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날개 솥 –1986
-출출한데 감자튀김 먹고 싶다. 엄마, 맥*날드 갈까?
-나가기 귀찮아. 그리고 너 원래 감자튀김 잘 안 먹지 않았어?
-그러게.. 어렸을 땐 고구마튀김만 먹었던 것 같아. 감자ㄲ 보다 고구마ㄲ만 먹었었지. 말하다 보니 과자도 먹고 싶네.
-과자로 넘어간 거야?
-예전엔 튀김도 많이 해주더니 요즘엔 왜 안 해줘?
-기름 처리도 그렇지만, 그땐 잘 먹여야 되니까 이것저것 만들었었지.
-지금도 영양이 필요해.
-내가 볼 때 지금은 영양 과잉이야.
-아니야. 고구마 맛탕 좀 해줘.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어.
-이젠 네가 해. 엄마 힘들어.
-엄마가 해야 맛있지. 그럼 그 솥 어디 있어?
-솥?
< 비행기 날개 솥 –1986> -나의 기억
육중한 검은 손잡이를 돌리면 탱크의 뚜껑이 열리는 듯 엄청 멋진 솥이 있었다.
뚜껑을 몸체에 연결된 걸이 부분에 맞춰 넣고 꼭대기에 있는 검은 손잡이를 돌리면 뚜껑을 가로지르는 bar가 점점 올라가면서 몸체와 더욱 밀착되는 솥이었다. 끼우는 방법도 그랬지만 꼭대기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는 모습이 변신하는 느낌을 주곤 했다.
한참 전쟁놀이를 할 즈음 오빠와 나는 그 뚜껑의 주인이 되기 위해 진짜 전쟁을 했었다.
하지만 솥이 빛이 나고 더 멋질 때는 엄마가 솥의 뚜껑을 열어줄 때였다.
팽글팽글 돌아가던 추가 멈추고 뚜껑이 열리면 엄청나게 맛있는 무언가가 항상 나왔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에 이 솥으로 엄마가 튀김을 했던 것 같아.
-그걸 기억해?
-그럼. 좀 특이한 건 고구마를 깍둑 썰어서 튀겼던 것 같단 말이지.
-내가 그랬나?
-아마 맛 탕을 만들려고 해서 그랬던 것 아닐까? 그땐 진짜 자주 먹었는데..
-지금도 하면 할 수 있지.
-해줘!
-네가 해.
-치.. 근데, 튀김을 왜 솥에다가 해? 저거 밥솥 아니야?
-밥을 하려고 산 것은 아니었어.
< 비행기 날개 솥 –1986> -엄마의 기억
대단히 비싼 것이었다.
전기밥솥과 전기 보온밥통 2개를 구입해도 7만 원이 넘지 않던 시절 무려 11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였다.
아이들이 어려 뭐든 잘 먹게 되자 살림에 재미가 붙어 반찬에서부터 요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YMCA에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비행기 날개로 만든 가볍고 좋은 압력솥이 있다. 닭볶음이 10분, 간식용 튀김을 할 때 기름이 산패되지 않는다.'라는 말에 거금을 들여 구입했다.
무언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활용가치와 아이들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일 생각에 신이 난 나머지 덜컥 구입한 것이다. 생활비를 이리저리 쪼개고 쪼개며 살 던 때인데도 솥은 근사함 자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비행기 날개라는 희소성과 수입품이라는 것에 눈이 멀어 돈 계산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행복했다.
솥은 어마어마한 양의 밥도 뚝딱 해냈고 모든 재료를 몽땅 넣고 칙칙폭폭 몇 번의 소리로 닭볶음도 완성!
신이 나서 이것저것 다 만들었다. 만드는 대로 식구들은 맛있게 잘 먹었고 남편은 내 음식 솜씨 자랑을 하고 다녔다. 멋진 주부가 된 기분이었다.
두고두고 아쉬운 메뉴가 하나 있었는데, 솥으로 약식을 만들어줬더니 간장 밥이 달아서 싫다며 4살 된 딸아이가 거부했다. 딸은 지금도 약식을 먹지 않는다.
무엇보다 솥은 식용유를 넉넉히 붓고 감자를 튀기고 다음날은 고구마를 튀기고 그 다음날은 고로케를 튀기고도 기름이 신선했다. 정말 뿌듯했다. 솥만 있으면 못 할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집에 오면 "어서 오너라."
남편이 예고 없이 손님들과 들이닥쳐도 "어서 오세요."하며 겁 없이 살았다.
솥은 고구마 감자 옥수수 곰국 갈비찜 감자탕 시래기 고사리 등을 찌고 졸이고 삶으며 깨끗이 닦아 아직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세월이 20여 년 흘렀다.
이제는 고무 파킹이 닳았는지 녹았는지 김이 세면서 칙칙 소리가 예전만큼 우렁차지 않다.
그래도 오래 사용한 감이 있어서 그런지 현재 진행형이다.
어제 내 생일 상차림에도 한몫했다.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함께 가련다.
-정말 대단한 솥이네. 진짜 오래됐구나...
-오래됐지. 누룽지도 자주 긁어먹어서 바닥이 얇아졌을지 몰라.
-누룽지 하니까 생각나네.. 옛날에 고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 내가 밥 태워먹은 적 있었는데..
밥을 한다고 불을 켜놓고 잤었거든. 완전 숯덩이가 돼서 엄마한테 엄청 혼났었어.
-그랬었나?
-엄마가 일주일이나 닦았거든... 미안해.
-잘 기억 안 나.
-그럴 거야. 검은 자국이 엄청 오래 있었는데. 봐, 지금은 하나도 없잖아.
-아이고! 누룽지 하니까 생각나네. 김치 담가야 돼.
-그냥 묵은지 먹지. 귀찮은데..
-빨리 대야 들고 와.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