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라는 늪을 건너는 첫 번째 단서
베네수엘라 대통령 압송 소식을 접했다. 폭격기를 포함한 150여 대의 항공기가 동원된 이 작전의 표면적 명분은 독재 타도와 마약 퇴치였다.
그 뉴스를 보며 오래된 질문 하나가 다시 떠올랐다.
폭격기로 마약 공급원을 끊어낸다고 해서,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지독한 갈증이 멈출 수 있을까.
이 압도적인 무력 행사가 독재 타도 외에도 자원 확보와 국제적 견제라는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지금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거대한 담론이 닿지 못하는 곳, 즉 스스로 약물을 선택하는 개인의 내면이다.
현대 중독 심리학은 '정신적 괴로움'을 중독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꼽는다. 단순한 쾌락 추구가 고질적인 중독으로 고착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깊은 내면의 상처가 있다. 이를 전문가들은 '자기 치료 가설'로 설명한다.
우울, 불안, 외로움처럼 맨 정신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마약이라는 강렬한 자극으로 잠시나마 마비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 가설을 실증한 것이 유명한 '쥐 공원 실험'이다. 좁은 케이지에 홀로 갇힌 쥐는 마약 섞인 물에 중독되어 죽음에 이르렀지만, 친구와 놀거리가 가득한 쥐 공원의 쥐들은 같은 물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중독은 약물 자체의 중독성보다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삶의 질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실험이었다.
누군가에게 단순한 호기심일 수 있는 선택이, 마음이 무너진 이에게는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행복한 사람이 굳이 가짜 쾌락에 기댈 이유가 없다는 사실은, 중독 문제가 결국 '어떻게 인간을 덜 불행하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임을 말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중독은 연결되지 못한 영혼이 보내는 구조신호에 가깝다.
그러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독의 원인이 환경에 있다 해도, 자신의 삶을 바로 세워야 할 주체는 결국 본인이다.
만약 중독의 늪에 빠진 이들이 자신의 행위가 쾌락을 향한 탐닉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을 잠재우려는 시도였음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고통의 실체를 직시하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그 늪에서 빠져나올 첫 번째 단서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