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잠바

by 연이민

가을에 걸맞은 잠바가 갖고 싶다.

올해 생일 선물을 묻는 그녀에게 가을 잠바를 부탁했다.


맞춘 것처럼 꼭 맞을 필요도 없고, 단지 회사 출퇴근 길에 걸칠만한 것. 격식을 차리지 않은 편안한 옷임을 밝혔다. 불안감이 전반적으로 높은 그녀는 선물을 고르는 과정 내내 나의 의사를 확인했다. 적당히 힌트를 주며 피해도 구체적으로 선택에 개입하기를 원했고,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바란 나는 오래된 연인이 조금 질린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것을 주어도 기쁘게 입을 테니, 네가 고른 걸 입고 싶어.


라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선물 고르는 과정 내내 앓던 그녀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물은 이번 주 주말에 나의 집에 도착한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땐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지만 시리지 않았고, 가을이 되기 전 지금의 타이밍이 제법 괜찮다고 느꼈다.


거대한 천이 들어있는지 부푼 택배 봉투를 보며, 기대감도 부풀었다. 봉투를 해체하니 남색, 주황색, 베이지색이 격자로 겹친 무늬의 플리스였다. 그걸 입은 모습은 침팬지였다. 팔에 비해 너무도 긴 팔과 넓은 통. 디자인을 고뇌하던 그녀는 내가 평균 여성보다 작은 크기라는 것을 잊었나 보다.


전화로 환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하고 환불 양식서를 작성했다. 따라서 필요한 그녀가 주문했던 기록을 보면서, 왜 여성 전용이 아닌 남녀공용 플리스를 샀을까? 란 생각이 들었고, 그녀에게 야속한 감정을 느꼈다. 나의 의사를 껴넣지 않고서는 나에게 적합한 잠바를 고를 수 없었을까? 그 새가슴으로 끙끙 앓던 결과가 이거였다니, 실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서글픈 기분이 들었고, 그녀의 센스 부족은 사과할 수 없는 기질처럼 다가와서 미안한 일도 못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속에서 지펴진 불은 길길이 날뛰어서 어디론가 뻗어가고 싶었고, 어쩔 수 없이 그 불길은 그녀에게로 흐른다.


어쩔 수 없지만 실망이 크다

미안해


이깟 대화가 지나가고, 기가 죽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실패한 것은 당신인데, 감히 네가 시무룩해?"라는 업신여기는 미움까지 들었으나, 나의 감정에 동요되고 휘둘리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화를 받아냄이 마땅한 사람. 사랑할 사람을 나로 골랐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한 선물에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미움받는 사람. 모멸의 시선을 문득 멈추었다.


남들에게도 나는 이러는 가? 남들에게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내가 그녀에게 의기양양 분노의 지분을 그녀에게 찾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나에게로 흐르는 사랑 때문이었다. 현재 나를 이루는 삶의 지반이 튼튼하고 완전했다면 겨우 잠바 하나에 분노하는 사람은 되지 않았을 텐데, 다음을 기약하며 여유 있게 연인을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에 남은 분노는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대로 되어주는 연인이 행한 마음대로 되지 않은 단 한 가지에 분노했다. 그 자격이 주어진건 상대의 관용에서 비롯된 것이고, 내가 진정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마음대로 되는 연인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짜증을 들어 마땅한 사람이란 없다. 자비로운 천사 라파엘은 5년 된 애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나의 곁에서 모든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 못난 인간에 묶여버린 그 천사가 너무나도 안쓰러워서, 나의 죄를 고할 수밖에 없다. 못난 내가 화가 난 것은 못난 잠바가 아니라 못난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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