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굽고싶다

왜 노력하는 사람에게 왜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까.

by 히냐히냐

노력을 해서 이뤄놓은 게 많을수록 아이러니하게 기회는 오히려 좁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빵집 블랑제리르물랑 사장님이 직원(알바)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리와 베를린에 유학까지 다녀오시고 눈물날만큼 맛있는 빵을 만드시는 분이다. 그 사장님 밑에서 빵을 배운다면 뭔가 잘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렇게 하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내가 끌리는 일을 하고 싶다. 즉, 빵을 만들어보고싶다.

빵을 만들면 폭삭 망하거나. 그럭저 하거나. 엄청 크게 성공할 수도 있다.

즉, 상하방의 폭이 큰 자영업자의 길인 것이다.

나에게 빵을 만든다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봐야하는 것이기 때문이. 대학과 직장 그 무엇도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과연 내가 이뤄놓은 것 없이 대충 삶에 만족하면서 일용직이나 단기 알바로 전전면서 살았다면??

아마 그 빵집 사장님의 알바 자리가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바로 연락했을 것이다. 이 경우엔 오히려 더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왜 노력하는 사람에게 왜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까. 노력을 해 무언갈 성취(쟁취)한 사람들은 왜 삶을 개척하기 위해 더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걸까. 가진게 없을 땐 선택지가 많은, 무언가 갖게 되면 오히려 그게 족쇄가 된다.

내가 이런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 빵집에서 기술을 배우고 나중에 빵집을 물려받다가 대박이 난다면, 나는 또 그걸 부러워할 것인가?

부러워하면 안되는 것인가?

만약 그 사람도 안정적인 회사를 포기하고 빵의 길로 도전한 것이라면 박수받아 마땅하다. 부럽지가 않고 존경스럽기까지하다,

근데 만약 그 사람이 그냥 대충 일용직 알바나 하고 삶에 큰 의욕 없다가 그냥 빵을 만들어보고싶어서 한번 도전(이라하기도 뭐한) 해본 것이 대박난 것이라면 솔직히 배가 많이 아플 것 같다.

사실 이 두사람의 케이스에서 빵을 만들 용기가 같은 크기의 용기라고 할 수 있을까.

잃을 게 많은 사람이 내딛는 한 걸음과,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내딛는 한 걸음은 무게가 다르다. 같은 길을 가도 그 사람의 발걸음에 얹힌 책임과 무거음이 다르다.

결국 삶은 공평하지 않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실패할 자유’가 있고,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잃을 두려움’을 짊어진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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