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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Sep 30. 2024

미술교사에게 창작은 어떤 의미일까?

덥다. 너무 덥다. 주룩주룩 비가 쏟아지는가 싶더니 들고 있는 우산이 무색하게 금방 햇빛이 쨍쨍 내리쬔다. 습도가 어찌나 높은지 숨 쉬는 것조차 어렵다. 나는 지금 내가 지나온 여름 중 최악의 여름 한가운데 있다.


여름해는 길고 길어서 밤 여덟 시나 되어야 간신히 저물녘이 된다. 뭐라도 해야 이 여름이 금방 가겠지. 학교에서 챙겨 온, 아이들이 쓰다 버리고 간 작은 스케치북과 저렴이 만년필을 필통에서 꺼냈다. 맨날 아이들만 시켰는데, 오늘은 나도 그림이란 걸 한 번 그려봐야겠다. 핸드폰을 뒤져서 꽃사진을 찾아 그리기 시작했다. 물감도 칠했다. 만년필 잉크가 물감에 번진다.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수업시간 아이들 마음도 이럴까? 그래도 며칠 반복하니 번지지 않게 칠하는 요령이 생겼다. 꼼지락거리는 사이 여름 한 자락이 훌쩍 지나간다. 

오래전의 일이다. 대학 다닐 때 교사가 되면 그림 그리지 말라 하시던 교수님이 계셨다. 미술교육론, 미술수업 방법론을 강의하시던 젊은 교수님이었는데, 실은 그분의 전공은 미술사였다. 당시에는 미술교육 전공자가 거의 없어서 작가나 미술사 전공  교수님이 강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컨대 교사교육과 작가교육이 혼재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교수님은 우리 과 최고 스타교수이기도 했다. 나 역시 그분의 팬이었고 그분을 통해서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교수님은 수업 중간중간 느릿느릿 점잖은 말투로 우리를 까곤(?) 하셨는데,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니들은 작가가 아니야, 교사지. 교사되면 그림 그리지 말고 수업을 열심히 해.'

그 교수님은 교직에 있으면서 작가의 삶에만 열을 올리고 있던 일부 우리 과 선배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계셨던 것 같다. 그림 그리지 말라 하시던 교수님 말씀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교사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림과 멀어졌다. 그림을 그리는 건 수업에서 아이들의 작업을 돕고 지도할 때가 대부분인 날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엉거주춤 미술 단체에 한 발을 걸쳐 놓은 상태로 세월이 흘렀다. 어쩌다 시간이 날 때면 거실 한편에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놓고 꼼지락 뚝딱거렸다.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그릴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미술교사에게 그림을 창작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문득 오랜 시간 교과모임을 같이 한 정선생님이 떠오른다. 교육 현실은 정선생님 그림의 오랜 주제다. 낡은 책상, 버려지는 칠판, 교사와 아이들,.... 교육환경과 만나는 아이들이 달라지면 선생님의 그림도 달라진다. 이 년 전 다문화 학교로 전근 가신 후 중도입국 다문화 학생들을 만나면서 '이주와 정주'를 주제로, 올해는 세월호와 관련해 아이들이 다시 살아오기를 염원하는 작품들을 발표하셨다. 나는 그분의 그림을 참 좋아하는데, 단지 학교와 아이들이 등장해서라기보다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작업이 모순되지 않는 삶의 자세가 그림에 고스란히 느껴져서일 것이다.(길게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내가 아는 한 가장 풍성한 수업 아이디어를 가진 교사이기도 하다.) 

[귀화-토끼풀] 정평한 캔버스에 아크릴/2022/친근하기만 한 토끼풀도 사실은 귀화식물. 다문화와 정주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했다.
[꽃으로 피어] 정평한 흑칠판에 오일파스텔과 아크릴/2024/소멸과 재생에 대한 이야기로, 세월호의 아이들이 4월의 진달래로 다시 피어나길 기원한다.

우리 주변에는 교사의 삶과 작가의 삶을 조화시키려는 정선생님 같은 분도 있을 것이고, 오래전 학부 교수님이 비판하셨던 선배 교사들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또 나처럼 취미 삼아 꼼지락 뚝딱거리며 그리고 만드는 모습도 있을 것이고, 수업을 자신의 창작이자 예술작품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선택에 따라 그 양상은 다양할 것 같다.


질문을 바꿔보자. 나에게 창작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표현 욕구는 삶의 의욕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창작은 작가로서의 욕망 이전에 표현 충동의 자연스러운 표출에 가깝다. (물론 작가의 꿈을 꾼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창작은 나의 삶에 보이지 않는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때로 수업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림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수업이 되거나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재미를 느껴 수업이 그대로 내 그림에 들어오기도 한다. 가끔 '우와- 샘, 왜케 잘 그려요?' 같은 아이들의 탄성을 들을 수 있는 것도 그나마 뭔가를 계속 꼼지락거린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하긴, 아이들 눈에야 뭔들~) 고작 아이들의 경탄에 으쓱한 마음이 드는 자신이 좀 찌질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건 나의 꼼지락은 미술교사로서 자신감이나 정체성 형성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시간이 지나 중년이 되어 노년이 된 교수님을 다시 뵌 적이 있었다. 나는 교수님에게 '지금도 미술교사가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여쭤봤다. 교수님은 '지금은 아니야. 교사도 그림 그려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왜 생각을 바꾸셨는지 여쭤보지 못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새삼 궁금해진다. 교수님은 왜 생각을 바꾸셨을까? 

(2024.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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