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수고했어!
수능을 수요일에 치른 나는 오늘이 수요일인 줄 알았다..(그렇게 믿고 싶었겠지..)
새삼스럽게 이번 수능은 눈에 띈다. 시국이 이러한데도 공부보다 촛불을 들고 똑 부러지게 할 말 하는 아이들을 보게 돼서 그런 듯하다. 얼마 전 페북 친구로 추천되던 고교 동창이 나에게 친구 요청을 보내왔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요청은 잘도 받아주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안 받기로 했다. 그 아이는 자기 마음속 라이벌이라 여기는 친구들의 필기를 쉬는 시간에 몰래 보고 가는 아이였다. 반에서 공부깨나 하는 아이들은 연습장을 숨겨놓고 화장실을 다녔다. 어느 날은 새 모의고사 성적을 (전국모의고사의 성적표는 칠판 옆 게시판에 붙여있어 누구나 성적을 볼 수 있었다.) 보고 내 책상에 앉아있더니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그동안 다른 친구들이 불쾌 해 했다는 그 행동이 저것이구나..
오히려 나보다 성적이 좋던 그 아이가 내 연습장을 보고 간 것이 재미있어서 며칠 두고 보았는데 역시나 별로 볼 것이 없었는지(낙서랑 만화책 베낀 그림이랑 팝 가사만 가득했던ㅋㅋ) 햇볕 좋은 내 자리에 다시 오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더니 지방에 사는 아이가 인 서울로 대학을 갔다. 우연히 버스에서 만났을 땐 놀라울 정도로 스타일이 달라져있었고 내게 군대 간 남자 친구 자랑을 늘어놓다가 헤어졌다.
지금도 잘 먹고 잘 살 테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직도 라이벌을 만들고 몰래몰래 훔쳐보고 다닐까?
내가 다니던 고교는 사립재단의 학교였고 방학 때 다른 지역의 선생님들이 오셔서 보충학습을 지도하시곤 했다. 부산인가 했던 억양이 꽤 쌘 여 선생님이 오셨던 여름이었다.
고3인 우리에게 "너희들은 이렇게 공부해서 성적 어떻게 빼니?"
'응??? 우리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데... 뭔 소릴!???'
지역색이 달라서였던지 대답도 없고 반응이 없는(충청도 스타일ㅎㅎ) 우리에게 기가 찬다는 듯 매 시간 힘들어하셨다. 일주일 뒤에 쪽지시험을 보고나서야
"내가 다른 선생님한테 전화로 물어봤는데 너네 원래 그런다며.. 오해해서 미안하다. 그냥 나 혼자 떠드는 것 같아서 좀 이상했어. 열심히 하자."라고 말씀을 하셨고 우리도 나름 안도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내 인생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가셨다. 그때 말씀이
"지금 내가 다른 지역 학교에서 와서 해줄 수 있는 얘기 같다. 너네 지금 반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 여기 옆에 있는 친구들 라이벌 아니다. 라이벌은 저 멀리 (벽에 붙인 전국 모이고사 성적표를 가리키며) 눈엔 안보이는데 너네 등수 앞에 있는 다른 지역 다른 학교 애들이다. 친구는 라이벌이 아니고 같이 가는 동료다.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
지금 그 아이들 중 연락하는 이는 없지만 살면서 당장 옆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보며 질투나 부러움에 사로잡히거나 불행에 즐거워하지 않게 해 준 귀한 말씀이었다. 잠시 스친 인연이라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선생님이 계셔서 나라는 한 사람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그때를 생각하며 나도 누군가에 좋은 이야기를 해줬던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