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 살았다. 건반을 두드리며 마음을 표현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무대 위의 성취도 있었지만, 음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었다. 매일 같은 연습과 수업 속에서 마음이 점점 지쳐갔다.
그때 우연히 베이킹을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였다. 하지만 반죽을 치대는 순간 손끝이 살아났고, 오븐 속에서 빵이 부풀어 오를 때는 내 안의 열정도 다시 피어났다. 밀가루와 물, 버터와 설탕 같은 단순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놀라웠다.
미국에 와서는 작은 베이커리 카페를 열었다.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가 도전이었지만, 손님이 “맛있다”라고 건네는 짧은 말 한마디가 음악회에서 받던 박수처럼 크게 들렸다. 이후 홀푸드에서 케이크 데코레이터로 일하면서는, 케이크 위 작은 장식 하나에도 정성과 집중을 쏟았다. 그 순간마다 나는 여전히 예술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대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았다.
지금은 온라인 베이킹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줌 화면 속에는 한국, 미국, 세계 곳곳에서 접속한 수강생들이 함께한다. 같은 반죽을 치대며 “잘 되고 있나요?” 묻는 손길, 실패한 빵을 보여주며 웃어버리는 순간, 그리고 다시 도전 끝에 성공을 자랑하는 표정들. 비록 각자의 주방에 있지만,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응원하는 작은 공동체가 된다.
이곳 브런치에서는 내가 걸어온 길을 기록하려 한다. 반죽이 가르쳐준 인내, 발효가 알려준 기다림, 수강생들이 건네준 위로와 용기. 빵과 함께 배운 삶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낼 것이다.
빵은 언제나 따뜻하다. 글도 그렇기를 바란다. 이곳에서 잠시 숨 고르며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