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 2022.8.16 - 8.19
저 멀리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발로 인해 모래 유실 등의 문제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곡선과 빛깔 가득한 제주의 해안선은 살아있었고 나는 연신 감탄했다. 기상 악화로 기도가 절로 나오는 비행을 하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2-30분 뒤 겨우 착륙했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 온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거의 20년 만에 제주도에 왔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간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오랫동안 관광명소로 알려진 곳들을 훑었을 뿐 그다지 의미 있는 기억은 없다. 그것이 아니면 최근까지 다른 사람의 여행기만 간접적으로 듣고 보았다. 이 모든 직간접적 경험으로 제주도에 대한 선입견을 갖은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내가 만난 제주도는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이곳에서 부모님과 내가 나흘 머무는 중, 하루는 거의 온종일 비가 쏟아져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고, 날이 괜찮으면 동선에 맞게 자연 지형지물을 체험하거나 숙소 근처 해변가를 즐기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중문에 있는 우리 숙소에서 조금만 걸으면 닿는 석달 해수욕장에는 서퍼들이 꽤 많았다. 새까맣게 그을리고 몸이 탄탄한 서퍼들을 보고 있노라니 덩달아 상쾌해졌다. 날 좋은 어느 아침에 우리 가족은 작정을 하고 물놀이에 나섰다. 나는 파라솔 밑 그늘에 앉아서 파도를 타거나 모레 찜질하는 부모님을 지긋이 바라보고, 주변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 소리가 크게 들리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뭔가를 듣기 마련인데, 이곳은 파도 소리가 사람 소리를 충분히 감싸 안아 그런지 귀가 편안했다. 마침 전날 이니스프리 제주 하우스에서 무료 배포하던 책자를 들고 왔다. 제주도의 속살이 느껴지는, 이 섬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조적이면서도 따뜻한 진심이 담뿍 담긴 글들로 가득했다. 이니스프리의 제품 광고조차 곱고 예쁘게 스며들어 있었다. 제주 해변가는 이 책자에 담긴 글들을 읽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나의 의식이 파도 소리의 곡률을 타는 듯 글 위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해 질 무렵의 이 해변은 진한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모든 순간은 유일하다. 그때의 노을, 바로 그 채도와 질감은 지속적으로 바뀐다. 서서히 어두워지다가 한순간에 깜깜해진다. 나는 순간을 꽉 붙들어내고 싶었다. 연출가처럼 부모님을 유도해가며 부부가 함께 걷는 모습을 열심히도 찍었다. 우리 가족이 휴가다운 휴가를 다닌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생을 살아내는데 몰두했던 부모님은 휴식과 즐거움을 이제야 알아가신다. 내가 찍은 몇 컷의 사진이 뒤늦은 신혼여행 사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뭉클해졌다. 우리도 예전과는 다르다.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지질학자나 지리학자라면 신이 났을 것 같다. 산방산, 송악산 등 전에 보지 못한 완만한 곡선의 크고 작은 오름과 기암괴석이라고 하기에는 기괴하기보다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현무암 바위와 돌들이 장관이었다. 매끈하고 인위적인 세상에 흐려진 눈이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깨끗이 씻겨진 듯했다. 주상절리가 왜 내 심리적 지형도에 새겨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음악이 누군가를 무언가를 닮는다면 그것이 자연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지난해 발매한 솔로 피아노 앨범의 한 트랙 제목을 “Columnar Jointing”으로 지은 것은, 이후에 만날 철원의 주상절리와 제주의 대포 주상절리를 내 삶 안으로 부르는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포 주상절리는 5각, 6각의 다소 큰 기둥들이 병풍처럼 솟아있는데 나의 관찰 시점에서는 긴 기둥보다는 침식되어 낮은 절리의 마치 벌집과 같은 문양을 한 윗면이 더 잘 보였다. 이에 부딪히며 나타나는 파도의 다양한 모양이 또 볼 만했다.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높이가 30~40m, 폭이 약 1㎞ 정도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제주도 천연기념물 제443호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하루는 근처 해녀의 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음식이 느리게 나오네, 양이 적네, 현금만 받네 하는 불만 섞인 리뷰가 많이 있었지만 감안하고 찾아갔다. 커다란 전복 덩어리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는 투박하고 진한 전복죽과 해녀 하르망들이 직접 딴 멍게, 소라 등이 나오는 모둠회를 먹었다. 회의 양과 크기가 워낙 적고 작기는 했으나 신선함은 이후에 간 다른 유명 맛집의 모둠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허리가 90도로 굽은 하르망이 인상 쓰면서 음식 주문도 받고 하시는데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맛있다는 제주 무로 만든 깍두기는 원 없이 가져다 먹었다. 할머니들과는 유독 티키타카를 잘하시는 아빠가 하르망의 현금 요구에 ‘현금 여기 있소’하며 받아치니 하르망이 재미있었는지 낄낄 깔깔, 호호하며 한바탕 웃으셨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적극적으로 인사하는 엄마까지 보시고는 사이다, 콜라 좀 챙겨가라고 하시는걸 괜찮다고 하며 나왔다. 해녀 하르망들과의 첫 만남이 나는 즐거웠다.
제주공항을 향하는 마지막 날 1100 고지 가는 길을 드라이브를 했다. 무엇을 기대할지 모른 채 그래도 한라산 근처에는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중문에서 제주시로 가로질러 올라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지대가 높아지면서 바깥 온도가 서서히 떨어지더니 26도 정도로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산의 박무(薄霧)를 헤치면서 달리다 보니 어느덧 1100 고지 휴게소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니 가장 가까이에 삼형제 큰오름이 있어서 이곳을 다녀야 하나 싶었는데, 바로 건너편에 15분에서 20분짜리 짧은 산책길이 습지를 중심으로 조성되어있었다. 습지라 하면 예전에 뉴올리언스의 Lacombe라는 지역에 있는 큰 규모의 습지라던가 자주 다니던 보스턴 근교의 작은 습지가 기억나는데, 두 곳 모두 바닷가 근처나 큰 호수 근처에 있는 등 지대가 낮은 편에 속했다. 1100 고지 습지에 와서야 고지대 습지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현무암 돌의 트멍(틈)을 꽉 채워가며 자라는 이끼, 네댓 개의 서로 다른 종류의 식물이 한자리에서 엉겨서 자라는 특이한 식생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여럿 지나 보내면서 시간을 들여 우리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한라산의 자연과 교감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본 달팽이 중 가장 멋진 녀석을 만났다. 가히 세계 최고 미남 달팽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스치는 인연이지만 ‘1100 신사’라고 이름도 지어줬다.
저지리 예술인 마을에 있는 현대미술관, 김창열 미술관 등에서도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엄마의 강력추천으로 방문한 4.3 평화공원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과 숙제를 안겨주었다. 이전 제주 여행에서 엄마가 혼자 드라이브 중에 우연히 발길이 닿아 이곳에서 6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읽고 불의에 저항할 겨를 없이 그저 그런 소시민으로 삶을 사셨다며, 육십 평생 세상에 속고 산 것이 너무나 약이 오른다고 하셨다. 그리고 꼭 나를 데리고 오고 싶으셨다고 했다. 내비게이션을 찍으면서 아빠는 ‘여기 아닌 거 같은데, 운동권이 만든 그런 곳인데..?’라며 다른 곳을 검색하며 가기를 거부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그곳이 맞아. 4.3 희생자를 추모하는 평화의 공간이야’이라고 고쳐 말하니 별말씀 없이 함께 가셨다. 기념관에는 풍부한 사실 위주의 사료들이 시간 순서에 맞게 4.3 저항과 학살의 역사를 낱낱이 밝혀놓았다. 존립의 이유에도 의문이 들고 사용된 예산이 아까울 정도로 형식적인 기념관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곳은 달랐다. 그저 건조한 사실만 읊는데도 참상으로 인한 아픔과 절절한 마음이 크게 울렸다. 지난하게 이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다가 그 끝에 한줄기 빛이 등장했다. 4.3 특별법 제정을 시작으로 대통령의 공식사과 등, 회복의 역사 또한 시작이 되었다는 사실이 눈물 날 정도로 위로가 되었다. 이 기념사업이 제주민들의 아픔을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념적 잣대로 왜곡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공간이자 한국의 분단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고 통일의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야, 이제야 제주가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제주의 자연이 하는 말, 제주의 역사가 하는 말, 제주 사람들의 삶의 그 미쁜 꼴이 하는 말. 물론 제주의 현재를 새로이 만들어 가는 이주민과 여행객들도 이 땅의 일부이지만, 하르망 하르방들처럼 거친 바람과 돌 틈에서 기어코 삶을 피어내는 풀 같이 강인하게 견디어 살아낸 사람들이야 말로 제주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국이 매섭게 굴던 세월 풍파 다 맞아가면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어온 그 모든 시간을 통째로 품고 계신 어르신들 말이다.
멀리서 보고 전해 들었던 제주는, 요즘 같으면 그저 여행하기 좋은 곳이고 역사적으로는 한반도 구석진 곳의 소외된 곳인 것 같았다. 옛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경제적인 거세와 같은 유배지였고, 광복 직전 일본제국 군인들에게는 최후의 보루였고, 미국 트루먼 정부에게는 남쪽 한국을 미국 영향권에 있도록 하기 위해 무력을 써서라도 통제해야 하는 섬이었다. 그러나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섬의 자연이 제주 사람들을 품고 버티고 지켰으며 제주 사람들은 그 자연과 닮은 말을 하고, 삶을 살고, 그렇게 자연에 맞서고 또 기대며 조화롭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제주도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더 알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은 그런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