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누구나 당연히 한 번쯤 꿈꿔보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 그래서 단순히 그런 게임의 플레이어가 아닌 개발자의 일원이 되는 것 이다.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장르의 게임을 좋아한다면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국내 게임회사에 취업하면 되니까. 모바일 RPG, MMORPG와 같이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장르들은 회사의 선택 폭도 넓고 기회도 많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많고, 국내 게임회사에서는 거의 만들지 않는 장르라면 어떨까? PC/콘솔 기반의 액션 어드벤처, FPS 같은 장르들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외 게임회사에 취업해야 하지만, 비자 문제, 언어 문제,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온 이 업계인데, 내가 진정 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내가 꼭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간혹 해외취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것은 10년이나 지난 글이고, 어떤 것은 너무 제한적인 정보만 공개되어 있었다. “먼저 유학을 간 후 현지에서 지원을 했습니다”, "링크드인으로 지원했어요", "국내 해외 취업 박람회에서 우연히 기회를 얻었습니다." 같은 이야기들만 있을 뿐이었다. 유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국내에서 바로 해외 취업한 사람의 정보가 필요했다. 국내에서 바로 해외 취업에 성공한 구체적인 과정, 실제 경험담,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렇게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해외 게임회사 취업 사례들을 보면서도, 언젠가는 해외 취업에 꼭 도전해서 나도 내가 좋아하는 해외 게임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늘 마음 한켠에 간직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회사만 바뀌는 것이 아닌 생활 기반 전체가 바뀌는 큰 변화였기에 선뜻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국내 게임 업계에서 어느 정도 경력도 쌓았고, 여러 프로젝트를 거치며 나름의 전문성도 갖춰갔다. 하지만 동시에 나와 맞지 않는 국내 게임업계의 부분들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프로젝트, 수익에만 매몰된 기획, 창의성보다는 검증된 공식의 반복.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 어렵게 기회를 찾아 이 업계에 들어왔는데 현재 내 모습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무렵, 해외 취업이라는 나의 오랜 소망과 도전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번엔 진짜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도전해볼 수 있을까? 나이는 점점 많아지고, 가족이 생기면 더욱 어려워질 텐데. 그렇게 대학 졸업 후 약 10년이 지난 시점에 본격적으로 해외 취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정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거의 유일하게 아는 정보란 해외는 링크드인으로 공고를 확인하고 지원한다는 점, 마음에 드는 지원자가 있다면 해외 게임 회사들은 현재 거주 중인 국가에 상관없이 워크 비자를 지원해서 이주해 올 수 있게 해준다는 점 정도였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링크드인 프로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영어로 된 이력서도 처음 써보는 거라 몇 번이고 다시 쓰고 또 썼다. 포트폴리오도 영어로 번역하고,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들을 해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다시 정리했다. 생각해보니 한국 게임들은 해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게임 자체를 설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별다른 정보도 없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내가 길을 만들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채용 공고에 지원을 시작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영어권이나 영어가 통하는 국가들의 게임회사들을 위주로 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곳이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어찌저찌 서류 통과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면접을 계속 통과하다 보니 덜컥 캐나다와 영국 두 곳에서 최종 합격을 받아버렸다. 합격 통보를 받는 순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진짜? 나를 원한다고? 이런 기분이었다.
두 곳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게임을 만드는 회사들이었고,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해야 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캐나다로 가기로 결정했다. 더 안정적인 이민 정책,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업무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캐나다 회사에서 내가 배정될 프로젝트가 영국 회사의 프로젝트보다 더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밀려왔다. 회사가 있는 캐나다로의 이주까지 남은 것은 단 3개월. 집도 정리해야 하고, 비자도 준비해야 하고, 이사 준비도 해야 하고. 한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이렇게 현실로 다가오니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그렇게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해외 게임회사 생활을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