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대한민국 죽음사용설명서
珍光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초고령자가 된 입장에서 왜 이때까지 죽음을 성찰할 기회가 없었는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결코 늦은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암묵적 금기어로 여겨져 왔다고 할 수 있다. 2026년의 한국은 여전히 유교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네트워크 시대를 선도하는 멀티태스킹 사회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적 가치관과 묘하게도 일치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실리를 추구하면서도 겉으로는 명분을 중시한다. 그럼에도 이 모순을 심각한 갈등으로 느끼지 않는, 하나의 이중사회이기도 하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우리의 전통적 공동체 사회에서는 사람의 숨이 끊어지면 집안의 어른이 중심이 되어 이를 확인하고(임종臨終), 상이 시작됨(초상初喪)을 가족과 친족에게 알림으로써(부고訃告) 장례 절차를 시작하였다.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혀(염습斂襲) 관에 모시고(입관入棺) 빈소(殯所)에 안치한 다음 조문(弔問)을 받기 시작한다. 찾아온 친족이나 지인들은 곡(哭)을 하며 조의(弔意)를 표한다. 입관 후 3일 이상 지나면 상여(喪輿)를 사용하여 관을 장지(葬地)로 옮기는(運柩) 발인(發引) 절차를 진행한다. 장지에 도착하면 관을 내리고(下棺), 마련된 무덤에 봉분(封墳)을 만들고 위령제를 지낸다. 이후 가족들은 3일, 49일 되는 마다 다시 무덤을 찾아 제사를 올리고 이후로는 1년 단위 또는 추석 등 명절마다 산소(山所)를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벌초(伐草)하는 등 무덤을 살핀다.
그러나 이제, 문중(門中)의 권위는 무너져 내리고 집안의 어른은 돌아가시고 이를 이을 어른은 사라졌다. 죽음은 의사의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 경찰의 검시필증으로 확정되며, 사망 후 한 달 내에 동네 주민센터에 신고하여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고 가족관계등록부가 정리됨으로써 한 인간의 존재증명은 사라진다. 남은 것은 고인이 남긴 유언장과 상속 재산의 처리, 그리고 이를 둘러싼 유류분반환청구소송(遺留分返還請求訴訟) 등이다. 2005년 헌법재판소는 호주(戶主) 제도가 양성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함으로써 2008년 1월 1일부터 호주제도는 폐지되었다. 호주의 가족대표권이 사라짐에 따라 호주가 고인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관습과 의무도 사라졌다. 전통적 절차는 이제 대부분 제도권 장례로 대체되었다.
염습과 입관, 운구의 절차는 장례식장 장례지도사의 주관 하에 주어진 매뉴얼에 입각하여 지극히 형식적으로 진행된다. 고독사나 유족의 시신 인수 거부로 무연고 사망자로 인정된 죽음과 같이 제도권 장례 절차에서 소외된 죽음은 경찰과 의사와 자치단체의 주관 하에 화장 처리된다. 조상의 유전 대신 법과 의료기술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 인간의 죽음을 주관하는 절차는 의사와 경찰(때때로 검사와 판사의 개입)의 판정과, 판정 후 절차에 조력하는 상조회사, 장례지도사, 유품관리사, 그리고 죽음 관련 매뉴얼을 만드는 행정관청, 무연고자의 처리를 담당하는 자치단체와 주민등록번호를 말소하는 주민센터 등에 분산되어 극히 사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죽음의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제도권이 그 역할을 대신함에 따라 확인된 사실이 있다. 죽음은 더 이상 공동체의 울음 속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이제는 서류와 도장으로만 확정된다. ‘죽으면 끝이다’는 합의된 인식과 무언의 공인이다. 그렇다면 정말, 죽으면 끝인가.
珍光은 우연히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과정을 수료하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현장과 여기에 종사하는 분들을 목격하며 자원봉사 등의 실습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죽음을 이야기하는 국내외 서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서적들은 주로 현장에서 종사하는 자들이 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의사, 특히 질병을 직접 경험한 의료진의 저작물들이었다. 여기에 죽음의 처리 절차에 종사하는 법의학자와 유품관리사, 장례지도사, 죽음을 돌본 가족들의 경험도 있었다. 간혹 철학자나 죽음 후의 세계를 다루는 과학자들의 서적도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정작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을 앞두거나 경험한 자들의 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거나,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珍光은 노화와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예비 환자, 내지 초고령자의 입장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굳어진, 제도화된 대한민국의 죽음 문화 속에서 그 허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주어진 조건 하에서 편안하고 친절한 죽음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이에 대하여서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등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제도권에서 다루는 죽음의 문제를 의학적∙법적 관점에서만 파헤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이러한 논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면 오히려 곤란해진다. 육체적 죽음 이후의 삶은 존재하는가, 영혼은 인간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문화적 허상이자 밈 복합체에 불과한 것인가, 임사체험(臨似體驗, Near-Death Experience)이나 사후생(死後生, Life After Death)에 관한 다양한 경험적 자료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실들은 무엇인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신은 존재하는가, 신의 질서는 어떻게 존재하며 어떻게 역사하는가까지 질문은 확장된다.
珍光처럼 눈앞에서 죽음의 시계가 돌아가는 예비 환자에게 지나치게 철학적 사변이나 당위적 명제는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특히 당장 질병으로 인한 통증을 겪는 이들에게 셀리 케이건(Shelly Kagan) 류의 죽음론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의사도, 철학자도, 신학자도, 가족도, 도우미도 아닌 실존적 환자의 입장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죽음의 문제를 직면하고 답을 찾으며, 서사를 완성해야 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도화된 죽음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위에서 각자의 조건 속에서 가능한 최적의 ‘죽음 사용 설명서’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제도는 현실이고, 하늘나라는 희망사항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통증 없는 편안한 죽음, 친절한 죽음, 더 나아가 주체적이고 실존적인 죽음의 서사를 원한다. 나만의 죽음 사용 설명서가 마련된다면, 남은 시간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영혼과 신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사 박중철은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에서,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가족의 돌봄이나 훌륭한 의사를 만나는 우연한 행운 이전에, 스스로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음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흔히 목격되는 죽음의 모습들이다. 우리는 이 가운데 몇 가지나 피해 갈 수 있을까. 많이 피해 갈수록 ‘좋은 죽음’에 가까워질 것이다.
*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빈번한 죽음의 양상
1. 중환자실에서 맞는 죽음
2. 병동 처치실에서 맞는 죽음
3. 심폐소생술 도중의 죽음
4. 기계호흡기에 의존한 채 맞는 죽음
5. 인공영양을 받으며 이어지는 죽음
6. 무의식 상태로 오랜 기간 누워 있다가 맞는 죽음
7. 의식이 있는 상태로 오랜 기간 누워 있다가 맞는 죽음
8. 가족 없이 홀로 맞는 죽음
9. 심한 욕창에 시달리다 맞는 죽음
10. 사지가 결박된 상태에서 맞는 죽음
11. 매일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맞는 죽음
12. 밤마다 호흡 곤란에 시달리다 맞는 죽음
13. 밤마다 섬망에 휘둘리다 맞는 죽음
14. 불안과 우울 속에서 맞는 죽음
15. 삶의 의미를 잃고 비관하다 맞는 죽음
한국 사회에서 가장 흔한 죽음의 모습들이 어느 하나도 탐탁스럽지 않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생애 말기에 너무 비참하고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죽음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반드시 계획하고 준비하여야 한다. 珍光은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면서, 준비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수많은 상념들이 정리됨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깨달음과 보너스를 얻은 기분을 느낀다. 과연 한국에서 친절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 걸까.
몇 가지 서적을 정독한 후 珍光이 잠정적으로 얻은 결론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영혼의 존재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우선 육체의 죽음부터 이해해야 한다.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이고, 아무리 바빠도 실을 바늘허리에 꿰어 쓸 수는 없다.
기원전 500년 전후, 지중해 연안 이오니아 지방의 자연철학자들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았고, 인간의 죽음은 자연의 질서와 순환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이해했다. 이러한 사유는 2천 년 후 중세 종교의 장벽을 깨뜨리고, 우주와 생명에 대해 신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분야를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과학주의와 진화론이 결합한 과학기술주의 문명이 등장했으며, 의료기술은 그 대표적 산물이다.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 이후 소피스트(Sophist) 시대를 거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플라톤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원론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soma)와 영혼(psyche)으로 구성되며, 육체는 영혼의 감옥에 불과하고 영혼은 불멸의 존재(immortal)라는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나 기독교가 서양을 통일했다. 기독교는 육체와 영혼을 이원화하기보다는 둘 다 신의 창조물로서 부활의 시기와 함께 부활하는 통합적 존재로 보았다. 그럼에도 1,500년 이상 종교의 시대를 거치며 인간의 육체와 영혼에 대한 이해는 꾸준히 발전하였다. 기독교는 신을 알아가는 지식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1600년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하며, 신의 영역인 영혼 외에도 인간의 영역에는 공간을 차지하는 물질(matter, res extensa)과 생각을 하는 정신(mind, res cogitans)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실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오니아 자연철학과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현대 뇌과학에서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cerebral cortex)과 감정, 본능,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limbic system, 해마, 편도체, 시상하부 등으로 구성), 생명유지를 담당하는 뇌간(brainstem)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자연철학, 데카르트의 이원론, 현대 뇌과학은 유물론과 진화론을 기반으로 오늘날 과학기술과 든든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이루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유물론적 과학주의는 영혼조차 뇌파의 작용으로 환원하려 한다. 珍光의 관찰에 따르면 의료계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는 과학기술을 신의 영역을 탐구하는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신의 영역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만 존재할 뿐이다. 이미 지동설, 중력, 진화론, 빅뱅이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이 다루지 않거나 회피해 온 ‘영혼’의 문제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간에 종교의 영역에만 맡겨둘 수 없는 거대한 미지의 영역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와 연결된 이 주제는 어떤 철학서나 종교서로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없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는 젊은 세대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 신의 영역이든 인간의 영역이든 쉽게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다. 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세대에게는 지금까지의 지식과 성찰의 범위 안에서 최적 또는 차선의 대안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러므로 먼저 병원에서 의사들이 이해하는 생명현상의 종결로서의 죽음부터 살펴나갈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에게 죽음은 생명의 종결이 아니라 ‘의료의 실패’로 인식된다. 의사들이 언제부터 죽음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는가 하는 질문은 중요하다. 이를 단순히 의료기술의 발달로만 설명하는 것은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일 수 있다. 의사들은 죽음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 이해하며, 스칼펠(scalpel) 한 자루를 들고 죽음의 마지막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려는 현대판 돈키호테들인가.
국립암센터의 장윤정은 ‘연명의료결정과 죽음의 제도화’라는 논문(「의료인문학」 제4호, 2025. 9. 16)에서 죽음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의학적으로 바라본 죽음(자연사, 병사)의 과정과 전조 증상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사망 수주에서 수개월 전에는 활동량이 현저히 감소하고 음식 섭취가 줄며 피로가 증가한다. 사망 수일에서 수주 전에는 의식이 혼란해지거나 착란이 발생할 수 있으며, 불안 증상이 나타나고 수면과 각성 주기에 변화가 생긴다. 말수가 줄고 수면 시간이 늘어나며, 혈압은 점차 떨어지고 맥박은 불규칙해진다. 입맛이 없어지고 갈증을 느끼는 정도가 줄어들어 음식 섭취가 감소하며, 소변량도 줄어든다.
사망이 임박한 마지막 2~3일 동안에는 의식 수준이 더욱 떨어져 대부분 무기력하게 누워 있게 된다. 간혹 갑작스럽게 움직이거나 말하거나 음식을 먹는 등 일시적인 에너지 발현이 나타나기도 한다. 호흡은 불규칙해지며, 무호흡 상태가 반복되다가 갑자기 숨을 몰아쉬는 현상이 관찰된다. 목에 가래가 끓는 듯한 그르렁 소리가 크게 들리기도 한다. 혈류 변화로 맥박이 약해지고 사지가 차가워지며 피부가 청색증을 보인다. 목이 뒤로 젖혀지고 얼굴 근육의 긴장도가 떨어지면서 미간의 주름이 사라지고, 피부는 노란 왁스를 바른 듯한 표정으로 변한다. 결국 어느 순간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때는 의식이 완전히 소실되고, 호흡과 심장박동 및 혈액순환이 중단되어 더 이상 소생하지 않는다.
국가데이터처(통계청)의 ‘2024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사망자수는 358,569명이며 이 중 약 75~80%가 의료기관(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원인별로 보면, 전체 사망자의 42.6%가 암∙심장질환∙폐렴으로 사망하였다. 또한 치매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9.3명,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사망자의 54.1%가 80세 이상이었으며, 치매 사망자 중 여성은 남성보다 2.1배 많았다. ‘2024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20.0%(10,244,550명)에 달해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70세 이상은 14%(7,200,000명), 80세 이상은 5.5%(2,800,000명)로 집계되었다.
보건복지부의 ‘의료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전체 입원 환자의 약 12~15%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투석 등 연명의료를 경험하였다. 특히, 중환자실(ICU) 환자의 30~40%, 말기 암환자의 25~30%가 연명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말기환자의 21.9%가 사망 1개월 내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며, 사망 직전 13.9%가 심폐소생술, 19.7%가 기계호흡장치를 달고 연명의료를 받다가 사망하였다.
말기환자의 4명 중 1명은 가족과 떨어져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으며 중환자실에서 사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죽음의 의료화가 초래한 대표적인 단면이다. 박중철 의사는 저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에서 “죽음이 의료화된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환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의미하게 죽음이 늦춰지고, 삶의 존엄성마저 훼손되는 연명의료가 증가하는 데 있다”라고 지적하였다.
과거에는 심장 박동이 정지하거나 호흡이 멈추면 죽음으로 간주하였다. 이 상태에서는 뇌로 산소와 혈액이 공급되지 못해 뇌 기능이 정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기술의 발달로, 뇌 손상으로 호흡이 멈추더라도 기계호흡장치를 통해 산소를 공급하면 심장은 계속 뛸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뇌 기능은 완전히 정지했는데도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를 ‘뇌사(brain death)’라고 한다. 더 나아가 기계호흡장치, 인공영양, 승압제 등 연명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뇌사 외에도 식물인간 상태(PVS, persistent vegetative state), 일시적인 혼수(coma), 최소의식 상태(minimal conscious state),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인공영양으로 연명하는 말기 치매와 같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다양한 의학적 상태가 등장하였다.
현행 법제도에서는 ‘뇌사’는 장기 기증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뇌가 담당하는 의식 기능은 소실되었지만, 뇌간(뇌줄기, brainstem)이 관장하는 호흡, 심장박동, 동공 반사가 살아있는 ‘식물인간 상태’는 죽음으로 판정되지 않는다. 또한 의식이 없고 호흡과 심장 박동도 없지만, 단기간 내 회복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혼수’ 상태 역시 죽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의사는 사망 판정을 내릴 수 없고, 환자는 기약 없이 연명의료에 의존해 생명이 연장될 뿐이다. 가족과 의사의 결정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영양 공급과 수분 공급과 단순 산소 공급과 같은 기본 돌봄 조치는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