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다(4)
그는 자신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의 예전 사무실에 있으니 자신을 데리러 와 달라고.
그리고 다른 한 명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들리고 여보세요라는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며,
“명현아. 나 좀 도와주라.”
단 한 명 남은 그의 친구에게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의 어머니는 머리가 피로 흠뻑 젖은 그를 보고 그의 어깨를 붙잡고 울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붙잡으며 119에는 전화했냐고 물었고 빨리 병원을 가자며 그를 다그쳤다.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답했다.
“명현이 불렀어요. 곧 온데요.”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뭐?”
“명현이요. 제 유일한 친구. 전화해 놨어요. 곧 올 거예요. 오면 걔 차 타고 병원 가요.”
그의 어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니가 걔 미국 갔다며! 근데 걔가 어떻게 여길 와!!! “
그는 그의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찰나의 시간 후, 그는 급하게 자신의 폰을 켰다.
자신의 폰은 전원이 꺼져있었다.
아무리 해도, 폰은 켜지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어머니를 찾았다.
하지만,
눈앞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사무실의 전등이 언제 꺼져 있었던 건지 주위는 깜깜하기만 했다.
그는 허탈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비틀거렸지만, 힘겹게 걸음을 디뎠다.
입술을 짓씹으며 눈물이 그렁한 자신의 눈을 부릅떴다.
그는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베여있었다.
"제발... 이것만은."
가짜가 아니기를.
그는 가로등 불빛이 점점이 이어지는 밤길을 걷고 걸어서, 빛을 향해 들어갔다.
그곳은 경찰서였고,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서,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응급실에서 찢어진 머리를 꿰매고, 일주일간 집에 누워 있던 그는 자신을 마땅찮게 보는 그의 아버지의 눈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팔을 잡고 매달렸으나 그의 눈에는 그것마저 의심하는 눈빛이 진했다.
정처 없이 걷던 그의 눈에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모를 사찰의 목문이 보였다.
그의 발이 목문을 넘어 사찰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의 눈은 빛을 쫓아 움직였고,
어느새 무릎 꿇고 앉은 그의 앞에는 스님이 한 명 서 있었다.
스님은 말없이 그를 절 안으로 들였다.
나무문이 닫히는 소리에,
그는 문이 속삭인다고 생각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림자가 깃드는 법당 한가운데,
스님은 촛불 하나를 켜고 그를 마주 보았다.
“어찌 오셨습니까.”
스님의 말은 단순했다. 조용했고, 깊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걸 보는 것 같습니다.. 들리지 않는 걸 듣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저를 향해 말합니다.
… 도와주세요."
그가 얕은 숨을 뱉으며 스님에게 매달렸다.
"착각이라면, 제발 멈추게 해 주세요.”
하지만 스님은,
말이 없었다.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단 한 마디 없이.
그 시선 앞에서 그는 자신이 말도 안 되는 것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자신조차 믿지 못한 말을 내뱉었다는 자각을 몸으로 느꼈다.
숨이 막히고 몸이 굳는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말이 아니었다.
무게 없는 무게.
정신의 껍질이 찢어지는 감각.
그는 고개를 떨구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작아지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턱이 덜컥 소리 나도록 어금니를 물었다.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스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끄... 릅씁니듯.”
그 한마디에, 스님은 마침내 그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스님의 눈 너머를 본 듯 잠시 흔들리더니, 법당 한쪽을 향해 고정되었다.
스님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달마의 목조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붓질이 닿은 듯 만듯한 작은 눈동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할 조각이 그곳에서 묵직한 감각으로 그를 내리 누리며 한 마디를 뱉었다.
-
여기다.
-
그의 머릿속에는 분명히 들렸다.
또렷했다.
그 어떤 환청보다 명확했다.
그 순간,
스님이 입을 열었다.
“신내림을 받았구나.”
스님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하듯 담담했다.
그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일 따위는, 절대, 없습니다.”
절대적인 거부, 확고하다 못해 맹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진실이어야만 한다는 그의 간절한 눈빛이 스님에게 외쳤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됐다.
그런 건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가 부정한 것은 신이 아니었다.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말.
자신의 존재와 삶이 그저 단순한 시험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다.
들리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입만 벌린 채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 낼뿐인 그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려, 울음을 가슴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x팔! 그만 좀 삼키고 목구멍 터지게 짖어! 울란 말이다!)
스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말했다.
“오늘 밤은 절에서 자고 가십시오.
가능하다면, 부모 중 한 분과 함께 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조심스레 휴대폰을 꺼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님이 그의 전화를 받아 절의 위치를 설명했다.
어머니는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절에 도착했다.
그는 택시에서 내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힘 없이 머리를 숙였다.
미안하다고.
그의 어머니는 그의 등을 토다토닥 두드리고는 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안도하며 희미하게 한숨을 뱉었다.
지쳐 보이는 얼굴을 한 그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다 스님을 발견하고는 꾸벅 인사를 하였다.
스님은 그의 어머니에게 머무를 방을 가르쳐 주고는 사찰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는 자신을 붙잡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사찰과 이어진 거실로 돌아갔다.
달마 조각상이 있던 그 자리로.
불이 꺼진 공간, 그 어느 곳보다 조용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잠들지 못했다.
웅성임과 뒤섞인 어지럼증.
속이 울렁였고, 몇 번이고 화장실로 달려가 속에 있던 것을 토해냈다.
몸은 뜨거웠고 머리는 차가웠다.
눈은 감겼지만 뇌는 계속해서 ‘소리’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 밤,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어머니와 함께 정신과를 찾아갔다.
긴 설명 대신 그는 침묵했고 어머니가 대신 의사에게 설명했다.
의사는 통원 치료를 권했다.
바로 입원은 어렵다고 했다.
그는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약을 먹고 잠을 자는 나날.
하지만 여전히 들리는 소리들.
벽과 천장, 창문과 책상, 그림자까지도 말하는 나날.
일주일이 지난날,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병원에… 다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이 그의 입에서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스스로의 의식을 붙잡는 것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가 눈을 뜬 곳은 하얀 벽. 낯선 형광등. 희미하게 울리는 기계음. 딱딱한 간이침대. 창문에는 철창이 달린, 병실.
그는 입 안이 말라 있었고, 머리는 텅 빈 듯하면서도 너무나 무거웠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정신병동.
그가 마주한, 조용하고, 너무도 시끄러운 곳.
병동에 입원한 그는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았다.
거울 속 자신을, 텅 빈 복도를, 속삭이는 벽을.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정신병동에는 세면장은 있어도 샤워실은 없었다.
다용도실 한편에 달린 낡은 샤워기 하나가 전부였다.
시린 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다용도실에서,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새벽과 더 가까운 시간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옷을 벗었다.
몸을 조아리고,
찬물로 머리를 적셨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차가움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샤워를 마친 후에는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향해 무릎을 꿇고 큰절을 세 번 올렸다.
그는 그것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누군가를 위함도 아닌, 그저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의식이라 믿으며 반복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찬물로 온몸을 헹구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몸살도 없었다.
입원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무렵.
새로운 환자가 병동에 들어왔다.
침묵 속에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그리고,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귀한 분을 뵙습니다.”
간호사들과 간호조무사는 그를 흘깃 쳐다보다 자신들의 업무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절을 받은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나긋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저도, 귀한 분을 뵙습니다.”
병동 안.
누군가는 침대에 앉아 책을 펼친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벽에 숫자를 새기다 간호사에게 꾸중을 듣는다.
누군가는 간호사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 간호사의 이름을 계속해서 외치고, 누군가는 마르지 않는 눈물로 계속해서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와 남자는 서로만을 의식한 채 인사를 나눴다.
병동이라는 이름의 경계 안.
세상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그들만이 서로를 ‘귀한 존재’라 불렀다.
“그분은 참 바쁘신 듯합니다. 날 잊으셨네요.”
그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돌려,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느님이 살피지 않는 분이... 어찌 귀한 분이 되셨습니까?”
남자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그는 남자의 미소를 바라보다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처님은 침묵을 좋아하시고, 약사여래님은 베푸는 걸 좋아하시며, 관세음보살님은 꾸짖음을 받아들여 바른 길로 나아가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남자는 눈을 감고 한참을 웃었다.
“하느님은 기도하는 이의 바람을 들어주기보단 고를 길을 보여주시고 살포시 등을 밀어주시더군요.”
둘은 각자의 신을 품고, 각자의 믿음을 존중하며.
그 시간만큼은, 병동이 아닌 사찰의 마루 위에 앉은 것처럼, 교회의 예배당에 앉은 것처럼 각자가 느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간호조무사의 귀에 들어갔고,
그 말들은 필터 없이 간호사에게서 담당 교수에게로 전해졌다.
결국 병원은 두 사람을 서로 다른 병동으로 분리시켰다.
그는 다시 남자를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쇠창살로 막힌 창문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 감사합니다.”
그는 자신의 담당전문의 앞에 앉아, 의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오늘은 기분 어떠세요? 잠은 잘 잤어요?”
그는 의사의 말에 살며시 웃음 지으며 말했다.
“친구가 사라져서 좀 외롭습니다.”
의사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병동에는 다른 환자도 많은데 가깝게 지내보지 그래요?”
의사에 대답에 그는 눈빛을 가라앉히고는 차가운 음성으로 답했다.
“병원이지 않습니까. 통제되는 곳에서 가깝게 지낸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겠습니까?”
의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무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세요. 저도 있지 않습니까? 솔직해지셔야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는 하, 하고 웃어버리고는 의사에게 말했다.
“인사하고 가깝게 지내보고자 했던 사람마저 갈라놓으면서, 선생님 말을 어떻게 믿어요?”
의사는 지긋한 표정으로 자신의 안경을 고쳐 쓰더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현식 씨.”
“왜요?”
“현식 씨께서는 병원에 계신 동안 쭉 혼자 계셨어요. 벽을 보고, 허공을 보고 인사를 하신 적은 있지만 그 누구 하고도 가깝게 지낸 적이 없습니다.”
그의 표정이 굳었다.
“저에게는 솔직해져 주세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나아지실 수 있어요.”
그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허탈이 웃어버렸다.
“선생님은 진짜입니까?”
“네? 당연하죠.”
“선생님은... 제 꿈이 아닌 겁니까?
“물론입니다. 이현식 씨.”
의사의 부름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의사를 바라보았다.
“걱정 마세요. 오늘은 수면제도 처방 내려 드릴 테니 푹 주무세요. 아셨죠?”
그는 하하하고 웃어버렸다.
병동으로 돌아온 그는 빠르게 잠에 들었다.
그곳에는 조금 전 상담을 했던 의사가 그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밝은 얼굴로 웃으며 의사의 목을 잡아 질식시켰다.
의사가 쓰러져 축 퍼져 있는 모습을 본 그는 자신에게 묻는 소리에 나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이제 조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