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옷장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기본'의 기준

by 포르마


. 영국에는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처럼 칼리지 시스템을 운영하는 대학들이 몇 곳 있다. 대표적으로는 옥스퍼드 · 케임브리지 · 더럼, 그리고 내가 다녔던 요크이다.


. 나는 이 독특한 생활을 꼭 경험해 보고 싶었고, 1학년 신청 마감 네 시간 전에 기숙사 신청서를 내밀었다. 배정된 곳은 Langwith College. 1965년 학교 설립 당시 만들어진 두 개의 창립 칼리지 중 하나였지만, 캠퍼스 확장과 함께 최신 건물로 옮겨온 덕분에 룸 컨디션은 기대 이상으로 쾌적했다.


. 내가 머물렀던 플랫(Flat)은 12명이 하나의 큰 공용 주방을 공유하는 구조였고, 각자 방 안에는 개인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었다. 아침이면 주방에서 마주친 친구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고, 저녁에는 다 같이 영국 예능이나 축구 중계를 보곤 했다. 우리는 공용 쓰레기 담당을 정해 돌아가며 처리했고, 생일이 되면 모두가 모여 케이크를 들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크리스마스나 핼러윈에는 행사에 참여하며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 그런데 가장 결정적이었던 사실은, 나를 제외한 11명이 모두 영국인이었다는 것이다.


.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그 환경이 영어 실력이 미치는 영향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해당 언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환경 속에 스스로를 던져라’라는 말이 뼈저리게 실감되었다. 말하지 않으면 대화에 끼어들 수 없고, 모르면 배워야 하고, 순간순간이 훈련이자 실전이었다.



. 그중에서도 나와 가장 가까워진 사람은 사람은 아담(Adam)과 비샨(Vahesan), 세 사람 모두 생일이 12월이어서 친구들은 우리를 December Boys라고 불렀다. 기숙사 생활이 끝난 뒤에도 계속 연락을 이어갈 만큼 좋은 사이였다.


. 비샨은 따뜻함의 결정체 같은 친구였다.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가던 마지막 날, 내게 첼시 유니폼을 선물하며 런던에서 히스로 공항까지 차로 데려다주던 그의 표정은 아마 평생 기억날 것이다.

. 아담은 전형적인 포쉬(Posh)한 영국 신사 스타일이었다. 말투, 태도, 농담까지 어디 내놔도 영국 상류층 느낌이 났다. 나는 이 친구와 대화하며 수십 개의 영국식 표현을 배웠다.


‘익숙하게 들려 기억이 살짝 떠오를 때’ 쓰는 표현인 Ring a bell,

‘잠깐 들르다’라는 의미의 Pop in,

그리고 상황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많은 표현들.


. 그중에서도 특히 자주 사용했던 말은 단연 “I like your ~”였다. 외모 · 헤어스타일 · 신발 그리고 물론 옷까지, 영국 사람들은 타인의 스타일을 정말 자연스럽게 칭찬한다. 어느 날 아침, 버버리 맨투맨을 입고 부엌에 갔던 날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플랫 메이트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Ooh, I like your top!”


그 여유로운 말투 속에서, ‘내가 이곳의 일상 속에 녹아들고 있구나’라는 따뜻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 유학 생활을 하며 나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유럽 친구들은 비싼 브랜드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좋은 실루엣 · 깔끔한 색감 · 재질이 주는 균형감. 이 세 가지가 갖춰져 있으면, 그들은 진짜 솔직하게 반응했다. 이때부터 내가 해외에 나갈 때 챙겨가는 옷의 기준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 나는 기본템이라면 무신사 스탠다드(무탠다드)부터 살펴보는 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하루에 서른 명은 마주칠 법한 국민템 이미지가 강해서 괜히 피하게 되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무탠다드는 조금 다르다. 슬랙스 · 바람막이 · 셔츠 같은 베이식 카테고리에서는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실루엣·색감·재질을 가장 안정적으로 뽑아내는 브랜드가 되어있었다. 여행지에서 입고 돌아다니면 잡생각 없이 편하고, 사진에도 깔끔하게 남고, 무엇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 유럽인들이 칭찬할 정도라면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실제로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I like your outfit, where did you buy it?”이었고, 내가 “It’s a Korean brand.”라고 답하면 다들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이 때문에 나는 기본템을 무탠다드로 안정적으로 잡아두고, 그 위에 내 취향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아우터나 신발을 더해 스타일을 완성한다. 기본 선택에서 실패할 확률이 적으면, 나머지는 훨씬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고를 수 있게 된다.



. 또 하나의 사실은, 기본템을 잘 만드는 브랜드는 국적을 초월해 신뢰받는다는 것이다.

. 일본의 유니클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 유럽에서는 이미 입지를 굳힌지 오래다. 가격 대비 품질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고, 특히 히트텍이나 디자이너 협업 제품들처럼 기능성과 디자인을 동시에 잡은 아이템들은 ‘이건 그냥 사야 하는 옷’처럼 자리 잡았다. 브랜드의 정체성도 명확하다. 튀지 않고, 오랫동안 입을 수 있고, 이상할 정도로 실패가 없다. 그래서 유럽 친구들 중 상당수가 유니클로를 알고 있었고, 실제로 옷장에 한두 벌씩 가지고 있었다. 파리 라파예트 앞을 지나가거나, 밀라노의 유니클로 매장을 보면 그 위상을 더 정확히 체감한다. 수많은 유럽 브랜드 사이에서도, 유니클로는 몇 년째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현지인들의 선택을 꾸준히 받고 있다.


.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의 무신사 스탠다드가 한국에서 만들고 있는 위치가, 유니클로가 세계 무대에서 가진 위상과 닮아가고 있다는 점을. 합리적인 가격, 과하지 않은 실루엣, 계절과 트렌드를 정확히 짚어내는 색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본템을 기본답게 만드는 능력.


. 유니클로가 ‘일본의 베이식’이라는 미학을 성공적으로 수출했다면, 무신사 스탠다드는 ‘한국의 깔끔함과 실용성’이라는 미감을 동세대에게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아직 글로벌 브랜드는 아니지만, 손에 잡히는 품질만 놓고 보면 그 경계는 이미 넘었다.


Uniqlo Paris / Uniqlo Milano


. 그래서일까. 영국으로의 출국을 준비하며 캐리어에 무엇을 넣을지 고민할 때, 무탠다드는 가장 먼저 선택된다. 해외에 나가면 괜히 ‘한국적인 미감’을 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반대로 너무 과한 디자인 보다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옷들이 오히려 가장 많은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다. 비싼 브랜드라서가 아니라, 색감과 실루엣이 깔끔하다는 이유로. 예상하지 못한 순간마다, “I like your ~.”이라는 말을 듣게 해줬다.


. 그럴 때마다 조금씩 확신이 생겼다. 좋은 브랜드는 결국 ‘어디에서 입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옷’을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의 무신사 스탠다드는 그 기준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충족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했지만, 국적을 벗어던지고 세계 어디에 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기본템들.


.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입게 될 것이다. 가장 편안한 옷을 고르고, 그 위에 나만의 리듬을 얹으며.


. 당신의 옷장에는 어떤 기본이 남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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