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D 1-14

제1부 대한민국 죽음사용설명서

by 김진광

제7장 제3의 길


3. 고독사


2020년 제정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고독사(孤獨死)는 가족·친척 등과 단절된 채 홀로 생활하다가 자살이나 병사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사회적 고립과 단절’을 주요 특징으로 하므로 사망 원인과 관계없이 혼자 살다가 사망하는 경우인 ‘독거사’와 구분된다. 실무적으로는 사망 후 일정 기간(통상 3일 이상)이 지나 시신이 발견되는 경우 고독사로 분류한다.


사망 후 시신을 인도해 갈 사람이 없어 지자체가 장례를 치르는 죽음인 무연고사(無緣故死)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고독사라는 용어보다 ‘고립사(孤立死)’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23년 고독사 사망자수는 3,661명으로, 전체 사망의 1.04%에 해당한다. 앞으로 고독사 숫자는 더욱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고독사 통계는 경찰청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서 수집된 변사 사건 자료를 근거로 하며 이를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산하, 고독사 예방조사연구센터가 사회보장급여 기록 등을 검증하여 발표한다. 실무적으로는 사망원인이 자살, 병사, 사고사, 불상인 사망자 중에서 65세 이상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자 등으로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발견된 경우 고독사 범주에 포함된다.


21세기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은 ‘고독사는 불행한 죽음’이라는 등식을 재정립하는 것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지방 소멸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은 고독사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우리 세대가 사라지고 나면, 서로 친인척 관계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시골의 학교는 이미 사라지고 있으며, 인구를 지탱하던 노인들마저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는 요양원, 요양병원, 농업 이민자, 태양광∙풍력 발전소, 데이터센터, 로봇∙드론 공장, 위성 발사대, 교도소, 기타 외지인들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고독(solitude)에 대한 거창한 담론은 평범한 소시민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우리는 빗장뼈가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며 야곱의 사닥다리를 오르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며, 생로병사의 고(苦, 두크하)와 집착과 욕망의 집(集, 사무다야)을 넘어 괴로움의 멸(滅, 니로다)에 도달하고, 도(道, 마르가)를 깨우치는 부처도 아니다. 더 이상 킬케골, 하이데거, 니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에 심취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고와 집의 무게를 버리지 못한 채 인생길을 걸어가는 평범한 필부(匹夫)에 지나지 않는다.


필부가 죽음을 직면하는 방식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독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면, 그것은 거창한 서사(敍事)라기보다 ‘혼자이기’의 연습이다. 강요된 고독은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분노조절장애와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고독은 감성과 통찰과 창조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고독사’가 반드시 불행하거나 실패한 죽음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 부대끼며 미워하기도 하고 보살피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의존해 왔다. 이제는 그 끈을 놓아주고 신 앞에서, 우주와 자연의 순환 앞에서 ‘혼자이기’를 연습하여야 한다. 고와 집의 인연을 끊고, 홀로 명상하기, 홀로 등산∙낚시하기, 홀로 식사하기, 홀로 걷기, 홀로 운동하기, 홀로 잠들기, 홀로 읽고 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것은 뇌과학으로 보면, 뇌의 안쪽에 있는 해마와 편도체와 시상하부를 든든히 하고 뇌의 바깥쪽에 있는 대뇌피질을 단련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또한 이 연습은 혈관 속 플라크를 줄이며 혈액의 점도를 낮추는 운동이기도 하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와 훈련의 문제이며, 사회로부터의 일방적인 고립과 단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고독사는 가족관계와 개인의 형편에 따라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곧, 고독사가 고립사일 수도 있고 존엄사일 수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독은 절망에 이르게 하는 병이 되어 우울증을 유발하여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낙인찍혀 몰락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말년에 고독을 즐길 줄 아는 것은 또 하나의 축복일 수 있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데 곁에 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육신의 에너지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고 영혼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세상 인연은 집착이자 덧없는 것일 수 있다. 오로지 스스로 선택하여 죽음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의지와 용기의 영역이다. 이 세상에서 모아 온 것과 지니고 온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미지의 새로운 삶을 개척할 준비를 하는 마지막 시간을 허망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 어쩌면 이 사실 하나를 깨우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4. 독거사


독거사에 관한 공식적 법적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독거노인이나 1인 가구의 사망을 의미하며, 사회적 고립 여부와 관계없이 혼자 살다가 사망한 경우를 지칭한다.


국가통계포털(KOSIS) 2025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노인 인구는 약 1,051만 명이며, 이 중 독거노인 가구는 23.6%인 233만 6천 가구에 이른다. 특히 80세 이상 고령층에서 증가폭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별 독거노인 비율을 보면 전남이 27.2%로 가장 높고, 경북이 26.0%, 경남, 강원, 전북은 20% 내외의 비율을 보인다. 통계조사의 한계를 고려하면 실제 독거노인 비율은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


독거노인 비율은 한국의 지방 공동화와 지방 소멸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지표이며, 사회적 경고 신호로 볼 수 있다. 2013년에는 18.1%(112만 명)이던 독거노인 수치가 2023년에는 23.6%(233만 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23.6%라는 수치는 총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에서 나타난 것이므로 더욱 심각하다.


1천만 명이 넘는 노인 인구와 300만 명에 육박하는 독거노인의 규모는 정부와 지자체의 사회복지 네트워크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앞으로 더 많은 자살, 무연고 사망, 고독사, 독거사, 간병살인, 유기∙방임에 의한 사망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다.


5. 존엄사와 안락사


고령자이자 예비 환자의 입장에서 살펴본 한국의 현실은 비관적이다. 병원에서의 임종도 쉽지 않고, 자택에서의 임종 역시 여러 제약으로 인해 여의치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자택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가족 해체의 풍파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낸 공로로 인해 행복한 사람이다. 한편, 병원 죽음의 여러 가지 불편한 진실들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珍光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는 안락사 입법을 촉구하는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있으며, 뜻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곡기를 끊는다는 것’, 즉 단식자연사, 단식존엄사 등으로 불리는 제3의 선택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안락사와 관련하여 ‘생명은 창조주가 준 것이므로 인간이 임의로 종결할 수 없다’는 기독교적 관점이나, ‘안락사는 짐승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며 인간에게는 불법’이라는 단순한 편견은 논의의 진전을 위해 잠시 유보할 필요가 있다. 환생에 대해 적극적 견해를 제시하는 일부 의과학자들의 논의 역시 별도의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우리의 관심사는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질병과 통증의 괴로움이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비인간화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고통 없는 죽음을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죽음이라는 통과 의례에 대한 거부감 역시 크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고통 없이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안락사(euthanasia)와 존엄사(death with dignity)의 경계는 여전히 애매하다. 존엄사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는 안락사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 의학적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을 의미한다. 박중철 의사의 저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에 따르면,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로, 적극적 안락사는 안락사로 구분되며, 존엄사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한 말기환자에 대한 완화적 진정(palliative sedation)으로 세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환자와 의료진이 살인죄 또는 살인방조죄라는 중대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안락사는 다시 의사조력자살과 직접적 안락사로 구분되며, 의사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은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 제한된 조건 아래 허용되고, 직접적 안락사는 미국 일부 주와 네덜란드, 태국, 캐나다 등에서 엄격한 요건을 충족할 때에만 허용된다.


의학의 발전으로 MRI(자기공명영상장치)와 뇌파 검사 등을 통해 뇌사와 식물인간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환자가 말기 상태에 있거나 임종과정에 있는지 여부도 과거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안락사의 넓은 범주 안에서 존엄사가 차지하는 영역을 점차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최근 들어 스위스 조력자살 단체에 대한 한국인의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단체는 비영리 형태로 운영되며, 정부와 의료기관의 엄격한 감독 아래 활동한다. 외국인에게 개방된 대표적인 단체로는 DIGNITAS, Pegasos 등이 있으며, 이용 비용은 약 1,500~2,500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해외 조력사망 이용 현상은 ‘죽음 관광(death tourism)’이라는 윤리적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인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의 죽음 관련 제도가 지나치게 한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한 기준은 매우 엄격하며,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의 종류도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영양 공급, 수분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은 연명의료에서 제외되며, 말기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호스피스 기관의 수도 적고 대상 질환도 말기암 등 네 가지로 한정된다.


또한 고통을 줄이기 위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도 국제적 기준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러 규제 속에서 의료진은 법적 책임을 우려해, 환자의 의식이 소실되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시점까지 연명의료를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 식물인간이나 코마 상태에서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으며, 중단할 경우 살인죄 또는 살인방조죄의 위험에 노출된다. 뇌사는 장기기증의 경우에만 죽음으로 간주되며, 심장이 뛰고 있는 한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연명의료 중단을 위한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의사가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의료진은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사망 직전 일주일 전후에야 비로소 환자 가족의 동의를 얻어 임종과정임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연명의료 중단 결정은 늦어지고, 환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기계호흡기, 심폐소생술, 영양 공급, 항생제 투여는 계속 유지된다.


요양병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가가 높은 인공호흡기나 영양 공급을 쉽게 중단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호스피스 전문기관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말기암 환자라 하더라도 3-4주 이상의 대기 기간이 필요하며, 평균 등록기간은 25.6일에 불과하다. 중환자실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전원을 기다리다 빈자리를 찾지 못해, 중환자실이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일반병동의 1인실, 혹은 병원 창고로 사용되는 처치실에서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이쯤 되면 환자는 환자가 아니라 가족에게 부담스러운 존재, 죄인 혹은 인질처럼 취급되는 현실에 놓이게 된다.


과거라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했을 상황에서도, 인공호흡기와 인공영양으로 생명을 연장한다기보다 죽음을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진료비와 간병비 부담은 끝없이 증가한다. 이쯤 되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스위스 조력사망 제도에 관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사망자의 80%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한국의 현실은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법을 찾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당사자인 예비 환자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으며, 고통 없고 자유로운 죽음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현재의 제도가 최악의 조건인 셈이다.


서울대의대 윤영호 교수는 저서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서 “대한민국에서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각자도생’의 치밀한 계획과 노력,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가족의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의학이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좋은 의사’를 만나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좋은 죽음의 조건이 ‘각자도생’과 ‘좋은 의사’라는 두 요소의 절묘한 조합에 달려 있다면, 珍光은 그러한 경쟁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시점에 경쟁이라니 가당치 않은 일이다. 제3의 길은 무엇인가, 그 길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계속)

작가의 이전글히스토리 D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