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비가르 사망

상위리그에 가려진 하부리그의 열악한 현실

by 김산

"또 하나의 별이 졌다."

빌리 비가르는 아스날 유스 출신으로 잉글랜드 7~8부 리그의 세미프로 클럽 '치체스터 시티' 소속 선수였다. 아스날 유스에서 긴 시간을 보낸 뒤 더비 카운티, 이스트폰 보로, 헤이팅스 유나이티드 등 하부리그 팀을 전전했다.

한국시간 9월 26일 아침, 빌리 비가르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비가르의 유족은 "비가르가 사랑하는 스포츠를 하다가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큰 충격이다."라며 황망한 현재 상황에 대해 말했다. 비가르가 거쳐간 아스날, 더비카운티 등 유럽의 여러 팀들이 애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

출처 :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이번 사건은 상위리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진 축구계의, 그리고 하부리그의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는 사회적 참사에 가깝다.

빌리 비가르는 한때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구단인 아스날의 유스 아카데미에서 성장한 재능 있는 공격수였다. 그는 아스날에 스카우트된 날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불렀을 만큼,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순수하고 뜨거웠다. 비록 최고의 무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그는 여러 하부리그 팀을 거치며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꿈을 앗아간 것은 상대 선수의 거친 태클이 아니었다. 경기장 가장자리에 위치한 차가운 콘크리트 벽이었다. 지난 21일, 치체스터 시티와 윈게이트 앤 핀츨리의 잉글랜드 이스트미안 리그 경기가 펼쳐졌다. 수비 상황 중 공을 걷어내려던 비가르는 경기장 콘크리트 벽에 그대로 충돌했다.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그는 '코마' 상태에 빠졌고 며칠간 사경을 헤멘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하부리그 경기 환경이 얼마나 위험한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고가 발생한 윈게이트 앤 핀츨리의 홈구장

최상위 리그 경기장은 엄격한 안전 규정에 따라 관리되지만, 재정이 열악한 대다수의 하부리그 구단에게 이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낡고 위험한 시설, 최소한의 의료 지원 시스템, 고르지 못한 잔디 상태는 선수들의 건강과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빌리 비가르의 비극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던, 예고된 인재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경기장 시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축구계는 거대한 양극화의 늪에 빠져 있다. 천문학적인 중계권료와 스폰서십은 상위 리그 구단들의 독차지이며, 하부리그 구단들은 오직 소수의 관중 수입에 의존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다.

이러한 불안정한 재정 구조는 고스란히 선수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임금 체불은 일상이며, 많은 선수들이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병행하며 그라운드에 선다. 부상을 당해도 제대로 된 재활을 지원받지 못하고, 은퇴 후의 삶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빌리 비가르와 같은 수많은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단지 축구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아스날을 비롯한 많은 구단이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축구계가 하나의 가족처럼 슬픔을 나누는 모습은 분명 감동적이다. 하지만 슬픔과 추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축구협회와 상위리그는 하부리그의 열악한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하부리그를 위한 근거있는 수익구조를 마련하여 최소한의 안전 규정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경기장 시설에 대한 정기적인 안전 점검을 의무화하고, 모든 경기에 기본적인 응급 의료 시스템을 갖추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스물한 살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단지 하나의 별이 졌다는 문장만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빌리 비가르의 이름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2, 제3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부리그의 여건을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팔로우하는 것이다. 그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축구계 전반에 던진 무거운 질문에 이제는 답해야 한다.


-


빌리 비가르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적시장의 'MZ‘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