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뽀시락 Jun 08. 2024

도덕경 28장 이것과 저것을 모두 알고

상황과 때에 맞게 움직이다

원문은 생략했다. 한글로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괄호 안의 부연 설명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노자 도덕경 28장 번역 및 해설


본문


수컷(남성)에 대해 알고 암컷(여성)을 지키면 곧 천하의 골짜기가 될 수 있다.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는 것은 항덕(하늘의 덕)과 분리되지 않고 갓난아기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백(흰색)을 알고 흑(검은색)을 알면 천하의 모범이 될 것이니, 천하의 모범이 되면 항덕과 어긋나지 않아 무극으로 돌아간다. 영화로움을 알고 욕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될 수 있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곧 항덕이 충족되니 통나무로 돌아갈 수 있다. 통나무가 쪼개어지거나 나누어지면 여러 물건이 되는데, 성인은 이를 활용하여 (모든 것을) 관장(주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큰 마름질(주관 또는 관리)은 일부러 나누거나 쪼개지(통제하지) 않는다.



해설


6장에서 등장하지만 노자에게 ‘골짜기’는 부와 풍요가 넘치는 곳, 무릉도원이다. ‘허난성’으로 알려진 노자의 고향엔 깊은 산 속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거나 아니면 어딘가에서 매우 인상 깊게 골짜기를 목격했을 수도 있다. 인간의 물류가 모이는 곳이 대도시라면 생명력 넘치는 공간인 골짜기는 자연의 대도시라 할 수 있다.


골짜기와 더불어 갓난아기나 통나무는 노자 도덕경에 단골로 등장하는 상징이다. 통나무와 갓난아기는 아직 분화되지 않은 무언가를 가리킨다. 통나무는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의 나무이고, 갓난아기는 어른으로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의 인간이다. 둘 다 어떤 장기로든 분화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줄기세포에 비유할 수 있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지만 아직 나누어지지 않아 하나의 전체로 존재하는 것.


한국의 국기인 태극기에 새겨진 태극은 이를 잘 표현하는 문양이다. 음과 양이 뒤섞여 있는데 그것은 거대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음의 에너지 또는 양의 에너지 중 어느 하나가 더 커지면 사태는 달라진다. 물리학에서 정지된 물체는 ‘힘의 균형’으로 표현한다. 나아가고자 하는 힘과 머무르는 힘의 균형, 여기에서 어느 하나의 힘이 더 커지면 물체는 비로소 운동을 시작한다. 운동은 곧 변화이다.


1장과 13장에서도 보았지만 인간의 삶도 하나의 거대한 운동 또는 변화라 볼 수 있다. 태어나 죽는다는 가장 큰 사건으로부터 다치고 성취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등의 수많은 사건들이 펼쳐지는 운동과 변화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삶의 변화나 운동에 대처해 나가고 방법을 찾아가며 지혜와 통찰을 얻는 게 인간의 삶이다.


26장에서도 보았지만 조급하거나 가볍게 굴어서는 안 된다. 28장에서는 이를 조금 더 다른 시각에서 보고자 한다. 2장에서 보았듯 삶이 가진 양 극단을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성과 여성성, 흑과 백, 13장에 등장했던 총애나 모욕 등 노자는 인생에서 마주하는 양 극단을 두루 살펴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성인이다. 통나무는 아직 쪼개어지거나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성인은 무리하여 억지로 통나무를 마름질하지 않는다. 그 나무가 자연스레 나누어지거나 쪼개어질 때까지, 꽃이 필 때를 기다리듯 열매가 열릴 때를 기다리듯, 성인은 자연스러움에 기댄다. 이는 중국철학으로 대표되는 동앙철학의 기본 자세이기도 하다.


장자에 등장하는 도축업자인 포정은 19년 동안 같은 칼로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아도 칼날은 새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비결은 자신의 재능이 아닌 도에 기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눈이 아닌 정신으로 소를 대하고, 살이나 뼈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소가 가진 본래 구조에 맞춰 살과 뼈의 틈과 구멍을 이용하기에, 칼로 대지 않은 것처럼 뼈와 살이 후두둑 떨어져 쌓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노자는 가장 큰 마름질은 일부러 나누거나 쪼개지 않는다 말했다. 하늘의 때를 기다려, 자연스레 모든 것이 운동과 변화를 시작할 때에 맞춰 일을 벌인다. 그리하여 성인은 힘들이지 않고 무리없이 세상을 이끌어나간다. 그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 역시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다. 그리하여 17장에서 보았듯 백성들 모두 스스로 자신들이 알아서 했다고 믿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것을 알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며 그것을 벗어나려 애쓰기보다 그것을 지키고 매진할 때 부와 풍요가 머무를 수 있다. 그래서 현명한 이는 눈앞의 이익을 취하지 않고 먼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다. 당장 배고프더라도 씨앗을 삼키기보다 그 씨앗을 땅에 심어 그것이 자라나길 기다린다. 가꾼다는 것은 그 대상이 제대로 자라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 자라날 때까지 인내하는 일이기에.


*관련 도서(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이전 27화 도덕경 27장 흔적 없는 행동과 허물 없는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