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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숙제가 된 시대를 위한 변명

어쩌면 우리는 쉬는 법이 아니라, 쉼을 대하는 법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by PureunDal Archive


"여가를 현명하게 채울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문명의 마지막 산물이다."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가장 완벽한 휴식의 순간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 이래도 되는 걸까?’
일요일 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불안감과 함께 소파에 몸을 기댑니다.


하지만 손에 들린 스마트폰의 액정에서 나온 빛이 시야에 들어올 때 우리는 걱정과 불안을 잠시 잊고 그 '순간'을 즐깁니다. 핸드폰을 내리고 나면 즐거움은 멈추고 더 큰 공허함이 밀려들어옵니다. 이 기이한 현상. 우리는 이것을 ‘휴식 죄책감’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머릿속의 ‘OFF’ 스위치가 고장 나 버린 듯, 멈춤 그 자체가 더 큰 스트레스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잠들기 직전까지 새로운 자극을 찾아 피드를 넘기고, 고요의 순간을 견디지 못해 TV부터 켜는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증상일지 모릅니다. 생각의 엔진은 멈추지 않고 공회전을 시작하며, 우리의 에너지를 조용히 갉아먹습니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질문은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쉼이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말입니다.


쉼은 ‘활동의 멈춤’이라는 상태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하나의 '흐름(Flow)'입니다. 쉼은 무언가를 덜어내는 동시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 과정입니다. 저는 그 흐름을 '비움, 채움, 머묾'이라는 세 가지 단계로 정의합니다.




뜨거운 물이 찻잔에 담기는 소리, 찻잎이 우러나며 퍼지는 향기,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 입안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쌉쌀한 단맛. 이 모든 감각의 조각들이 모여 비로소 ‘쉼’이라는 온전한 경험으로 우리를 ‘채웁니다(Filling)’. 신기하게도, 이렇게 감각에 집중하는 동안 우리의 뇌는 잠시 생각의 소음을 ‘비워낼(Emptying)’ 기회를 얻습니다.


쉼은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과업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생각과 타인의 시선을 부드럽게 비워내고, 지금 이 순간의 순수한 감각으로 나를 채우는 지극히 사적인 의식(Ritual)입니다. 그리고 그 의식의 끝에 남는 고요한 ‘머묾(Lingering)’의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잘 쉬었다’는 감각의 진짜 모습일 겁니다.


이번 한 주, ‘주말엔 꼭 잘 쉬어야지’라는 무거운 다짐은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대신, ‘아침에 마시는 커피의 첫 향을 온전히 느껴봐야지’라는 아주 작고 사적인 감각의 약속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위대한 휴식은 거창한 계획이 아닌, 되찾은 감각의 첫 순간에 고요히 시작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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