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서정원에서 약용이 되어본다.
강진의 백운동 별서정원을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났다.
이박 삼일의 짧은 나들이를 끝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그 느낌을 신이 나서 써 내려갔는데 마지막 순간의 실수로 모두 날려버렸다.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또 한 시간을 허비하다 결국에는 포기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정원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좋은 계절이었고 좋은 친구가 함께한 여행이어서 그랬을까?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정원에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져서일까?
눈을 감고 그려보면 아담하고 소박하고 평화로운 정원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곳에는 12경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고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그 아름다움을 시로 옮기고 그림을 통해서도 그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그 12경의 아름다운 경치는 무엇 하나 두드러지거나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없다.
어떤 착취나 수집의 흔적도 없고 그저 자연과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정원 내부의 쪽문을 나와서 열 서너 걸음이면 오르는 낮은 언덕 위에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그곳에 앉아 별서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흐트러진 내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느낌 말이다.
눈을 감고 정자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니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작은 풀벌레의 속삭임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눈을 뜨면 깨진 유리창 같기도 한 수풀 사이로 멀리 옥판봉이 보인다.
월출산의 서남쪽 끝자락이라는 옥판봉은 바위 하나하나가 각자의 사연을 간직하고 우리가 이렇게 바라볼 때마다 그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오래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하루 온종일 이 자리에 앉아서 그 옛날 관직과 권력을 멀리하고 이곳에 정원을 만든 "이담로"가 되어보고, 강진에서의 오랜 유배생활 중에 이 정원을 찾았던 "정약용"이 되어 그들의 시선으로 옥판봉과 정원을 바라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갈 듯하다.
팔각정에 기대앉아 그런 상상에 빠져 있는데 친구 두 명이 이제 그만 가자고 소리를 지른다.
나는 지난 8월 방콕 여행 중에 짐톰슨 하우스를 방문했었는데, 세계 2차 대전 중 태국의 매력에 빠진 미국 군인이 종전 후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우리로 치면 소쇄원과 같은 집을 지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태국 전역을 돌며 불상을 비롯한 희귀한 물품들을 수집하여 전시했고, 지금은 태국 정부에서 문화재로 지정해서 관리하고 있는데, 그 관리 수준이 우리의 문화재와 비교하면 너무 부러운 정도였다.
사실 그 톰슨 하우스 별거 없었고 태국 전역에서 오래된 목재를 가져다 전통방식과 서양식을 합친 건축을 하고, 전국을 돌며 희귀한 물건을 수집하여 전시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정원처럼 자연과 건축물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수집하거나 갈취한 아무것이 없어도 아름다운, 그런 맛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진을 출발한 우리는 땅끝 마을 해남으로 향했다.
그곳은 땅끝이라는 상징성 말고는 별게 없었다.
항상 보이는 바다와, 바닷가에서든 상점에서든 어디서나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고 문득문득 비린내음이 훅 하고 지날 뿐이었다.
완도에 들어가서 청해진을 두 바퀴 둘러보았다. 한 바퀴만 돌고 나오기에는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섬과 섬을 연결한 다리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또 청해진 언덕에 올라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곳에서는 웬일인지 무한한 청춘의 꿈을 꿀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 옛날 장보고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짧은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고창 선운산을 오르며, 산행이 끝나고 장어집으로 달려가 복분자를 마시며 우리 남자 셋은 끝없이 수다를 떨었다.
어쩌면 몇 년 전에 그리고 작년에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반복이 계속된들 아무려면 어떤가?
이미 우리는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잃었고, 그 세월의 깊이만큼 우정도 무르익었고 우리 모두는 함께한 시간에 그리고 또 함께 할 시간에 감사하고 있는데...
이제 우리는 늙어감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우리보다 아름답다고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다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진리라고 또는 정답이라고 믿었던 대부분의 것들이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고 심지어는 내가 지금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조차 확신이 없어졌다.
정직하고 진실하고 그리고 성실하고 이런 것들이 결국은 우리를 행복한 길로 인도할 것으로 믿었는데 이제 그런 확신은 없다.
계속해서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확신만 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