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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Dec 30. 2022

22. 바간, 해돋이와 해넘이

미얀마로 떠날 때 미얀마 미술에 대한 책을 서너 권쯤 읽고 출발했건만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바간의 저 많은 탑들이 왜 생겼는지, 바간 왕국이 어떤 곳이었는지 열심히 공부한 기억은 나는데 뭘 읽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다 잊었지만 지금도 생생한 것은,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바간의 새벽부터 밤까지 돌아다녔던 기억만 그립게 생각이 난다. 

바간의 전기오토바이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오토바이 없는 이동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모든 여행객들은 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볼만한 뷰포인트 아래에는 늘 오토바이가 즐비하다.

바간 여행은 새벽 해 뜰 때 시작해서 해 넘어가고 노을조차 스러지는 저녁이 되어야 끝난다. 그만큼 바간의 일출과 일몰은 유명하다. 특히 이른 새벽, 검푸른 밀림 사이 솟아있는 붉은 탑과 떠오르는 아침 해, 아침노을 위로 둥실 떠오르는 벌룬이 있는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바간 도착 둘째 날, 새벽.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전날 예약해 둔 택시가 숙소 앞에 와있다. 첫날은 거금을 들여 미리 예약을 해둔 택시다. 둘째 날부터는 전기오토바이를 매일 빌려서 바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낯선 곳에서 살짝 겁이 좀 났다고나 할까.  


하늘엔 아직 샛별이 총총한데 불빛 하나 없는 들판을 달려 도착한 곳은 난민타워. 전망대에 올라가니 커다란 카메라를 맨 서양 아저씨 한 분과 나 밖에 없다. 사위에 풀벌레 소리만 들린다. 춥다. 해는 언제 뜨나.... 먼 산과 하늘이 맞닿은 스카이 라인에 조금씩 파란빛이 돌기 시작한다. 해가 올라오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난민타워는 리조트 한가운데 있다. 타워에서 내려다본 리조트 풍경. 

갑자기 탑 아래가 시끄러워지더니 한 떼의 중국 단체 관광객이 몰려왔다. 뛰어다니는 아이들, 소리도 줄이지 않은 채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 커다란 목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그 와중에 일출 보기 좋은 지점으로 몰려서 서로 앞자리를 찾느라 시끌 법석. 삽시간에 탑 꼭대기는 야구 관중석처럼 사람들로 가득 차고 조용히 일출을 보고파했던 내 꿈은 멀리 사라지고 만다. 미얀마는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지라 중국 관광객들이 꽤 많다. 

소음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탑을 내려왔다. 깜짝 놀란 기사가 다가왔다. 아직 해가 안 떴는데 왜 내려왔냐는 것이다. 서툰 영어로 중국 관광객들이 왔는데 너무 시끄럽다고 했더니 씨익 웃는다. 그러더니 다른 좋은 곳을 데려다주겠단다. 벌써 해는 저 너머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오늘 일출 보기는 다 틀린 것 아닌가. 실망에 마음속이 부글거렸다. 십여 분을 달린 택시가 한 언덕 아래에 나를 내려준다. 제주도 오름처럼 봉긋한 인공 언덕.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바라보고 서 있다. 하지만 아무도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시 멈추면 그 빈 시간을 풀벌레 소리가 채운다. 추위에 부르르 떤 것도 잠시, 밀림 저 너머에서 벌룬이 솟아오른다. 하나, 둘.... , 자꾸자꾸 솟아오른다. 비로소 바간에 도착한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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