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기사 May 29. 2017

자식이냐, 주식이냐?

21개월 전 철원의 신병교육대 입소식 마지막 순서인 아들과의 작별 인사 시간에 대부분의 엄마들이 훌쩍거리거나 질질 짰지만 난 울지 않았다. 몇몇 아빠들도 눈물을 찍어냈지만 난 울지 않았다. 다만 살짝 눈물만 비쳤다. 약 2초 동안만.

지 않은 기간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서운함과, 나만 안 울면 아들에게 너무 매정해 보일 것 같은 미안함을 섞은 눈물이었다.

그때만 해도 21개월이라는 시간이 과연 흐르기는 할 건지, 21개월 후에 늠름해진 아들의 얼굴을 볼 날이 과연 오긴 할 건지 믿어지지 않았는데 세월은 빠르게 흘러서 이제 7후엔 민간인으로서의 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은 입대 전 넉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입대를 보름 정도 남기고는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면서 적잖은 위로금과 축하금을 받았다.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이모, 고모,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내외 등 여러분들에게 받은 용돈까지 합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 돈으로 친구들에게 송별회 한답시고 많이 풀었는데도 꽤 많은 돈을 남겼다. 입대 전날 나에게 280만 원을 맡겼다. 제대 후에 그대로 돌려달라는 조건으로.


남편이 주는 생활비는 항상 빠듯하다. 남편은 나에게 매월 1일에 생활비를 준다.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남편으로부터 받는 생활비가 전부이다. 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꼭 필요한 것만 홈플러스에서 구입한다. 홈플러스 문을 나설 때 정문에서 파는 1,500원짜리 즉석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것도 망설일 정도로 나의 주머니 사정은 넉넉하지 않다.


아들이 입대 아들에게 지출되던 이 남으니까 그만큼을 제하고 생활비를 받을 게 뻔했지만, 어차피 남편도 자신이 아들에게 주던 용을 안 줘도 되고 하니 생활비그대로 유지하기로 남편과 어렵게 협상을 성공시켰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남편에게 좀 더 좋은 식단을 제공하기로 약속하고서.

그동안 생활비가 적다는 핑계로 남편이 좋아하는 고등어 요리는 제대로 해준 적이 별로 없었기에.


우스운 일이지만 입소식에서 단 2초 동안만 눈물을 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 거기에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생활비에서 여유가 생기는 것이 첫 번째 원동력이었는데, 입대 날 아들이 맡긴 280만 원으로 재테크를 할 생각까지 하니 아들의 입대가 마냥 섭섭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성경에 달란트(화폐 단위) 이야기가 있다. 주인으로부터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은 종들이, 주인이 출국한 동안 어떻게 재테크를 했느냐에 따라 상과 벌을 받은 이야기이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은 종장사를 해서 원금의 두 배로 돈을 불렸고 그 결과 주인에게 큰 칭찬을 받았지만, 한 달란트 맡은 종은 그대로 보관했다가 주인에게 그대로 돌려줬는데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고 꾸중을 들었다.


아들의 입대로 생활비에서 매월 생기는 여유가 20만 원씩은 될 거 같았다. 그 중 10만 원씩은 나의 바닐라와 남편의 고등어를 위해 쓰고 나머지 10만 원 21개월, 그러니까 210만 원을 아들의 원금 280만 원에 보태서 주식에 투자하기로 했다. 수익은 소박하게 1.5배를 예상했다.

원금(280+210)×수익 1.5=735


그렇게 되면 아들이 귀환할 때 아들의 원금 280만 원에 1.5배를 보태서 420만 원을 통 크게 돌려주고(이 대목에서 아들은 나에게 감동과 존경을 되돌려줄 것이다.) 매도 수수료 제하고 나의 투자금 포함 300만 원 이상의 여윳돈을 만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735-420-수수료=약 300

그 정도 돈이면 언니와 동남아 여행 럭셔리하게 다녀올 만한 큰 돈이다. 남편에게 손 벌리지 않고 당당하게.

ㅎㅎㅎ  


일단, 판세를 읽기 위해 도서관에서 세상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책과 잡지 읽었다.

보험회사 다니는 친구가 권한 증권회사에 용감한 언니와 함께 가서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

4차 산업, 로봇 산업, 하이브리드, 대체 연료, 첨단 바이오 산업, 환경 관련 산업이 유망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차삼성전자처럼 단가가 비싼 주식은 나 같은 개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겁나는 금액이고, 지금은 미약하지만 미래 비전이 보이는 회사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한 주당 만 원 안팎의 저렴한 회사만 골랐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과 누울 자리가 아니면 발을 뻗지 말라는 부모님 말씀을 충분히 존중하여 한 회사에 30만 원 이상 투자하지 않았다. 아들의 원금 280만 원을 10개의 회사에 고루 분산했다. 미래 비전이 몹시 보이는 회사들에게.

아름다운 투자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매월 내 돈 10만 원씩 계속 재투하려 했는데 도무지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생활비는 빠듯했다. 고등어 몇 번 더 샀고, 홈플러스에서 바닐라 아이스크 과감하게 사먹은 정도의 소심한 과소비뿐이었는데 여윳돈이 전혀 안 생기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생활비 총액 불변의 법칙에 말려든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망했다.

7일 후면 아들이 돌아오는데 아들의 원금 280만 원은 욕조의 물 빠지듯이 쑥쑥 빠지더니 잔고가 19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경기는 조금씩 좋아질 거라는데 왜 내가 투자한 회사만 죽을 쑤는지 모르겠다. 걸죽하게.

주식이라는 게 좀 그렇다. 내가 투자한 주식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어도 그걸 선뜻 뺄 수가 없다. 매도 수수료는 쌩돈 나가는 것 같고, 내가 빠져나가면 다시 오를 것 같고, 또 막상 매도한 후 그 돈으로 다른 주식을 산다고 해서 그 주식이 쭉쭉 오른다는 보장도 없고.

작전 세력이 개입되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의심해본다.


차라리 한 달란트 맡은 종처럼 가만히 놔두기만 했어도 말 그대로 본전은 하는 건데. 엄밀히 말하면 이건 배임 횡령인 거다.

 

세상은 4차 산업의 시대에 이미 들어섰고, 그러면 당연히 로봇이나 첨단 바이오 산업은 각광을 받을 것이고, 하이브리드, 대체 연료 산업, 환경 관련 산업은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빠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을 텐데 ….

이제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는데 ….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내가 투자한 회사들이 일취월장할 것 같은데 ….


처음부터 자식 하나 잘 되게 하려고 시작한 주식이었다. 정말 순수하게.

주식엔 욕심이 없었다.

자식을 위한 일편단심뿐이었다.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

동남아 여행은  남으면 가고, 안 남는다면 한 조각의 미련도 없었다.


난처하게도, 

7일 후 채권로서 귀환하는 자식.

1.5배의 수익, 1.5배의 칭찬, 1.5배의 자존심 UP, 럭셔리한 동남아 여행을 안겨줄 주식.

절묘한 기로에 서 있는 나의 절박한 운명!


언니에게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영문과나 연극영화과 근처도 안 가본 언니가 이죽거렸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

언니에겐 남 일이지만 나에겐 절실한 생존의 문제인데, 금방 터진 상처를 건드리고 있다.


자식이냐, 주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매거진의 이전글 좌파 여자, 우파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