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있습니다.
무서운 영화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눈물이 타오르는 영화였다. 주인공 아서는 어머니를 아기처럼 소중하게 돌보며 산다. 그런데 그 엄마는 사실 아서를 학대하고 방관한 가해자였다. 어른이 된 아서는 그 사실을 문서로 보기 전까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당한 채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망상으로 달래며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부 다 내 얘기다.
작가가 심리학 공부를 많이 했나 보다. 가정에서 존중받지 못한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 어떤 악순환의 고리에서 맴도는지 다 알고 쓴 이야기였다. 물론 나는 아서처럼 범죄자가 되지 않았고, 남 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려 알콩달콩 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불안이 남아 24시간 나를 괴롭힌다.
살아오면서 받은 무시와 냉대와 비난과 폭력이 나를 구성했다.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러 겹의 포장지로 가렸을 뿐이다. 남들 다 울 때 울지 못하는 아이가 나였고, 남들 다 웃을 때 웃지 못하는 사람이 나다. 아서랑 슬프게도 똑같다.
아마도, 아이를 만나지 않았으면 그냥 계속 그런 채로 살았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우주이기 때문에, 이 마음을 자녀에게 전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 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커’는 아주 감사한 영화다. 내 아픔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거울처럼 보여주었고, 흘리고 싶었던 눈물을 흘리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림책 ‘강아지똥’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절대 부정했던 상처를 이제야 인정했고,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이제 막 깨달았을 뿐이다. 좀 더 내 마음 깊은 곳을 샅샅이 뒤지고, 깨끗이 씻어내고 싶다. 더 나은 내 삶과,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