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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s drawing Jul 15. 2017

보물 찾기. 둘

따뜻한 스텐 대야 -1982

-그 스텐 대야? 그거 구멍 났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딴 거야. 잔말 말고 얼른 가져와. 배추 시들겠어.

-배추는 원래 소금 쳐서 시들게 하는 거 아니야? 좀만 쉬었다 하자.

-지금 절여놔야 자기 전에 버무릴 수 있어.

-나 요즘 김치 잘 안 먹는데.

-우리 집 김치는 네가 다 먹으면서 무슨 소리야. 얼른 들고 와. 엄마도 힘들어.     


<따뜻한 스텐 대야 -1982>-나의 기억

김치를 담글 때 주인공 스텐 대야가 있다. 하얀 고무로 싸인 구리선으로 만든 고리가 달려있고, (지금은 끊어져서 없어졌다.) 지름이 거의 60cm 정도 되는 거대한 대야다.

한바탕 김치를 담그고 나서 따끈한 흰 쌀밥을 던져 넣고 김치 양념과 슥슥 비벼먹으면 환상이었다.

엄마가 아뜨뜨뜨.. 능숙하게 맨손으로 비벼내던 비빔밥.

한 술씩 뜨고 나면 입맛을 돋운 나머지 결국 새 김치를 꺼내 나머지 밥을 몽땅 축내곤 했다. 

겨울 김장을 할 때에는 수육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눈물 흘리며 양파와 파를 다듬은 보상이었다. 

그때에도 대야는 중심에 있었다. 

신나게 먹고 욕실에서 대야와 바구니들을 닦을 때 대야는 '뚜~와~왕~'소리를 청아하게 냈다.          



-소금도 같이 들고 와.

-알았어. 그런데, 이 대야도 오래되지 않았어?

-오래됐지. 네 오빠랑 나이가 같을 거야.

-와! 우리 집에서 제일 오래된 건가?

-그런가.. 저기 물 떨어진다. 수건 들고 와.

-출출해.

-사과 먹어. 김치냉장고에 있잖아.

-엄마는 결혼하고 처음부터 김치 담가 먹었어?

-아니야. 나도 처음엔 네 외할머니 김치 퍼 와서 먹었지. 

 이 대야도 그땐 김치 담그려고 생긴 게 아니었어.

-생겨? 엄마가 샀을 것 아니야.

-아니야. 네 친할머니가 주셨지.     



<따뜻한 스텐 대야 -1982>-엄마의 기억

3개월간 시골 새댁으로 시집살이를 하고 분가할 때 시어머님이 막내아들 장가들면 주려고 샀다며 주신 대야다. 지금은 김치 담글 때만 사용하지만 사실 대야의 첫 임무는 김치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맏딸로 청소담당을 한 덕에 신혼시절 딱 하나 잘하는 것이 청소였다. 신부 수업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밥은 매일 다른 밥을 했고 반찬은 하루 종일 걸렸다. 요령이 없다 보니 빨래하는 날은 하루가 다 지나갔다. 친정에서 전자동 세탁기를 혼수로 해줬는데, 사용법을 몰라서 1년이 넘도록 탈수기만 사용했다.

첫 째가 태어났다. 시골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하고(그땐 그랬다.) 집에 돌아온 우리 부부는 매일 큰 숙제를 치르게 되었다. 시댁에서 갓 난 아기와 있을 땐 여러 어르신들이 오셔서 아기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셔서 구경만 했었는데 막상 집에 오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난방이 잘 되던 시절이 아니어서 뜨거운 물과 찬물을 놓고 남편과 온도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아기용 비누와 잇몸을 닦기 위한 가제수건, 목욕용 타월과 파우더, 아기 싸개, 아기 옷, 기저귀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님이 주신 대야는 그렇게 첫 임무로 우리 아이의 목욕통이 되었다.

깔끔 떨던 젊은 새댁인 나는 대야 안의 비눗물 속에서 아기를 바로 건져 수건으로 닦는 것이 영 찜찜하여 남편이 아기를 들고 나는 바가지로 깨끗한 새 물을 끼얹으며 헹구어냈다. 아이는 깨끗해졌지만 방안은 온 통 물바다가 되었다.   

        


-뭐!? 여기에다가 목욕을 했었다고??

-응. 그땐 그랬어. 욕실이 너무 좁고 추웠거든.

-웩! 그래도 목욕하던 통에다가 김치를 담그다니 그게 뭐야.

-너도 이속에 들어갔었어.

-나도??

-그럼. 그러니까 더럽다고 하지 말고 거기 양파 좀 더 까.

-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오빠가 물뿌리개 얘기했었잖아.

-맞아. 넌 기억 안 나니?

-내가 이 속에 들어가서 목욕할 때면 오빤 기억날 나이 아닌가?

-그럴지도.. 거기 껍질 막 버리지 마.

-그럼 물뿌리개는 뭐야?     



그러던 어느 날 애 아빠가 퇴근길에 꽃밭에 물을 주는 자그마하고 예쁜 하늘색의 물뿌리개를 사 왔다.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우리 아기의 헹굼은 이 귀여운 물뿌리개 샤워로 마무리되었다. 대 만족이었다.

"나 잘했지? 잘했지?" 신이 나서 애 아빠는 뽐을 냈다. 탁월한 선택이었고 정말 잘했다. 

가끔 이쁜 짓을 한다.

물바다였던 방안은 물뿌리개 덕분에 시냇가로 바뀌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목욕으로 활약한 대야와 물뿌리개는 예쁜 동생 아가씨에게도 활약했다. 두 남매는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여기저기 온갖 곳과 온갖 것에 물을 뿌리고 다니며 놀았다.

그리고 두 아이 엄마가 된 나는 30여 년 동안 이 스텐 대야에 배추김치 알타리무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 부추김치 파김치 등을 담그고 있다.    


      

-물뿌리개 가지고 논 기억은 나는데, 

 내 기억에는 분홍색이었던 것 같아. 

-그건 아마 원래 있던 것이 망가져서 다시 산 걸 거야.

 너희가 엄청 가지고 놀았었거든. 멀쩡한 게 이상한 거지.

 이제 미나리 좀 씻어봐.

-알. 겠. 어.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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