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by Iasqua

“우리는 그런거 안챙겨. 나 얘네 생일이 언젠지 기억도 못해~”


며느리 맞이하던 해 엄마 첫 생신날 엄마가 며느리한테 생일에 부담느끼지 말라며 했던 말이다. 그런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엄마한테 생일날 미역국 얻어 먹은 날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날 정도니까.


초등학교 가서야 집에서 생일상을 차려놓고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 하는 문화가 있는 바람에 나는 왜 다른 애들처럼 안해주느냐고 떼를 써대서 몇번 생일상을 받긴 했었다. 그것도 고학년이 되면서 용돈을 두둑히 받는 문화로 변하면서 엄마가 내 생일을 기억하는 일은 좀처럼 없게 되었다.


그게 나는 내심 서운했던걸까. 생일이 별거냐는 엄마의 생각에 반발하듯 나는 매년 생일을 특별히 보내고 싶어 발악을 했다. 생일이 다가올 수록 친한 친구들에게 기대하고 어떻게 보내야 제일 특별한 하루로 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보니 기대한만큼 생일이 특별하지 않거나, 오히려 생일에 안좋은 일이 일어나면 평소같이 쉽게 이겨내지 못하고 더 우울해지곤 했다.


행복해야하는 생일에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불행해지다니. 이건 잘못됐다는 생각에 나도 점점 엄마처럼 생일이 별거냐고 되내이며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려했다. 그러다 이렇게 스스로 생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독이게 된 나 자신이 서러웠던걸까. 생일날이 다 지나가던 어느 밤에 이번 생일도 역시나 미역국 못얻어 먹는다며 엄마한테 물었다. 나 돌은 챙겨주었느냐고.


“그럼 챙겼지. 힘들어 죽겠는데 너네 아빠가 돌잔치해야된다며 사업하면서 알게되는 사람들까지 다 초대해서 음식하느라 죽는줄 알았어. 니네 큰엄마가 안도와줬으면 진짜 하다 죽었을거야.“

자수성가하셨던 아빠는 나 어릴적 사업을 키우느라고 일절 육아에 참여하셨던 적이 없었다. 나와 내동생 둘다 태어나던 날에도 아빠는 결코 엄마한테 따스한 말한마디 할 줄 모르셨다. 그러던 아빠가 돌잔치를 해야된다며 사람들을 초대했던 것도 우리를 위한 것보다 사업상의 이유가 컸을 것이다. 그런 아빠가 원망스러운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런게 우리를 위한 아빠의 책임감이고 사랑이라는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당시 엄마의 외로움과 서글픔은 몰랐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던 날 어떤 기분이었을까. 힘겨운 고통을 이겨내고 겨우 엄마가 되었는데 엄마가 된 날에 엄마는 충분한 축하를 받았을까. 고생많았다는 위로도 엄마가 고통스러웠던 만큼 받았을까. 그러지 못했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런 생각들이 돌잔치 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잊혀지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비로소, 그때서야 마침내 떠올랐다.

어쩌면 엄마는 아빠를 이해하니까 엄마의 서러움과 외로움을 이겨내기위해 우리의 생일을 잊어낸게 아닐까.


나는 자라면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그래서 그만큼이나 우리를 홀로 키우면서 느꼈을 엄마의 외로움과 서글픔을 위로해주고 싶다. 내가 엄마의 당시 마음을 위로해주어야 엄마도 온전히 우리의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내가 언젠가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달래주는 생일을 맞이하게 되면 그 생일이야 말로 나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만한 특별한 생일이 될거라는걸 막연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덜 큰 나는 서툴고 방법조차 잘 찾지 못하는, 때론 여전히 서운함도 느끼곤 하는 불효녀다. 언젠가 꼭 나도 “특별한” 생일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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