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죄책감 사이
몇 개월간 눈에 밟히던, 개농장에서 오랜 모견 생활을 했다던 보호소의 작디작은 요크셔테리어를 결국 입양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불편한 다리에 천사 같은 얼굴을 한 이 아이를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키우고 있던 고양이와 개, 임보 중인 개 2마리까지 모두 4마리와 동물이 함께 지내고 있는 상황이라 망설였다. 그래도 건강 상태가 워낙 좋지 않으니 가는 날까지만이라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지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결국 데려왔다.
‘수미’라는 이 아이에게는 청승맞은 느낌의 이름은 밝고 명랑하라고 ‘뽀미’로 바꿔줬다. 미리 사둔 집에 들여놨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짖지도 않는다. 사람에게 고통받은 아이들은 끝까지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래 걸려도 마음을 열어주기만 하면 좋겠다.
건강 검진과 다리 상태를 확인하러 일산 동물 병원에 왔다. 여기 원장님은 유기견에 대해 잘 알고, 동물 중심의 치료를 지향하셔서 일부러 찾아온 곳이다. 간 수치를 잡는 게 우선이라고 하셨다. 다리는 슬개골이 아예 탈구되기도 했지만 근육 자체도 퇴화되어 치료가 어렵고 뽀미도 고통스러울 거라며 권하지 않으셨다.
꾸준한 약 복용과 좋아진 식욕 덕분에 간 수치가 많이 좋아진 뽀미를 중성화수술을 시켜주러 다시 일산에 왔다. 반복적인 임신과 출산, 출산 후 제대로 된 회복 기간과 수유 기간이 없었던 뽀미는 유선종양이나 자궁축농증의 발생률이 높다. 수술을 마친 수의사 선생님은 1kg을 간신히 넘는 작은 요크셔테리어의 자궁이 중형견인 코커 스파니엘의 자궁만 하게 늘어나 있었다고 하시며, 수술하길 잘했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약한 뽀미를 수술로 고생만 더 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한 켠에 있었는데 다행이다.
이제는 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안 움직이는 뒷다리를 이끌고 꺅- 하는 새소리를 내며 나를 마중 나온다. 뽀미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니 내 마음은 더 애틋해졌다. 산책을 데려갈 수 없어서 매일 베란다에서 뽀미를 안고 서서 바깥공기를 쐬어 준다. 배변 후 스스로 뒤처리가 용이하지 않으므로 매일 궁둥이 목욕을 시켜주고 있다.
이렇게 오래 같이 지내면 좋겠다.
동물들도 아픈 동물은 건드리지 않는다. 시샘 많은 햇님이도 내가 안고 있는 게 뽀미이면 못되게 굴지 않는다. 뽀미가 방 한가운데에 앉아 있으면 다들 뽀미를 건드릴 세라 조심스럽게 다닌다. 다른 개들이 신나게 놀면 뽀미도 덩달아 즐거워한다. 오랫동안 힘든 삶을 견뎌왔음에도 뽀미의 얼굴에는 천진함이 빛난다.
이렇게 좀 더 오래 같이 지내면 좋겠다.
며칠 전부터 식사량이 줄어든 뽀미가 걱정이었는데 하루 종일 물도 먹지 않았다고 동생이 근심스럽게 알려줬다. 입이라도 축일까 싶어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뽀미 입 부근에 대봤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뽀미가 손가락을 물었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는데도 손가락을 놔주질 않았다. 발작인 것 같았다. 손가락을 억지로 떼어내고 근처 동물 병원으로 데려갔다. 간 수치가 떨어져서 간성 발작이 왔던 거니 입원해서 간 수치를 좀 올리자고 했다.
덜먹기 시작할 때부터 병원에 와 볼걸,
몇 개월 전에 정상이었던 간 수치만 믿지 말고 좀 더 살펴볼걸,
매일 궁둥이 목욕을 시킬 때 쓴 샴푸가 혹시 독했던 걸까,
제일 먼저 올라온 건 자책감이었다. 수액줄을 꽂은 뽀미에게 제발 잘 이겨내 달라고 오랫동안 되뇌다 집으로 왔다.
출근하자마자 동물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새벽에 뽀미가 죽었다고 했다. 어젯밤 병문안 갔을 때 곧 떠날 거라면 집에 데리고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뽀미는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호흡기까지 하고 있었는데 수의사는 수액을 맞고 있는 편이 예후가 더 좋을 거라며 두고 가라고 했었다.
어젯밤에 데려올걸, 데려오겠다고 더 강하게 말해볼걸.
수련의가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전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이 길로 가는 게 맞는 거야?”
밤 10시가 가까워지는 8월 중순의 무더운 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화성군의 좁은 외딴길을 남자 친구 차를 타고 가는 중이다. 내 무릎 위에는 동물 병원 냉동실에서 꺼내온 뽀미를 담은 박스가 놓여 있다.
곧 산으로 막혀버릴 것만 같은 길이었는데 좀 더 가니 깜깜한 논 한가운데 유난히 밝은 가로등 불빛을 받고 있는 단층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입구에는 데크가 있고 지붕이 있는 목조건물이다.
입구 부근에는 꽃이 피거나 푸르거나 꽃망울을 달고 있는 다양한 식물의 화분들이 빼곡히 놓여있다.
주인장은 식물을 잘 돌보는 재능이 있나 보다 잠시 생각한다.
주변에 온통 논이고 건물이라고는 여기 하나다. 한여름 밤 개구리들의 떼창이 묘하게 정적을 강조한다.
자동차가 아니라 포털을 통해 왔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예약하신 분이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서울 근교에 몇 곳 안 되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으로 화장장과 납골당을 겸하는 곳이다. 삭발한 민머리에 다부진 체격을 한 근육질의 중년 남자가, 민소매와 무릎 한참 위의 짧은 반바지를 입고 예의 바르다 못해 매우 공손한 자세로 우리를 맞이해줬다. 외모의 느낌과 너무 다른 예의를 갖추려는 장례사의 태도가 비현실적인 감각을 더 높인다.
우락부락한 외모의 중년 남자는 여전히 공손한 태도로 진행 절차를 설명해 준다. 삼베로 잘 싸고 나면 준비된 제단에서 원하는 대로 제를 지낼 수 있고, 그 뒤에 반려견이 생전에 사용하던 옷가지나 장난감 등을 관에 같이 넣고 태울 수 있다. 약 1시간 반 정도의 화장 절차까지 끝나면 뚜껑이 있는 도자기 단지에 골분을 넣어 준다.
“기독교식, 불교식, 유교식 제단이 있는 있는데 어느 걸 사용하시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못하겠어요.”
제 대신 관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뽀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2시간쯤 지난 후 뽀미가 담긴 단지를 받아서 돌아왔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듯이 강이나 바다에 골분을 뿌리는 것은 사실 불법이다. 대개는 자주 산책하던 곳이나 좋아하는 하던 장소에 뿌려준다는데, 뽀미는 산책을 나가본 적이 없어서 뿌려줄 곳이 없다. 납골 단지는 내 마음이 내킬 때까지 갖고 있기로 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이따금씩 뽀미 생각이 날 때면 단지에 말을 걸곤 한다.
뽀미를 보내고 나서 한동안 “뽀미”라고 발음조차 할 수가 없었다. 고통 중에 가장 큰 부분은 죄책감이 차지하고 있었다.
많이 안아줄걸, 더 많이 사랑한다 말해줄걸, 건강이 좋아졌다고 방심하지 말고 꾸준히 더 관찰할걸…
아무리 해도 죄책감이 줄어들지 않았다. 믿지도 않으면서도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게 돈을 지불하고 뽀미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뽀미는 잘 지낸다고 했다. 그이가 정말 죽은 뽀미와 소통을 했다고 믿진 않지만, 신기하게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간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내세를 믿지는 않지만 왠지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애도”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매일 뽀미와 지냈던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리플레이했다. 혼자 미소 짓고, 울고 웃으면서 매일 반복해서 리플레이했다. 여생이나마 편하게 보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데려왔고 사실 뽀미 일생 중 가장 편한 날들이었을 게다. 아픈 아이라 다른 어떤 애들보다 먼저 생각하고 더 많이 챙겨줬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리플레이할 때마다 여전히 목이 뻣뻣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7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뽀미가 입원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와 휴가차 바닷가에 다녀왔던 나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