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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찌르기

쉬어가는 이야기, 짧은 동화

by 아는개산책
딱지


금호가 아까부터 창문 밖 친구들과 장난을 친다.


그것도 우리 책상을 밟고 올라서서.


"야, 이럴 거면 나가서 놀아. 왜 창문 두고 이러냐."


이층에서 뛰어내리면 발목 다칠까?


팔짱을 끼고 동생하는 꼬락서니를 지켜보던 우리는 가만히 다가가 금호의 발목을 움켜쥔다.


뭐가 신이 난 건지 잔뜩 흥분한 금호는 누나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발목 위로 언젠가 넘어져 다친 부위에 딱지가 까맣게 단단히 익은 것이 보인다.


슬슬

뜯어본다.

넘의 딱지.

확-


아악!

금호의 단말마


아직 다 여물이 않은 딱지 아래 드러난 속살에 피가 송골송골 맺힌다.


딱딱한 딱지가 없으니 내 속이 시원하다.

너도 시원하지?


"누나아! 뭐해에!"


"갈대밭 가자!"


"뭔데"


"언니가 그러는데 학교뒤에 갈대밭 엄청 크대."


"내가 왜가, 니나 가"


"자전거 타고 갈 건데, 네가 운전하게 해 줄게"


금호는 얼마 전 놀인터 철봉 위에 서보겠다고 올라갔다가 추락했다.


그에 대한 벌로 놀이터 출입금지. 자전거 금지.



갈대밭


학교는, 우리가 부르는 교가에 나오는 것처럼 높은 산을 깎아 만들었다.


빙빙 도는 오르막길을 낑낑대고 올라가다가 빙빙대는 내리막길이 신나게 반겨주는 학교길.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철 모르는 미친개나리가 노랗게 벽을 채우고 개나리가 질 때쯤이면 벚꽃이 하늘과 땅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인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 웬만한 아가들 키보다도 더 큰 갈대들이 바람 따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꽃도 모르는 것들은 꽃을 보러 학교로 간다.


"학. 학.. 누나. 오르막길만 누나가 해주면 안 돼?"


낑낑대며 페달을 밟아 올라가는 금호 뒤에 앉아있는 우리도 가만히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짧은 다리를 조금이라도 길게 펴서 바닥을 구르는 중이다.


"안 되겠다. 밀자."


둘이 밀어도 힘든 오르막길을 뭣 헌다고 타고 오를 생각은 했을까.


"다 왔다."


"어, 누나 타."


정상에 올라 내리막길을 내려다보며.

터미네이터의 추억은 온데간데없다.


운동신경이 좋은 동생을 앞에, 우리는 뒤에.

자전거가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다 속도가 붙으면,

아마 하늘을 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겠지?


간단한 출정식을 마치고 자전거가 아래로 내달린다.


금호는 곧 두 발을 번쩍 든다.


"얏호~~~~"


덩달아 신이 난 우리도 뒤에서 두 손을 번쩍 든다.


"얏호~~~~"


속도가 붙는다.

기울기는 크고

뒷자리 하나 더 탄 인간 때문에 질량은 더 나간다.

빠르다.

너무

빠르다.


고우리는 쉽게 잊는다.

도로는

차들이 다니는 길이라는 걸.


승용하 한대가 코너를 돌며 올라오는 게 보인다.


"아, 아 금호야 줄여, 줄여 속도 줄여"


"이얏호~"


안 들린다.


"줄여어어어어어어어어~~~~~~~~!"


빠앙---------


'동생을. 지켜야 돼.'



눈 가리고 아웅


평소 같으면 티브이 앞을 떠나지 않고 거실 바닥에서 뒹굴고 있을 우리와 금호는 방 안에 꼼짝도 않고 책상 앞에 앉아있다.


우리는 공문 수학을 펼쳐 문제를 풀다가 잠시 멈추고 옆에 앉아 졸고 있는 금호의 이마를 바라본다.


다행히도 승용차가 먼저 자전거를 보고 속도를 줄였고,

충돌은 피했지만 우리는 또.

하늘을 날아야 했다.

커브가 심했다.


붕 뜬 상황에서도 우리는 금호의 머리 쪽으로 팔을 뻗었다.

정확히 팔을 베고 떨어진 금호는 다른 곳은 크게 다친 데가 없었다.

그때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풀어 오른다.


살짝 푸르기만 하던 이마의 중앙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더니 이제 이마 한가득을 채운 볼록한 멍이 되어있었다.


-하... 엄마가 날 죽일 거야.


'엄마한테 절대 말하면 안 돼.'


'뭐를?'


'갈대밭 간 거 비밀이야. 알았지?'


신신당부는 했지만.


금호의 앞머리를 정수리에서부터 내려 빗는다.

이마를 살포시 덮으니, 슬쩍 봐서는 절대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네가 숱이 많아 다행이다."


"밥 먹어!"


방 밖으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높이수학 (공문수학)


식탁을 등지고 음식정리를 하는 엄마의 맞은편에 금호와 나란히 앉는다.


'까불지 말고 오늘은 조용히 밥만 먹고 들어가는 거야. 알았지?'


금호의 끄덕끄덕.


이마의 혹에 본인도 놀랬나.

동생이 유독 조용하다.


정리를 마친 엄마가 식탁 중앙 자리에 앉는다. 금호의 왼쪽자리.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해? 뭔 일 있었어?"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젓가락을 문 채 고개를 젓는다.


"공부는 다 했어? 공문수학 다 풀었어?"


성격 급한 우리는 해야 할 일은 미루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인다.


옆에서 금호도 고개를 끄덕인다.

금호는 해야 할 일을 제때 하는 법이 없는 아이다.


"어? 금호도 다 풀었어? 진짜야? 가져와봐"


응?

대화가 딥 해진다.


다쳤는데도 이 자식 언제 문제까지 다 풀고.

오늘은 정말 문제없겠지.


방에 가서 공문수학을 가져온 금호는 거리낌 없이 엄마의 앞에 손바닥만 한 문제지를 내민다.


"정말 다 풀었네? 웬일이야 아들~어구 이뻐라."


엄마는 평소와 다른 금호가 너무나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평소에 늘 하는 우리는. 늘 했으니까 한 거지.


엄마의 손길이 금호의 머리 위로 올라간다.


뒷통수를

쓸어내린다.


"착하네~"


쓸어 넘긴다.

앞머리를

쓸어 넘긴다.


"어? 이게 뭐야? 금호, 이게 뭐야? 우리야 이거 뭐야?"


커튼사이로 쑥 튀어나온 왕 밤만한 혹.


"어? 어?"


"엄마 아아아 아... 누나가... 아아아앙..."


금호의 참고 있던 눈물이 터진다.

우리의 복장도 터진다.


엄마는 방으로 가서 리코더를 들고 온다.


"너 너 너 너, 고우리 너 또 동생한테 뭔 짓을 한 거야."


엄마가 가져온 리코더 밑으로 자진납세 두 손을 쭉 뻗고 눈물도 없이 울고있는 금호를 쏘아보며 작게 중얼거린다.


오늘은

정권 찌르기야.


진짜

안 봐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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