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가 소환한 ‘자살의 노래’,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존엄성
김윤아가 〈비긴어게인〉에서 부른 'Gloomy Sunday'를 듣다가, 오래전에 본 영화 〈글루미 선데이〉가 떠올랐다.
낮게 읊조리다 어느 순간 허공을 가르는 그녀의 고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숨을 멈추게 한다.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슬픔과 그리움을 끄집어내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단숨에 영화의 공기를 불러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1999)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 흐르던 아담한 레스토랑, 안드라스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피아노 선율, 그 우아한 공간 속에 이미 짙게 깔려 있던 죽음의 그림자.
영화 내내 아름다움과 비극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화의 주제곡은 헝가리에서 태어나 '자살의 노래'라는 별명을 얻었다. 절망에 빠진 청년들이 이 선율에 마음을 빼앗겨 생을 마감했고, 결국 방송 금지까지 당했다.
작곡가 레죄 세레스 역시 끝내 그 선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건 노래가 아니라 그 시대의 고통이었다.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이 노래는 끝내 안식을 권하는 슬픈 독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영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사람은 한 줌의 존엄성만 있다면 세상을 버틸 수 있다"는 말이다. 전쟁과 나치의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존엄을 지키려 했던 인물들의 선택은,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낸 인간의 기록이었다.
오늘 김윤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시 80년 전 부다페스트의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의 공기가 지금의 내 거실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가끔 자다가 잠이 깨어 한밤중 고요한 거실에 홀로 앉아 있을 때면, 삶이 단조의 선율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이 고요 속에서 글을 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시대의 파도 속에서도 자기 색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