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기사 May 14. 2017

좌파 여자, 우파 남자

뜻밖의 복병에 압도된 나의 정치 성향

다가구 주택 2층에 산다.

내 방 책상 옆에 창문이 있고,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보면 골목 건너편의 집이 보인다.

건너편 집 2층에는 두 개의 가구가 들어 있다.

우리 집 건물이 조금 높아서 두 집이 약간 내려다보인다.

두 집은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좌우 대칭으로.


두 집 사람들은 서로가 보이지  난 내 방 창문을 통해서 두 집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두 집의 베란다 창문을 통해 텔레비전과 그 주위 부분 보인다.


왼쪽 집엔 40대 초반 정도의 여자가 산다.

오른쪽 집엔 30대 후반 정도의 남자가 산다.

둘 다 혼자 산다.


왼쪽 집 여자와 오른쪽 집 남자 모두 아침에 나가고 저녁에 들어온다.

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기 때문 내가 그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저녁 8시 이후와 일요일이다.

물론 그들이 항상 그 시간에 집에 있는 건 아니므로 항상 그들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 중 누군가 귀가하여 거실 전등을 켜면 내 창문에 노란 불빛이 살짝 물든다.

물들었던 문이 어두워지면 두 사람이 모두 잠드는 것이다.


왼쪽 집 여자는 거실에 트레드밀이 있는데 자주 운동하면서 텔레비전을 다. 

덕분인지 왼쪽 집 여자는 몸에 군살이 없어 보인다.

오른쪽 집 남자의 텔레비전 옆에는 요즘 보기 힘든 LP 플레이어가 있다.

LP 디스크를 꺼내서 플레이어에 돌리고 음악을 듣는다.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듣기 때문에 무슨 노래를 듣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잠깐 크게 들린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의 조작 실수였던 것 같다.- 퀸의 <위아더챔피언스>였다.


절묘하게도 왼쪽 집에 사는 여자는 좌파이고 오른쪽 집에 사는 남자는 우파이다.

좌파 여자는 반드시 JTBC 뉴스룸을 보고 우파 남자는 MBC 뉴스데스크를 본다.

망원경으로 그들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제목을 보았다. 좌파 여자의 책장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미래의 충격>이란 책이 있고 '페미니스트', '민중'이란 단어도 보인다. 민중가요 그룹인 '꽃다지'의 앨범도 있다.

우파 남자의 책장에 있는 책 중 눈에 확 띄는 건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란 책이고, 재테크나 주식에 관한 책들 드론에 한 책도 있다. 그리고 LP 디스크가 수십 장 꽂혀 있다.


좌파 여자의 책장엔 '게 나ㄹ'라는 글자가 보이는 천으로 된 밴드가 놓여 있는데, 아마 그건 '이게 나라냐'라는 글자가 쓰여진 밴드를 접어놓은 것 다. 지난 겨울 광화문에서 그 밴드를 펼쳐 들고 함성을 질렀을 것이다.

며칠 전 집 근처 커피 전문점에서 봄바람을 느끼며 커피를 마시다가 건너편 빨래방에서 다 된 빨래를 꺼내는 우파 남자를 보았다. 커다란 태극기를 꺼내더니 물기를 탁탁 터는 것이었다. 태극기를 세탁하는 건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좌파 여자와 우파 남자가 사는 건물의 3층에 사는 아주머니는 우리 동네 통장이다. 요즘엔 통장이니 반장이니 하는 거 유명무실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남다른 책임감으로 동네 주민들을 열심히 살핀다.

퇴근하 통장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가씨, 우리 앞 살죠?"

"네, 안녕하세요?"

"아가씨는 참 공부를 잘 하나봐. 대학생이죠?"

"네? 아뇨. …."

"공부할 때 창문 꼭꼭 잘 닫고 해요. 작년까지는 좀 덜 했는데 올엔 미세 먼지가 너무너무 심해서 창문 열어놓으면 방 안으로 미세 먼지 다 들어가요."

"이중 창이라서 바깥 창문은 잘 안 열어요."

"그래요? 참 잘 하는 거예요. 일부러 본 건 아니고, 공부하는 모습 그냥 보여서 가끔 내려다봤는데 책상 앞에 어쩜 그렇게도 오래 잘 앉아 있는지 신기하더라구. 우리 아이도 대학생인데 얘는 책상에서 30분을 넘기는 적이 없다니까."

"네? 아, 네. …."


집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아 건너편 3층을 올려다보았다.

'에구! 공부하는 줄 알았구나. 이젠 미세 먼지도 많으니까 안쪽 창문까지 꼭꼭 닫아놔야겠네. 휴~'

불투명한 안쪽 창문을 닫았다.

방 안에 갇혀 있던 공기가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투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