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D 1-13

제1부 대한민국 죽음사용설명서

by 김진광

제7장 제3의 길


1. 고래 낙하(whale fall)


성경 잠언 6장 5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Free yourself, like a gazelle from the hand of the hunter, like a bird from the snare of the fowler.)


이 구절을 고령의 예비 환자의 처지에 빗대어 생각하면, 우리는 죽음 앞에서 스스로 구원해야 할 입장임이 분명하다. 몸 관리를 열심히 하다가 편하게 죽으면 다행이고 중병에 걸리면 단순히 운이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 죽음의 마지막이 단순히 ‘누가 먼저 교통사고를 당하는가’라는 생존 게임이어서는 곤란하다. 경쟁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으로 충분하다. 죽음 앞에서는 투쟁도 경쟁도 없어야 하며, 오직 평안하고 존엄한 마무리만이 중요하다.


이 정도의 사유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성찰해 볼 가치가 있다. 비록 그것이 우리의 사유 한계를 넘어설지라도, 준비하는 것 자체만으로 넉넉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약 40억 년에 걸친 생명의 신비와 약 5만 년에 이르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 속에서 유물론, 실증주의, 과학기술주의의 시대는 불과 500년 남짓에 불과하다.


珍光은 사후 세계와 영혼의 영역을 탐구하기에 앞서, 육신의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행위에서부터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유의지와 자기결정을 주장하는 것이다. 육신의 고통과 고행의 바다를 지난 다음에는 또 다른 웅장한 사유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든, 아니면 새로운 윤회의 시작이든 상관없다. 다만 내 몸의 생명이 우주 먼지로 돌아가는 순환 질서에서 어떤 제삼자의 개입이나 방해도 거부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죽음의 다층적 의미가 등장한다. 주인공 서래는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어머니를 펜타닐의 힘을 빌려 편히 보내드린다. 이는 안락사이면서 동시에 존속살인죄 또는 자살방조죄이기도 하다. 서래 남편의 등산 중 추락사는 사고사로 위장된 타살의 의혹이 짙은 죽임이다. 서래의 바닷속 죽음은 자살이면서 자기 결단적 죽음이기도 하다. ‘헤어짐’은 증오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헤어짐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헤어짐이기도 할 것이다. 헤어짐은 어설프고 구차한 자기 존재에 대한 마지막 자존감이자 실존이기도 하다.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곧 자신과의 헤어짐으로 에필로그를 장식한다.


인간은 길지 않은 생을 살아가면서 혼자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은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저 편도체의 왕성한 활동으로 두려움과 불안 반응만이 두드러졌을 뿐이다.


고래의 죽음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게 인간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고래는 죽음을 직감하면 식음을 중단하고 동족으로부터 벗어나 수백 킬로미터 먼 길을 떠난다. 깊이 1,000미터가 넘는 바다 근처에서 자리를 잡아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고래의 사체는 처음에는 부패 가스로 인해 떠올라 새들과 상어의 먹이가 되고, 이윽고 심해 바닥으로 가라앉아 영양 오아시스를 형성한다. 가라앉는 여정에서 수십 종의 생물들이 죽은 고래의 사체에 의존하여 다양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또한 고래는 일생동안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안고 가라앉아 수백 년간 떠오르지 않는다. 고래 한 마리가 격리하는 이산화탄소는 약 33톤에 달하며, 이는 수천 그루의 나무가 흡수하는 양과 맞먹는다. 22살의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는 ‘나는 사랑의 난파선(私は愛の難破船)’이라고 울면서 노래하지만, 심해에 가라앉은 난파선에서 전개될 무한한 생태계를 상상하면 결코 난파선이라 할 수 없다. 우주의 신비와 자연의 순환은 인간의 대뇌피질 밖에 존재한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병원의 전도유망한 의사였던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는 기침이 계속되어 검사 끝에 말기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충격으로 방황하기도 하고, 항암 치료 과정에서 생과 사를 오가며 고통을 겪었다. 좌절과 혼란 속에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다가오는 죽음의 경험을 통해 죽음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책을 완성하기 전에 칼라니티는 세상을 떠났으며, 아내 루시가 마지막 부분을 완성하였다. 책의 제목은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였다.


루시가 말한 것처럼, 그에게 암은 비극이었지만 그의 삶은 비극이 아니었다. 인생을 비극에서 구원하는 것은 단순한 생존의 노력이 아니라 실존을 향한 도전이다. 칼라니티의 삶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풀크 그레빌(Fulke Greville, 1554-1628)의 연작시 ‘카일리카(Caelica, 천상의 노래) 83’은 다음과 같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여,

이제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것이 바람임을 알게 되리라

새로운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이 흘러 육신은 끝나지만, 영혼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시간을 계단 삼아, 영원으로 나아가라

You that seek what life is in death,

Now find it air that once was breath.

New names unknown, old names gone:

Till time end bodies, but souls none.

Reader! then make time, while you be,

But steps to your eternity


그레빌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자유의 시작으로 보았다. 나의 호흡은 태초에 자연의 바람에서 빌려온 것일 뿐, 때가 되면 돌려주어야 한다. 그는 육신을 끝내고 영혼을 만나러 가기 전에, 시간을 영원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삼으라 권한다. 그래서 칼라니티는 죽음에 직면하여 그의 마지막 숨결(breath)을 원래의 주인인 우주에게 바람(air)으로 되돌려주며, 엔트로피의 균형을 이루려 했던 것이다.


2. 단식존엄사


단식존엄사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병원 죽음의 불친절함과 고통스러움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가족 공동체의 급속한 해체로 자택 죽음이 곧 고독사일 수밖에 없는 한국적 현실에서, 곡기를 끊는 죽음은 제3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자살 등록자 수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비싼 돈 내면서 외국에 나가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저항도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고향을 떠나 죽는 것을 객사(客死)라 하여 조상에게 불경한 일로 여기는 문화가 남아 있다.


단식 존엄사(VSED, voluntarily stopping eating and drinking)는 병원 죽음과 안락사(의사 조력 자살 포함)의 보완적 형태이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을 지키려는 실존적 결단이라 할 수 있다. 단식사, 즉 ‘곡기를 끊는다는 것’은 곡물로 만든 음식인 곡기(穀氣)의 섭취를 중단하여 외부로부터 에너지의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음식 섭취를 하지 못해 죽는 죽음을 아사(餓死, 굶어 죽음)라고 부르는데, 가뭄 등 외부 요인에 의하여 아사에 이르면 자연사(또는 병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아사에 이르면 이야기가 조금 더 복잡해진다.


박중철 의사의 저서에 따라 아사의 과정을 의학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탈수가 발생하고, 지방과 근육이 소모되면서 혈액이 산성화되는 ‘케톤산증(Ketoacidosis)’이 나타난다. 혈액 속 산-염기 균형이 깨져 산이 과도하게 많아진 상태를 ‘산혈증’이라 부르는데, 이때 뇌가 고통 대신 오히려 평온감이나 행복감을 느낀다는 보고가 있다. 물론 탈수로 인해 환자는 갈증을 느끼거나 열이 발생할 수 있지만, 말기나 임종 과정에서의 탈수는 오히려 고통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암이 전이되어 장폐색으로 구토가 발생하거나 복수와 흉수로 인한 호흡 곤란 및 부종 등이 있는 경우 수분 공급은 이러한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의료진은 수분 공급을 제한하거나 이뇨제를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탈수를 유도하기도 한다. 대신 갈증을 줄여주기 위해 입 안에 얼음 조각을 넣어주거나, 수분 스프레이를 수시로 분사하여 구강 점막을 촉촉하게 유지한다.


환자가 자택에서 곡기를 끊고 사망하면, 선행 질환을 사망 원인으로 보면 자연사가 되겠지만, 뚜렷한 병원 진료기록이 없는 경우에는 외인사(자살 혹은 타살) 또는 불상(不詳)으로 처리되어 주변의 가족은 살인죄(또는 존속살인죄)나 자살방조죄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고독사 또는 행려병자 사망인 경우 연고자가 없거나(무연고 사망자)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 경찰의 검안 절차를 거쳐 시체검안서와 검시필증이 발급되면 해당 지자체가 특별한 장례 절차 없이 시신 안치소에서 곧바로 화장장으로 옮겨진다.


* 사망의 유형

자연사(自然死, death by natural causes) : 고령이나 질병으로 인해, 외부의 특별한 영향 없이 수명을 다해 사망하는 경우

외인사(外因死, death by external causes) : 범죄, 자살, 사고, 중독, 익사, 낙상,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 법의학적으로는 변사와 연계되어 수사 및 검시의 대상이 됨

행려병자(行旅病者)의 사망 : 무연고자, 노숙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길에서 떠돌다 사망하는 경우

객사(客死) :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 객으로 머물다 사망한 경우

고독사(孤獨死) : 혼자 사는 사람이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홀로 사망하는 경우, 단순히 혼자 죽는 독거사(獨居死)와 구분됨

변사(變死) : 사고, 범죄, 자살 등 비자연적인 사망으로 경찰 수사가 필요한 경우

불상(不詳) : 사망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 예컨대 진단이 확정되지 않은 고령자의 사망 등


병원 의사가 병원 측(윤리위원회 등)과 협의한 뒤 환자의 영양 공급관을 제거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합법적인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로 인정된다. 이는 대만에서는 합법적인 연명의료 중단(withdrawal of life-sustaining treatment)에 해당하지만, 한국에서는 살인방조죄로 간주된다. 이처럼 한국은 인공영양 거부가 어렵고, 존엄사 실현이 매우 어려운 나라이다.


대만 의사 비류잉(畢柳鶯)은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의 죽음을 기록한 저서 「단식 존엄사(斷食善終, Farewell, My Mother, 2020)」를 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국내에서도 2024년에 번역 출판되어 존엄사 담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우리와 달리 대만은 연명의료 중단 항목에 영양 공급과 수분 공급이 포함되어 있고 호스피스 제도도 활성화되어 있으나, 절차가 복잡하며 실제 임종 시 의사가 결정을 망설이는 점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일보 2025년 12월 25일자 특집 기사(최문선, 김지우) ‘잘생, 잘사(6)’에는 비류잉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비류잉의 어머니는 2001년 진행성 소뇌실조증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을 가누기 어려워지는 퇴행성 질환으로, 그녀는 가족에게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부탁하였다. 20년 뒤 마침내 ‘때’가 찾아왔다. 식사, 용변 처리, 목욕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혼자 할 수 없게 되었고, 머지않아 몸 곳곳에 관을 삽입한 채 누워 지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녀는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꼈다. 그래서 음식을 끊었다. 하루 두 끼에서 한 끼로, 다시 반 끼로 줄였고, 마지막에는 연근 달인 물 한 모금으로 버텼다. “이러다 떠나지 못하겠어”라는 조바심에 결국 물도 끊었다. 임종 직전에는 “울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21일 만에 83세의 나이로 집에서 눈을 감았다. 가족들은 울지 않았다. “훌훌 떠나가겠다”는 선택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단순한 굶주림이 아니었다. 의료진이 식단을 관리하고 통증 완화 처치를 하며 곁을 지켰다. 비류잉은 그렇게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며 배웅했다. 그 여정을 기록하여 「단식 존엄사」를 출간하였다. 단식 존엄사(VSED)는 서구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단식존엄사 또는 단식자연사는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단식자연사의 과정과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비류잉은 생명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각국을 다니며 단식 존엄사를 알리고 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의료사 아닌 자연사를 선택할 권리를 위해서, 존엄한 죽음이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Q1 : 스스로 원하셨다 해도, 결국 어머니를 굶어 죽게 한 것 아닙니까?

“어머니는 연하(삼킴) 기능이 저하되어 식사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아니면 콧줄을 통한 영양 공급이었지만, 그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과거에는 생애 말기에 음식을 끊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겨졌습니다. 소화와 흡수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억지로 먹는 것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가족이라고 그런 고통을 강요할 수는 없지요. 어머니는 단식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의료진의 도움으로 고통의 시간을 스스로 단축하신 것입니다. 남은 날이 얼마 없다는 걸 알았기에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했고, 정성껏 작별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차분히 삶을 정리하셨습니다.”


Q2 : 대만에서 약물 주입 등을 통한 의사조력자살이 합법이었다면 어머니의 선택이 달라졌을까요?

“글쎄요. 다만 미국의 일부 주에서처럼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한 곳에서는 단식 존엄사를 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약물 주입이 더 비인간적이고 부자연스럽다는 인식 때문이지요. 의사조력자살도 절차가 매우 복잡합니다. 신청, 심사, 반려, 재신청 등 단계가 겹겹이 이어지고, 외국까지 가야 한다면 언어와 비용 문제도 있습니다. 물론 단식 존엄사 역시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방법을 찾으신 것입니다. 제가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존엄한 죽음의 권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Q3 : 지켜보기 괴롭지 않았나요? 자살 방조와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단식 초기엔 어머니가 정신이 맑아지고 힘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2주쯤 지나자 견디기 힘들어하시며, ‘주사 한 대로 빨리 떠날 순 없느냐’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때는 참으로 비통했습니다. 하지만 임종 직전의 고통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단식존엄사의 고통이 10점 중 2라면 말기 연명의료의 고통은 8, 9에 달한다고 합니다. 자살 방조라는 비난도 있지만, 이를 불법으로 규정할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좌절한 환자가 충동적으로 자살하거나, 돌봄 부담으로 가족이 ‘간병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더 큰 불행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Q4 : 삼 남매가 어머니 뜻에 선뜻 동의한 것이 놀랍습니다. 보통은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빌게 되죠.

“전쟁(국공내전) 풍파 속에서 사실상 고아로 자라서인지, 부모님은 전통적 가치관에서 자유로웠고 생과 사에 초연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에 ‘구급차를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고, 실제로 하루만 앓다가 93세에 자택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소뇌실조증은 유전되는 병입니다. 가족과 친척이 병으로 악화하는 과정을 지켜본 어머니는 존엄하지 못한 마지막을 더 두려워하셨던 것 같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원하지 않는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요? 어떤 경우에는 손을 놓아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일 수 있습니다.”


Q5 : 책을 낸 뒤 도와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돕나요?

“저는 불필요한 관 삽입을 거부하는 ‘발관 운동(拔管運動)’을 하고, 집에서 임종하거나 단식존엄사할 수 있도록 의료 지원을 합니다. 치료·회생 가능성이 없는 가족을 수십 년간 돌본 분들과 당사자의 지원 요청이 많습니다. 죽음은 사회적 금기이기에, 의사가 알려주지 않아서 연명의료 거부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약 200명의 존엄한 죽음을 지원했고, 감사 인사도 받았습니다.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여성들을 ‘돌봄 지옥’에서 해방시키는 보람, 정보 접근이 어려운 취약계층의 선택 기회를 넓히는 보람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수록 법제도가 더 빨리 정비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쁩니다.”


Q6 : 죽음을 돕는 의사라니요. 사람을 살리는 게 의사의 소명 아닌가요?

“시대가 바뀌었으니 의사의 역할도 달라져야 합니다. 환자가 덜 고통스럽게, 여한 없이 떠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한 소명입니다. 의료윤리의 핵심은 환자의 이익입니다.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견디게 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일까요? 의사와 정책 담당자들이 무슨 자격으로 타인의 자기결정권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사망은 의료의 실패가 아닙니다. 어떤 의사들은 삽관, 심폐소생술 등을 ‘사망 세트의 형벌’이라 부릅니다. 본인들은 거부하겠다고 하면서도 환자를 놓아주지 못하는 이유에는 의료소송 문제도 있습니다.”


Q7 : 단식존엄사 공론화를 대만 장애인 단체들이 강하게 비판한다고 들었습니다. “알아서 빨리 죽으라는 것이냐”면서요.

“누구든 생존과 생명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가 누구에게 ‘죽어라, 말아라’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잘 살 권리만큼 중요한 것이 잘 죽을 권리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데, 무지와 공포 속에서 죽음에 대한 권리가 방치되어 왔습니다. 아파서, 경제활동을 못 해서, 병원비를 많이 써서 가족과 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시아 문화입니다. 죽음의 자기결정권 논의가 ‘죽어야 하는 의무’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촘촘한 예방책을 마련하면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논의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Q8 : 어머니와 이별 후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나요. 어떤 ‘잘 죽을 준비’를 하고 있나요?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죽음의 공포는 미지에서 옵니다. 덜 고통스럽게 떠나는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큰 위안이 됩니다. 저는 삽관이나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다고 아이들에게 말해 두었고, 연명의료가 무의미해지는 때가 오면 단식존엄사를 시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출간한 책에도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인류는 보잘것없고, 삶은 결코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삶을 소중히 여기세요. 그래야 후회 없이 용감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Q9 : ‘좋은 죽음’, 그리고 ‘좋은 삶’이란 뭘까요?

“우선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모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집처럼 익숙한 곳에서 죽을 수 있어야 하고, 약을 사용해서라도 신체적 통증과 심리적 불안을 줄여야 합니다. 저는 ‘현재를 훌륭하게 살려면 반드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의 일부이며, 좋은 죽음이 좋은 삶을 완성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방식의 좋은 죽음을 맞이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서 잘 살아갈 힘이 될 것입니다.”

* 키케로( BC106-43), 「투스쿨룸 대화(Tusculanae Disputationes)」(계속)




작가의 이전글히스토리 D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