학벌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를 냈고, 더 이상 그런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나는 남편이 아직도 잘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젠 내 자격지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두 번째 직장에서 1년이 지나고 나는 외부적, 개인적 고민 등으로 임신을 결심했다. 35살, 마냥 외면하고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미 1년 전에 우연히 난임 진단을 받은 상황이었고, 나에게 '임신 결심 = 시험관 시술'이기도 했다. 2019년 1월에 검사를 받고, 2월부터 일주일에 3번, 월 2주 정도 병원을 다녔다. 주 3회, 2주 동안 병원을 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은 아니었다. 병원은 왕복 3시간이 걸리고, 평균 2시간 이상을 대기해 진료받고 후다닥 출근해야 했지만,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내가 선택한 건데.


병원을 다닌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만 따지면 일과 절대 병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3달을 임신을 위해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거듭되는 난자 채취의 실패에 나는 '정신적'인 한계에 다 달았다. "다 나 때문이야."


일과 임신 둘 다 갖고 싶은 내 욕심이 둘 다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 생활에 지치고, 거듭되는 시술 실패로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자발적'으로.


그 무렵 회사 생활에 굉장히 지쳐있었던 건 사실이다. 회사에 지치게 된 이유가 과연 업무, 동료의 문제만이었을까?


회사에서는 내 일을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 '난임 휴직'을 권유했다. 6월부터 나는 회사를 쉬고 임신과 내 앞에 닥칠 새로운 일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이직할 때도, 휴직할 때도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날 때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경력단절녀'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쉬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5개월 정도 흘렀다. 나의 ‘경력단절녀’가 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나는 이제 혼자다. 어떤 것도 함께 나눠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나의 불안함에 많이 지친 것 같다. 이 모든 게 나의 자발적 선택이자, 모든 걱정을 '투정'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홧김에 한 말이라도 그렇게 말했다.


새로 시작한 분야에서 자립해야 하는 상황도, 임신을 위한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도 온전히 나의 문제로 생각했다. 내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말이 무리한 요구라고 했다. 본인도 충분히 임신준비에 책임과 부담이 크고, 본인은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회사에서 힘든 얘기 미주알고주알 너한테 이야기 안 하잖아"라며 내가 투정부리는 거라 생각했다.


나는 한계에 다 달았다. 임신 준비도, 새로운 일이라는 것도, 결혼생활에서 오는 이 모든 고민이 예민하고 성미가 급해서 초조해하는 거라고? 내가 왜 휴직을 하고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이 순간에 대한 기억을 절대 잊고 싶지 않다. 특히 내가 기혼여성으로 앞으로도 살게된다면 더 기억해야 할 일이다.


나는 휴직 이후, 매일매일의 좌절감과 갈등이 꽤 오래돼서 하루하루 내 정신이 어떻게 말라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그 불안함이 어떻게 커지는지 보고 싶어서 일기를 쓰기로 했다. 물론 좋은 날에는 과연 내가 어떤 모습인지, 과거의 나는 어떤 이유로 이런 선택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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