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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PD Nov 13. 2021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를 생각하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번째는 그가 78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1번 타자 데이브 힐턴이 2루타를 날린 순간 불현듯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유명한 이야기. 그리고 두번째는 그가 처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책으로 군조신인상을 타서 등단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에게 "그런 소설은 나도 쓰겠다"고 했다는 이야기. 이어지는 하루키의 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한 사람치고 진짜 소설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런 수모를 겪던 그가 어떻게 30년이 넘게 소설을 계속 써올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것은 곧 어떤 일에서 꽤 오랫동안 일정정도 이상 성과를 낸 사람이 말하는 그것을 가능케 한 어떤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것은 곧 업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기초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181)



극히 일반적으로 말해서, 중년기로 접어들면 유감스럽게도 체력은 떨어지고 순발력은 저하하고 지속력은 감퇴합니다. 근육은 시들고 군살이 몸에 붙습니다. '근육은 빠지기 쉽고 군살은 붙기 쉽다'는 것이 우리 몸의 하나의 비통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그 같은 감퇴를 보완하려면 체력 유지를 위한 정기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 불가결합니다. 또한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나는 어느 젊은 작가와 인터뷰할 때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좀 극단적인 말이었고 예외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많은 작가들이 그런 자연스러운 쇠퇴를 문장 기법의 향상이나 성숙한 의식 같은 것으로 보완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183)



매일매일 달리는 생활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면서 나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조금씩 높아지고 창조력은 보다 강고하고 안정적이 되었다는 것을 평소에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수치를 내보이면서 "자, 이렇게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연스러운 감촉으로서, 실감으로서, 그런게 내 안에 있습니다 (185)



매일 달리는 소설가, 60이 넘어서도 여전히 현역인 소설가, 내가 20대일때부터 시작해 여전히 최고인 소설가. 역시 산문은 하루키가 최고다. 나는 하루키의 산문을 통해 산문이 주는 매력을 깨달았고 하루키의 글을 통해 직업인으로서의 소명과 자기계발방법을 배워나갔다. 하루키를 통해 직업인으로서의 태도를 배워나가고 있다.



마음이 헤이해질 때는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는다. 하루키는 누구나 소설가가 되기는 쉽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소설가로 '사는' 것이다. 어제 읽은 책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마케터가 되기는 쉽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케터로 사는 것이다. 

엄마가 되기는 쉽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엄마로 사는 것이다. 

돈을 한 번 벌기는 쉽다. 하지만 중요한 건 부자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는' 문제에는 자신만의 통찰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통찰의 시작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가는 게 첫번째다. 다른 건 모두 버리고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할 수 있는가. 사람들의 시선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태도를 계속해서 지속할 수 있는가. 그런 지속력은 단순히 마음가짐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실행에서 나온다. 지속적인 실행으로 다져진 피지컬의 힘에서 나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의 이 말은 언제나 옳다. 


"작가가 군살이 생기기 시작하면 끝장이에요." 


나는 이렇게도 읽는다. "마케터가 군살이 생기기 시작하면 끝장이에요. 기획자가 군살이 생기기 시작하면 끝장이에요. 대표가 군살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회사는 끝장이에요..." 요즘 살이 2킬로 쪘는데 정신이 바짝 든다. 오늘부터 달리기라도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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