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1

by 정자까야


겨울아. 네 손님 또 왔다. 이쯤되면 한 번 만나줘야 하는 거 아니니?


동료 언니가 겨울을 지나치며 말했다. 겨울과 동료는 가벼운 웃음을 주고 받았다.


겨울도 알고 있었다. 오늘도 비슷한 시간대 출근 도장 찍은 그 분. 한 달 전인가..오래전 개그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닉네임으로 겨울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다시 매장을 찾더니 이후 거의 매일 퇴근 후 커피를 마시러 왔다. 처음에는 와서 커피만 마시고 가더니 점점 익숙해졌는지 노트북을 들고 와 꽤나 오랫동안 작업도 했다.


닉네임은 평이한 것으로 바꿔 겨울은 다소 아쉬웠다. 겨울은 조용한 편이었지만 웃음이 많았다. 재미와 감동 중 단연코 재미였다.


퇴근후어때요님..이라..혹시 그 분인가..생각하면서 겨울은 주문 내용을 불렀다,


퇴근후어때요님 유자민트티 나왔습니다.


그리곤 정말 그 사람이 일어나 오는데 갑자기 겨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고객은 겨울 앞에 오더니..


닉네임 별로죠? 창의력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혹시 오늘.. 퇴근 후 잠깐 얘기나눌 수 있을까요?


겨울은 가슴이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고객은 예상했다는 듯이, 아니 예상은 했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아쉅다는 듯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고객은 잠시 후 티를 다 마시곤 자리를 정리했다.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뜨거운 티에 혀라도 데인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겨울은 그 날 그 고객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매장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이 애처로워 일하다 말고 나가 잡고 싶을 정도였다. 너무 매몰차게 대한 건 아닐까..이상한 사람 아닌 것 같던데 그냥 만나서 매장에서 이러시면 안된다고..저한테는 소중한 직업 현장이라고..그렇게 말하면 될 일 아니었나..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자신은 사귀는 사람 있다고..그리 말하면 됐을것을..그런 생각이 맴돌았다. 주문이라도 많았으면 일하느라 잊었을텐데 그날따라 고객도 많지 않았다.


그 장면을 봤는지 잠깐 허공을 보고 있던 겨울의 허리를 동료 언니가 툭 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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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은근히 그 고객이 신경쓰여 일하는 와중에 매장 안을 둘러보곤 했다. 특이한 닉네임이 있으면 심장이 괜히 두군거렸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이주 정도 지났을까. 고객이 뜸한 시간대. 동료 언니와 이런저런 얘길 하고 있는 중에 사이렌오더로 아메리카노 한 잔이 주문됐다..


어컵오브커피님..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매장에 일어나는 고객이 없었다.


겨울이 다시 한 번 호명하려는 순간 매장 문을 열고 그 고객이 들어왔다.


그리곤 좌석 사이를 비켜가며 음수대 앞으로 가더니 냅킨 하나를 꺼내 겨울에게 다가왔다. 겨울 앞에 선 그는 양복 안에서 펜을 꺼내더니 냅킨에 적어 겨울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플리즈...


웃음이 터져 손으로 입을 막고 고객을 쳐다보자 고객도 웃으며 말했다.


어컵오브커피, 플리즈...댓츠 올 아임 에스킹 포..(A cup of coffee. Please. That's all I'm asking for)


커피 한 잔 만요. 더 귀찮게 안할게요...부탁드립니다..


겨울은 영어로 프리 토킹이 가능했고 고객의 영어를 물론 알아들었다. 하지만 순간 놀란 건 사실이었고 왜 갑자기 영어로..영어가 더 편한 교포인가..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웃었다는 사실이고 웃음은 때로 어려운 결정을 쉽게 만드는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이 된다.


그녀는 그에게 펜을 빌려달라고 해서 플리스..아래 적었다. 기다려주세요. 동료에게 부탁해서 조금 일찍 마쳐볼게요.


겨울은 잠시 뒤 동료 언니와 무엇인가를 상의했고 퇴근 시간보다 조금 먼저 평상복으로 환복하고 나왔다.


고객은 다가오는 겨울에게 꾸벅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문을 나서며 픽업대의 동료 언니에게도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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