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다(3)
그는 집에 도착해 그의 아버지 몰래 그의 어머니를 불러 말했다.
“저 정신이 조금 이상해 진 거 같아요.”
그의 말에 그의 어머니가 두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어?”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신이 겪은 것을 말했다.
수없는 ‘소리’가 들린다고. 이해할 수 있는 말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있으며, 그냥 벌레 소리부터 내리지도 않는 비 소리까지.
그의 말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막연해진 얼굴로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그에게 말했다.
“현식아. 이건 아니잖아. 응? 아니지?”
그는 두 눈을 질끈 감더니 슬며시 눈을 뜨며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어리석은 손길에 등불하나가 고통받아 집안에 화가 깃든다. 집안에 깃든 불화가 네 손에서 떠나지 못하니 손을 털어 고인을 모시고 그가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함이 네 몫이니, 모셔서 보내 거라.”
한 번의 호흡도 쉬지 않고 같은 말을 세 번을 반복한 그가 숨을 몰아쉬며 그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나, 무슨 말했는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내 귀에는 안 들려.”
그의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허망해진 표정으로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있던 그의 어머니는 이튿날, 발길을 끊은 지 오래인 곳으로 그를 보냈다.
“할배가 니 올 때 되었다고 마중 나가라더만, 빨리도 온다. 손아.”
다 쓰러져가는 스레트 집에서 백발에 덥수룩한 흰 수염이 가득한 한 할아버지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언덕 아래에서 위를 보던 그는 할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중얼거렸다.
“늙으셨네요.”
“다 들린다. 이 놈아.”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간 할아버지는 양푼이를 들고 나오더니 양푼이안에 든 것을 그에게 가차 없이 뿌려버렸다.
그것은 팥이었다.
“뭘 어깨에다 덕지덕지 매달고 와서는, 무겁지도 않냐?”
얼굴을 슥슥 비벼 털어낸 그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래. 너는 모른다. 모르는 게 맞다.”
스레트 집으로 들어간 할아버지는 크게 외쳤다.
“부처님이나 뵙고 가라! 반가우시단다!”
그는 신발을 벗어두고 고개를 숙인 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손 놈이 올만에 온 게 초하루도 아니고 보름이야.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모르니.
할배요. 어린놈입니다. 정신 좀 차리게 해 주이소.”
그는 할아버지의 우측 뒤편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아주머니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아주머니는 그를 힐긋 보며 웃어주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 놈아! 네가 인사할 분은 저 아해가 아니라 부처님이야!”
큰 소리로 그를 꾸짖은 할아버지는 염주를 손목에 감고 목탁을 들었다.
천천히 이어지는 불경소리가 그의 귀로 스며들었다.
그는 백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스님’의 좌측 뒤편에 무릎 꿇고 앉았다.
천천히 벌려지는 그의 입에서도 불경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부들거리던 그의 눈에서 물방울이 고여 옆얼굴을 따라 흘러 턱에서 똑하고 떨어졌다.
어금니를 깨문 그는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불경소리는 계속해서 그의 입에서 비집고 나왔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다시 일어나고, 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그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불경소리를 스스로의 이빨로 짓 씹었다.
흐르는 눈물이 점점 숨을 가쁘게 하고, 무릎이 부들부들 떨리고,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조금씩 느려지는 목탁 소리가 그의 귀에서 조금씩 커져갔다.
할아버지의 불경소리도 잦아들고 목탁 소리만 커져 갈 때, 오로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짓뭉개진 발음의 불경소리만 커져갈 때,
그는 마지막 불경의 단어를 빠드득하는 이빨을 가는 소리와 비릿한 피맛을 느끼며 입 안으로 삼켰다.
제를 마치고 화장실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은 그는 컨테이너 박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할아버지.”
그가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서며 말하자, 큰 소리가 그를 반겼다.
“이 놈아! 다 큰 놈이! 스님이라 안 부를래! “
그는 할아버지의 백발을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부른 할아버지가 입에 붙은 걸 어떡해요. “
할아버지 또한 피식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10년 만에 와서는 잡것만 매달고 오고, 잘하는 짓이다. “
”할아버지. “
”말할 거 없다. “
그의 말을 끊은 할아버지는 이어 말했다.
”넌 그냥 중생이다. 신내림 같은 건 없다는 말이다. “
할아버지가 그의 눈을 노려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명심해라. “
그는 다시 숨을 들이켰다.
살며시 떨리는 그의 어깨를 보듬은 할아버지가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이 간이 좁쌀만 한 것아. “
그는 턱이 부서져라 이빨을 악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팔도 네 마음먹기에 달렸다. 네 다리가 그랬던 것처럼. 알겠느냐? “
그는 할아버지의 말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라. 속이 든든해야 잡것도 덜 달려들어. “
할아버지는 아줌마가 차려온 밥상에서 된장찌개를 휘젓더니 알이 꽉 찬 쏙을 건져 그의 양푼이밥 위에 올려주었다.
”내 먹으려고 아껴둔 건데, 미운 놈, 떡이나 많이 먹어라. “
그는 헤죽 웃으며 껍질 째 쏙을 씹었다.
그의 웃음을 본 할아버지도 허허하고는 웃으셨다.
”정든다, 이놈아. “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돌아서는 그를 불러 세운 할아버지는 그의 손에 묵직한 검은색 봉지를 들려주었다.
”부처님 전에 올렸던 것들이다. 버리지 말고 먹어라. “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에게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프다고 억울해 말고, 슬프다고 화내지 마라. 다 지나간다. 지나고 나면 그저 그랬던 거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할아버지는 말했다.
“살면 된다. 살면. 내 지켜볼게. 조심히 가고. 오랜만에 손 얼굴 보여줘서 고맙고. 한 번 안아보자.”
그는 할아버지의 벌린 팔 안으로 걸어가 두 팔을 벌려 마주 안았다.
할아버지의 품에서 나온 그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왜?”
“할아버지는 성함이 어찌 되셨나요.”
뜬금없는 그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 이름은, 떠올려지지 않는 기억 중, 가장 가슴이 쓰라린 기억이 되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걷는 시간으로 소비했다.
더 이상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지도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나가서 길을 걷고, 점심을 먹고 다시 걷고, 저녁을 먹고 걸었다.
미친 듯이 걷는 그를 보며,
나는,
즐거웠다.
그가 점점 미쳐가는 것이.
회색뿐이었던 세상이 붉게 변하고, 붉게 변한 시야가 하얗게 질렸다.
캄캄해진 어둠 속에서 엎드려 두 손 두 발로 기다가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팔을 억지로 바닥을 디뎌 얼굴을 아스팔트 바닥에 비벼대는 그를 보며,
나는,
흥얼거렸다.
-
내가 태어난 순간은,
작은 몸뚱이로, 피를 철철 흘리는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바닥을 구르고 있는 그의 의식이 갈래갈래 찢겼을 때였다.
-
그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
아무도 없는, 잡초가 무성한 공원에서, 썩어가는 벤치에 누워있던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목탁소리가 사라졌다.
알 수 없는 소음이 조금씩 조금씩 커져갔다.
그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불경을 외우는 그의 목소리가 조급함에서 여유로움으로 변하고 새하얗게 질려있던 얼굴의 색에 홍조가 피었을 때, 그는 천천히 입을 닿았다.
몸을 일으킨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걷던 그가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등을 켜고 안을 보자 붉은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낡은 소파가 보였다.
그는 소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전신의 힘이 빠지며 주욱 미끄러진 그의 몸이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가 되었을 때,
그는 천장의 전등 빛에 빨려 들어갔다.
빛이 흩어졌다.
점이었던 것이 하나씩 하나씩 선이 되었다.
수십, 수백 개의 선이 서로 겹치며, 끝내 두 개의 선이 남았을 때, 그 두 개의 선은 서로 합쳐지기를 거부했다.
그는,
숨을 쉬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꺽꺽거리며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서도,
두 개의 선을 노려보며,
숨을 쉬지 않았다.
몸이 굳고, 눈동자마저 흔들 수 없는 그 상황에서, 그의 입술 사이로 선홍빛의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붉게 충혈된 자신의 눈을 부릅뜬 그는 목에 힘줄을 일으키며 거칠게 목을 비틀었다.
두 개의 선이,
하나가 되었다.
환청에 시달리는 그는 머릿속이 너무도 시끄러워서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주변인을 모두 쫓아냈다.
모두가 떠나버린 그의 주변은 더욱 조용해져야만 했다.
인연을 끊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연락을 받지 않고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의 고향 주소를 그 누구에게도 알려 준 적이 없었다.
고향 친구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그런데도,
시끄러웠다.
그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시끄럽다는 것.
환청이 환시가 되고 그리고, 현실이 되었다.
그의 주변에는 그 외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는 자신을 고립시켰다.
그는 말했다.
시끄럽다고.
반복하며,
시끄럽다고.
시끄럽다고.
그는 참지 못하고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퍽 하고 퍼지는 시원한 느낌이 그의 이마를 물들이고 시야를 붉게 칠했다.
그제야 그는 그의 머리가 맑아졌음을 느꼈다.
그는, 그제야 주위가 조용해졌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바람소리, 풀벌레소리, 행인의 대화소리, 발자국소리, 숨소리, 옷이 피부를 스치는 소리. 무수한, 소리.
그는 귀를 막았다.
다시 환청이 시작되었다.
주저앉은 그는 바지를 적시는 붉은 액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끄럽다고.
“제발, 좀, 닥쳐.”
벽지도, 손잡이도, 전등도. 모두 다른 소리로, 다른 목소리로, 다른 언어로, 다른 사람의 말투로. 그러나, 전부는 동시에 말한다.
같은 음량, 같은 거리, 같은 날카로움으로.
같은 질량으로.
무엇이 진짜 말인지, 무엇이 소리인지, 무엇이 그의 생각이고, 무엇이 세상인지 무엇이 허구인지.
알 수 없었다.
터질 것 같은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오는 무한한 감각들. 정신은 말을 가리지 못해.
의미는 없는데, 의미는 있어.
이해할 수 없는데, 이해해야만 할 것 같아.
그는 중얼거렸어.
“시끄러워.”
누가 말했는지도 몰랐어.
“시끄러워.”
계속 반복했어.
그는 머리를 감싸고
어느새 벽에 이마를 박고 있었어.
그의 소리 없는 비명은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