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쓰는 일을 하다 손 쓰는 일을 시작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최저시급에 민감하게 됐다. 호봉제 직장을 다니다가 시급 8,35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마케팅, 홍보, 커뮤니케이션, 소위 '사무직' 일을 하다가 지금은 ‘현장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8,350원이지만, 곧 이전 직장보다 더 많이 벌 것이라는 기대감에 이 일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내 현실에서 시간이 흐르더라도 내 시급이 ‘정부인상안’과 무관하게 내 의지를 반영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내가 현실을 걱정하면 남편은 "너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니 일당에 불만을 갖냐?"라고 말한다. 반복되는 저 말은 위로라기보다 내 처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나는 그렇게 주 1회,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남편은 대기업을 다닌다. 맞벌이를 할 때 자기의 정년이 10년밖에 안 남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수입이 상대적으로 낮은, 그래서 리스크가 적은 내가 일을 그만두고 ‘우리’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10년의 경력을 뿌리치고 말이야.
과장급, 허리 역할을 하는 나이에 나는 '알바'로 20대 초반의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일하고 있다.
"너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라는 말에 내가 위안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 업계는 자영업을 하지 않는 이상, 경력과는 별개로 임금은 최저시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즉, 자영업을 하지 않는 이상 내 처지는 크게 달라질 일이 없다. 요즘 대부분의 업계가 그렇겠지만 내가 대단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영업은 신빈곤층 진입이기도 하다. 난 지금, 그리고 내 미래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몸은 더 고되고 돈은 없는 현재, 깝깝한 미래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주제에 괜한 돈 걱정이란 말이 난 납득되지 않는다.
난 또 자영업을 못(안)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자금의 문제도 있지만, 임신 준비를 하면서 일을 벌리지 못한다고 한 건 남편이 먼저 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괜한 걱정"이라니.
나는 '경력단절녀'가 될까 두려워서, 새로 시작한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 이제 나는 묻는다. 이 모든 게 나의 자발적 선택일까? 행복한 결혼생활이라는 환상 때문에 등 떠밀려서 선택한 건 아닐까. 결혼이 대체 뭐길래.
어쩌다 내 삶은 이렇게 됐을까?
나는 지금 행복하기는 한 걸까?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내 인생의 흐름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서 일기를 쓰기로 했다.
누가 보라고 쓰는 일기가 아니라, 내일, 다음 달, 내년의 내가 보라고 쓰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