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어도 더 나아가고 말테야.

[ep-8] Running

by Rick

“나는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러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무척 좋아한다.”


수술을 받고 2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5km를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실에 누워 주문했던 신상 러닝화의 끈을 꽉 묶고 워치를 러닝모드로 전환했다. 불과 한 달 전보다 살이 10킬로나 빠졌지만 덕분에 몸은 한층 가볍다고 느껴졌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수술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배에 복대를 해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하하 해인이가 알았더라면 아마 날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그냥.. 누가 왜 이렇게 까지 하냐고 물으면 아마,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이외의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30여분, 객기에 가득 찬 시간들이 흐르고 나는 힘들었다. 초반엔 복부가 욱신거렸고, 폐도 아직도 제 역할을 못하는지 기분 나쁜 통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호흡이 잡힐수록 이내 그 통증들은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달릴수록 다리는 힘이 풀리고 곧 쓰러질 것 같았다. 그게 체력이 바닥이라서인지, 내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암세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도 나는 땀을 흘리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니까.


10년 전쯤 불면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이유도 알 수 없이 시작된 불면증은 급격히 심해져서 나중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한숨도 못 자고 출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엔 수면제를 처방받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고 굳이 원인을 찾자면,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자 책임질 것이 많아졌다는 사실, 그 무게감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평생 좋아하는 일만 찾아다니며 자유롭게 살던 내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는 건 기분 좋은 변화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꽤 무거운 책임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다고 약에 기대고 싶지는 않았다. 딸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고, 그 기억에 어떤 사족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잠 못 이루던 어느 날, 서재에 앉아 고민하다가 문득 초등학교 때 오래 달리기를 하고 집에 와서 저녁 여섯 시에 곯아떨어진 게 떠올랐다. “그래, 달려보자. 달리다 쓰러져 잠들 수도 있잖아.” 그렇게 내 첫 러닝이 시작됐다.


당시 나는 담배를 15년간 피웠고, 운동은 손 놓은 지 오래라 몸 상태는 꽝이었다. 처음엔 2km만 뛰어도 헉헉댔고, 큰 각오를 하고 시작했음에도 5km까지 늘리는 데 보름이 걸렸다. 걱정했던 폐는 금방 적응했지만 무릎이랑 허벅지가 문제였다. 그래도 계속 뛰었다. 4일 동안 못 자고 있던 어느 날, 결국 5km 완주에 성공했다. 몸은 엉망이었지만 완주 후 몰려온 도파민은 모든 피로를 날려버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게 정말 수면제보다 나을 수도 있겠구나.”


두 달쯤 지나서는 하루에 뛰는 거리를 20km까지 늘렸다. 낮에는 무릎통증에 시달리며 심할 땐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며, 저녁엔 10km, 새벽엔 또 10km, 러닝은 철저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늘 10km 뛰었네. 그래도 잠이 안 오니 내일은 그 이상을 가야겠군.”


그리고 마침내 한 번에 뛸 수 있는 거리를 20km까지 늘렸던 날에, 달리며 꽤나 신기한 경험을 했었다. 주변의 소리들이 고요해지고 몸은 가벼워져 마치 이렇게 밤새도록이라도 달릴 수 있을 거 같은 느낌. 마치 싸움처럼 시작된 나의 러닝은 어느새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잠 못 들던 여느 날처럼 침대에 누웠고 그날의 러닝을 복기할 새도 없이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9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웃으며 내가 한 말은,

“그게 원인이 뭐였든 간에, 겨우 20km에 굴복하셨군. 난 심지어 아직 더 뛸 수도 있는데 말이지 “


이때 나는 정말, 마라톤의 유래에 나오는 어느 병사의 이야기처럼 달리다 쓰러져 죽을때까지 달려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뒤에도 러닝을 하지 못하는 날이나, 삶의 무게가 내 어깨를 누를 때면 다시금 불면증은 고개를 들었지만, 괜찮았다. 그것은 이미 극복해 본 ‘지속되지 않을 불편함‘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불면증은 조금씩 내게서 물러나고 있었다.

그 후,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끔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꼭 내 얘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응원한다.


“마음의 병은 소리 없이 우리를 잠식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건강한 몸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극복가능한 불편함 입니다.“



아마 내게 있어, 앞으로의 러닝은 조금 다를 것 같다. 이번엔 정신이 몸을 이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술과 앞으로의 치료로 인해 예전처럼 달리긴 버겁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설사 억지라고 해도, 나는 여전히 러닝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달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달리다 보면 모든 것은 희미해져 오직 내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거든. 산들바람이 불어올 때 희미해진다는 건 이미 내가 이겨낸 것들이란 얘기지. 결국 그렇게 된다는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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