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2022년 5월 11일 서안지구 제닌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의 수색 작전을 취재하던 카타르 국영 알자지라 방송의 시린 아부 아클레(Shreem Abu Akleh) 기자가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팔레스타인계 미국 시민권자로 25년 이상 팔레스타인 분쟁을 전문으로 취재해 온 베테랑 기자였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동료 기자들은 아부 아클레가 기자임을 명확히 표시한 PRESS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기자에게 총을 발사한 적이 없다며, 그녀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유탄을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CNN 등 국제 언론은 현장 영상의 탄흔을 분석하고 그녀의 죽음이 이스라엘군의 조준 사격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2022년 12월 알자지라는 아클레의 사망 사건을 국제 형사재판소(ICC)에 제소했다. 미국 사법당국은 아클레가 미국 시민권자임에 따라 자체적으로 수사팀을 파견하겠다고 나섰다. 이스라엘은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2023년 5월 국제사회에 여론에 밀린 이스라엘군은 대변인을 통해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며 간접적으로나마 이스라엘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스라엘과 알자지라 방송의 갈등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다. 도하에 본사를 둔 알자지라는 아랍권의 독립 언론을 표방하며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 이에 따른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 언론 탄압 사례 등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이스라엘 입장을 불편하게 했다.
이스라엘은 알자지라 기자들에게 비자나 취재 허가를 취소하고, 이스라엘 내 지국을 폐쇄하거나 보도 장비를 압수하는 조치를 반복적으로 실시했다. 이스라엘은 알자지라가 하마스와 연계되어 있으며, 자국의 군사 작전에 방해가 되고 안보를 위협하는 선동 매체라며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알자자리에 대한 이러한 반목은 하마스의 정치국 사무소가 카타르에 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1987년 1차 인티파다 중 창설된 하마스는 PLO와 다름없이 팔레스타인에서의 활동이 어렵게 되자 요르단으로 이동하여 암만에 정치국 사무소를 두고 해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정치국 사무소를 지휘한 이가 이스라엘의 독극물 암살 시도를 모면한 칼레드 마샬 국장이었다.
1999년 하마스의 존재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요르단은 하마스에게 요르단에서 철수할 것을 통보하고, 하마스는 정치국 사무소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이전했다. 칼레드 마샬 정치국장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다마스쿠스 활동을 계속하던 중 2012년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고 하마스가 반군을 공개적으로 지원함에 따라 시리아 정부는 하마스 사무소를 폐쇄했다. 마샬 정치국장은 카타르의 지원으로 하마스 정치국 사무소를 도하로 이전했다.
하마스 카타르 정치국 사무소는 현재도 하마스 해외 활동의 거점이자, 휴전 협상이나 인질 교환 협상 등에서 하마스의 대외 소통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이 사무소를 통해 국제 사회에 테러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여 협상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휴전 협상이나 인질 석방 협상도 하마스는 카타르 사무소가 협상을 대표한다.
2024년 11월 미국은 하마스가 휴전 협상을 거부하자 카타르 정부에 도하 정치국 사무소에서 활동하는 하마스 지도부를 추방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카타르 외교부는 현재 도하에는 하마스 지도부가 없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일축하고, ‘협상이 없으면 사무소도 없는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하마스 카타르 정치국 사무소가 일종의 필요악과 같은 존재다.
2024년 4월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국가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되는 외국 언론사에 대해서는 행정명령으로 지국을 폐쇄하거나, 인터넷 서버와 웹사이트 접속을 차단할 수 있다는 ‘외국 언론 규제법’(소위 알자지라 법)을 통과시켰다.
2024년 5월 이스라엘 정부는 알자지라를 ‘하마스의 대변인’이라고 비난하고, 언론 규제법을 발동하여 예루살렘 지국을 폐쇄하고 방송 장비를 압수했다. 2024년 9월에는 서안지구의 알자지라 라말라 지국을 급습하여 45일간 활동 중지를 명령했다.
알자지라는 이스라엘의 라말라 지국 행정처분 현장 상황을 생중계하고, 국제 언론 단체와 외신기자협회 등은 이스라엘의 조치가 언론 통제 행위로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2025년 8월 알자지라 기자 5명이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 인근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사망한 기자 중 일부 인원이 기자를 가장한 하마스의 조직원이었다며 공습의 정당성 주장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일부 중동 국가로부터도 하마스 등 무장세력에 대해 편향된 보도를 한다는 이유로 방송 송출 금지나 지국 폐쇄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2025년 1월, 자치정부 보안군은 서안지구에서 하마스 연계 무장세력 ‘제닌 대대’가 일대 난민촌을 대상으로 하마스를 지원하자고 무력시위를 한 것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때 알자지라 방송은 제닌 대대 무장세력의 주장에 동조하고 자치정부의 진압을 동족을 탄압하는 행위라고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이에 자치정부는 알자지라가 팔레스타인을 분열시키는 선동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며, 방송 송출과 기자 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 이집트 등도 과거 알자지라가 테러의 배후에 있는 이란을 우호적으로 보도하고, 무슬림 형제단이나 하마스 등 테러집단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방송 송출을 차단한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7년 카타르가 테러 지원국인 이란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무슬림 형제단 등 테러 단체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카타르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전면적인 경제 제재를 단행하며 국경을 봉쇄하여 카타르를 고립시킨 바 있다.
이러한 조치는 카타르 국왕이 “이란은 지역의 안정과 이슬람 세력을 대표한다”라고 발언했다는 알자지라 보도가 촉매가 되었다.
카타르 정부는 알자지라의 해당 보도가 해킹에 의한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은 알자지라를 ‘테러 선동 방송’으로 규정하며 위성 송출을 중단하고 기자들을 추방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카타르에 대한 봉쇄 조치를 해제할 조건 중의 하나로 알자지라 방송국을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알자지라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중동 국가들의 이러한 주장을 ‘진실 은폐 시도’라고 규정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국제 언론 단체들도 알자지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가 정치적 목적의 언론 통제라고 비판하며 보도의 자유와 매체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알자지라는 중동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언론의 역할과 한계를 시험받고 있으며, 그 보도의 방향과 논점에 관한 평가는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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