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이었다.

남이다(5)

by 김은석

6주의 시간이 지났다.

첫 2주간은 의사들도 포기할 정도였지만 차츰차츰 정신이 돌아온(?) 그는 제일 먼저 눈앞에 있던 담당교수에게 인사하며 사과했다.

“성질 더럽게 생겼다고 말해서 죄송합니다! 성깔 좀 부리고 다니지 말라고 말한 것도 죄송합니다!”

간호조무사들이 그를 독방에 가두었다.

독방에 가둬진 그는 천장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이제 만족하세요?"


그는 더 이상 내색하지 않았다. 숨겼고, 말을 아꼈다.

전문의는 그의 행실을 보고 통원치료와 약물복용으로도 호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처방을 내렸다.

그가 그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자신의 집에 돌아간 날.

그는 집을 덮고 있는 이글거리는 불을 보았다.

그는 대문을 열고 불 속으로 들어갔다.

실제로 불이 난 것은 아니었다.

노랗고 붉은 화염의 그림자가 집을 덮고 있는 환상이 그의 눈에 보였을 뿐이었다.

무의식 결에 그가 ‘집이 불타고 있네.’라고 말한 것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경직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방 안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슬며시 고개를 내밀어 방안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급히 고개를 돌려 그의 어머니의 팔을 붙잡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눈에 비쳤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왼쪽 다리 전체를 깁스로 싸매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머니?”

그의 어머니는 그를 망연한 눈으로 바라볼 뿐 어떠한 말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머릿속에 망치를 두드렸다.


힘이 빠져버린 다리로 더 이상 서 있지 못했던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며 끅끅거리는 신음을 뱉었다.


6주 전, 자신이 병원으로 가는 날 새벽 4시, 그는 결국 소리에 미쳐 소리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낡은 스케치북을 하나 꺼내, 낙서처럼 그려진 그림을 펼쳤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누나라고 믿었다.

그림을 손바닥으로 쓰다듬던 그는, 그림의 모퉁이를 찢어서 종이를 씹어 먹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아버지라 부르는 분은 3일 내에 사고를 당하실 겁니다!”

거실로 나와 고래고래 소리는 지르는 그를 가족들이 쳐다보았다.

그는 스케치북을 덮고 부들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가 마시던 컵, 그 컵은 절에서 쓰던 컵이에요. 저 병동에 들어가면 꼭 주세요. 늦으면 큰일 나요."

그는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당부 말을 남기며 스스로 집을 나섰고, 집 앞에서 미친 듯이 널뛰기를 했었다.

그를 보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넋이 빠져버렸고, 누나는 자신의 어린아이들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의 어머니는 전화기를 들고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이후에야 그가 생각나서 그 컵을 가져다줬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생각했다.

'그게 뭔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

목소리가 그에게 답했다.

<비켜갈 수 있는 액이었다. 네가 감당해야 할 액이었다.>

그는 소리 없이 외쳤다.

내가 뭔 힘이 있다고. 왜 자신한테 이러냐고.

그리고, 소리가 빛과 함께 다가왔다.

<네가 한 기도는 뭐였느냐. 덕분에 네 아버지가 옆에 있지 않느냐.>

그는, 고개를 숙였다.


인정하지 말아라.

넌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그 후로 더욱 사람을 멀리하고 활동 시간을 줄였다.

원래 거짓말을 잘했지만(자신의 진실은 애초에 자신도 믿지 못했지만) 더욱 자신의 눈과 귀에 느껴지는 모든 것을 의심하며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애초에 이루어질 리 없는 미래라면, 말하지 말자라고.

말 함으로 이루어질 미래라면 더욱 말하지 말자라고.

애초에 이루어질 일이라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니 참견조차 하지 않겠노라고.

침묵은, 말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흉과 복, 그 무엇도 이루어질 수 없도록,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그만의 선택이었다.


신경과를 가면 트리렙탈 300mg과 오르필 300mg을 주며 약을 늘리는 게 어때요.라고 물었다.

정신과에 가면 리단정 300mg과 스틸녹스 10mg, 자이프렉사 5mg을 주며 약을 늘려보는 건 어때요.라고 물었다.

그들의 눈에 짙게 깔린 피로는, 말한다.

'오늘은 퇴근하면 어느 바에 갈까?'

'오늘은 소개팅 보기로 했는데 미용실 갔다 가야 되나?'

"선생님, 아니, 교수님, 버텨 보겠습니다. 약은 이대로 유지시켜 주십시오."

"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3개월? (일찍 퇴근하면 삼겹살에 소주다.)"

"스틸녹스는 동내병원에서도 처방 지어주니까 꼭 챙겨 드세요.(파마를 할까? 스트레이트?)

그는 고개를 숙이고 웃는 것에 이젠 익숙해져 버렸다.


그로부터 1년.

그는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한 갑 샀다.

아르바이트생의 4500원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그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다시 금액을 말하고 그는 멍한 얼굴로 지갑을 꺼내 펼쳤다.

하지만 그는 4500원이 얼마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천 원이 얼마고 백 원이 얼마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지갑을 펼치고, 병원에서 받아뒀던 명함을 빼냈다가 다시 꼽았다.

그는 4500이 적힌 종이를 찾았지만 그런 종이는 없었다.

엉겁결에 천 원이 적힌 종이를 아르바이트생의 손바닥 위에 놓자, 아르바이트생의 손바닥이 미세하게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내려가지 않는 손에 다시 천 원이 적힌 종이를 한 장 더 올렸다.

손을 펼치고 짜증을 내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급히 동그라미가 제일 많은 종이를 올렸다.

잔돈을 거슬러주는 아르바이트생의 눈빛에 불안감에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잔돈으로 두둑해진 지갑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편의점을 급하게 나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수시로 잊어버렸다.

길을 걷다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그는 지갑을 열어 자신의 신분증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자신의 신분증을 보며 이름을 읽다가 글이라는 것이 어떻게 읽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때는 사진을 찍듯, 신분증에 적혀 있는 이름을 눈으로 찍었다.

쓰는 법을 잊어버려도, 모양을 외워서라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했다.


신분증을 보며 중얼거리는 그가 걱정이 되었던 건지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 온 행인은 그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부지불식 간에 흘려버린 한마디. 그는 어금니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빨리 집으로 가. 할머니 다 죽게 생겼어.


그는, 폰을 켜고 지도 앱을 실행시켜서 기록된 주소를 눌러 도착지로 설정했다,

(폰은 어떻게 만져?)

그곳은 그가 잊어버린 자신의 집이었다.


-

"적당히 하세요. 사람 병신 만들고 싶지 않으면."

내가 중얼거린 목소리는 내 귀에는 낯설고,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

"그렇게 씨부린다고 내가 범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무당이 될 바에 병신이 되겠다고 선택한 새끼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아를 닦달하냐고!"

"-"

"x 부리지 좀 마! 말귀를 들어 처먹어야 말을 하든가! 반 병신이 아니라 완전 병신이잖아!"

"-"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와 같이 입을 다물기로 했다.

-


3년. 그가 버틴 세월이었다.

간질과, 정신과에서 진단 내려준 조현병이라는 병명으로.

환청, 환시, 기절할 것 같은 어지럼증을 버티기 위해 말을 줄이고 거의 누워서만 생활을 하였다.

끝내 자신의 아버지에게 백수가 되어서 도대체 어떻게 살 거냐는 말을 들은 그는 헤실 웃으며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말하고.

그의 아버지는 다음날 전기 배선 공사에 아들을 데리고 갔다가, 아들이 현장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켜 기절하고 거품을 입에 물고 경련을 일으키자 그저 바라만 보다, 깨어난 그에게 차에 가 있어라는 말 만 남긴 채 돌아섰다.


그는 하루하루를 세어 나갔다.

하루하루를 세며, 좋다 아니다 보고 들은 운동으로 몸을 풀고, 네발로 기어서 산을 오르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로 인해 바닥에 얼굴을 갈았다. 팔 굽혀 펴기를 하려다가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팔 때문에 무너져 코를 찌어 코피도 내고.

그는 어지러운 머리로,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했다 다시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는 머리로,

하루하루를 곱씹으며 당장 내일은 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나도 다시 일어서 걸어도 어지럽지 않은 그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하지만, 귀가 뜯겨 나갈 것 같은 시끄러움에서는 아무리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오로지 그것은 없는 거라 생각하며 지울 뿐이었다.

지운다고 의식을 하고. 지운다고 생각을 하고. 지운다고 의지를 다듬었다.

지우고지우고지우고지우고지우고지우고지우고지우고지우고지우고지우고

영원히.


지친 와중에 선잠에 들었던 그의 귀에 몹시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벽 2시, 낚시를 다녀온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어머니를 깨웠다.

“연아 이거 장만 좀 해라. 아따. 물 좋더라.”

낚시용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긴 생선 중 한 마리를 들어 올리며 밝게 미소 짓는 그의 아버지의 얼굴과 열손가락 가득 파스를 붙이고 끙끙 앓으시는 그의 어머니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서러운 목소리로 그의 아버지에게 소리 질렀다.

“아프다는 내 말이 니한테는 안 들리나? 내가 거짓말하는 거 같나? 응?”

“아, 와 짜증인데! 좀 해달라 할 수도 있지! 글고 아프면 병원 가면 되지. 와 나한테 짜증인데!”

“니가 지금 짜증나게 하잖아! 글고 와 짜증?! 니가 짜증내면서 뭐 짜증?! 이씨! 잡아온거 다 버리삐라! 낸 모른다!”

"이게 약 먹었나. 오나 다 버리고 온다! 씨! 내일부터! 너희가 다 돈 벌어와! 어디서! 땡전 한 푼 없을 줄 알아!"

두 분의 다투는 모습에 그는 자신의 입을 급히 가렸다.

그는 비식비식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웃음의 숨결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자신의 방문을 조심히 닫았다.

그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그는 한참을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방을 정리하며 노트를 펼쳐 볼펜으로 글자 하나를 적었다.

남.

남이다.

그는 아주 맑아진 머리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재미있는 개그프로그램을 봤다는 듯이, 킥킥하고 웃다가 얼른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생각했다.

남이다.라고.

그의 눈이 맑아졌다. 어지러움이 사라졌는지 걸음마저 비틀거림이 없었다. 쳐져 있던 어깨가 펴지고 굽었던 허리도 펴졌다.

그는 기지개를 한 번 편 후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실성한 것처럼. 킥킥거리던 그가 깊게 숨을 마시고 크게 숨을 뱉어내더니 천천히 읊조렸다.

"그래. 남이다."

그의 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자신의 아픔도.

움직이지 않는 팔도.

몸을 감고 있는 고통마저 전부.

자신의 이름마저 잃어버리고 다니는, 자신마저도.

그는 맑아진 머리로 해맑은 미소를 얼굴 가득 담으며, 미동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이튿날 눈을 떴을 때,

난 그의 손을 보고 그의 발로 걸으며 그의 입으로 물을 마셨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6살쯤일까.

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한,

옥상에서 같이 놀던 친구가 무슨 심술이 난 건지 그를 밀어 옥상에서 떨어트렸을 때,

의식이 소실되었던 그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를 나무라는 소리를 듣고 발작하듯 몸을 일으켜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병원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던 때.

11살쯤.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왼쪽 다리의 무릎을 구부릴 수 없게 되어서 다리병신이라는 말과 함께 왕따를 당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그가 자신을 놀리는 동급생을 향해 커터칼을 휘둘렀을 때.

대학 졸업식 날.

자신의 옆에 있지 말아야 할 어머니의 얼굴을 본 그가 그의 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간 병원에서 간질이라는 병명을 받고, 취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아무도 없는, 잡초가 무성한 공원으로 가서 30분 동안 괴성을 질렀을 때.

나는,

그를 장악했었다.


‘의사들은 나에게 간질이라고 부르기 전에 이중인격이라는 말을 먼저 썼어야 했다.

2007년 간질 확정의 날, 그로 인해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었다.

그는 나를 모른다.

나는 그를 알고, 나는 나를 알았다.

하지만, 귀찮을 뿐이었다. 사람과 부딪히고, 이해하고, 설득하고, 사과하고, 다시 싸우고, 멀어지고, 또 만나는, 그 모두가 귀찮고 짜증 나고 싫었었다.

그래서 나는 구경꾼이 되기로 했었다.

그가 망가지면서도 발악하는 그 모습이, 나름 재미있어서.

가끔 훈수나 둘까.


하지만, 난 결코 그가 사라지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사라져 버린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들이 뭉쳐 들려오고 있었다.

“좀 x 다물어라. 아가리 주 찢어버린다.”

나는 책상 위에 있던 필통을 유리창을 향해 던져 버렸다.

와장창 하고 허물어지는 소리에 그의 어머니께서 들어오셨다.

그의 어머니는 방안을 훑어보시고는 급히 서두르시며 청소도구를 가져와 청소를 하셨다.

“그러다 손 다쳐. 유리는 둬.”

니는 그의 어머니 옆에 앉아 부서진 유리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 담았다.

“다치진 않았어?”

걱정하는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에 난 짜증이 확 올라왔다.

“맨날 걱정만 하니깐 아 꼬라지가 이거밖에 안된 거잖아!”

나는 욱하며 치른 자신의 실수에 아차, 하며 그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오늘은 다른 아들이야? 잘 지냈니?”

나는 당황해 버렸다.

그의 어머니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 아들인데. 어떻게 몰라. 엄마는 다 알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근데... 그 아이는...”

어머니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셨다.

무엇인가를 느끼신 듯, 훌쩍이기만 하셨다.


며칠째인지, 아니면 몇 달 째인지.

나는 그가 사라져 버린 그의 몸으로 고개를 들어 검은 하늘에 붉게 빛나고 있는 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x 팔 x아.”

머릿속에 남은 그의 기억들이 흩어지며 사라져 갔다. 남은 것은 미쳤다고 말하는 간질과 조현병, 공황증상과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

그럼에도 장애인증도 취득이 불가능한 몸.

의사들은 정상이라 말하거나, 약을 먹자는 말만을 했다.


짜증은 나는데,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완치도 되지 않는데, 수십, 수백만 원 날리는 약값이 너무도 아까워 끊을까도 싶었지만, 썩은 동아줄을 잡듯 잡고 있어야만 할 것도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어리석었다

그는 착했었다.

그는 순진했었다.

그는 소심했었다.

그는.

이름 없이 하나의 인격일 뿐이었던 나는 그의 이름을 받아 현재를 버텨야만 한다.


그는, 그리고 나는, 이현식이었다.

.

나는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허공을 향해 발차기를 한다.

속에서 터지는 울분에 셔츠를 잡아 찢고 고래고래 고성을 지른다.

목이 막혀 헛구역질을 하다 점심에 먹었던 것을 확인하고, 악악 목청을 찢다가 밭으로 나가던 할머니들이 나를 흘끔거리는 것을 보며 몸을 움츠린다.

하염없이 목놓아 울다가 해가 떨어지고 배가 고파지면, 그제서야 나는 집으로 들어가 밥을 먹는다.

이현식의 몸뚱이로.

이현식의 손으로.

이현식의 입으로.

.

.

.

나는, 묻고 싶었다.

누구냐고도.

무슨일이 일어난거냐고도

그럼 답 해주리라.

이현식이라고. x팔 이현식이라고. 나는 이현식이 아닌데. 나는 이름이라는 것도 없던 구경꾼일 뿐이었는데.

나는, 정녕 묻고 싶었다.


이 지랄 같은 곳이 대체 어디냐고. 어디길래 날 이렇게 x같이도 힘들게 하는 거냐고.


하지만, 답해 줄 이는 세상천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이제 내게 확인을 하고, 받기 위해 갈 곳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난,

잡초가 무성한 공원에서 목이 찢어져라 고성을 지른다.

가슴속에 뭉쳐진 덩이리라도 뽑아내고 싶어서. 이 x같은 이현식의 몸뚱이로 살아보기 위해서라도.

난, 내가 살아있다는 스스로의 확신을 가지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하며 하루, 한시간, 1분, 1초,

시간을 죽여버린다.



이전 13화그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