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이스라엘 전쟁 : 지속 가능한 해법은 무엇인가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알-아크사 폭풍 작전


2023년 10월 7일 오전 6시 30분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례 없는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하마스의 공격은 이전의 무력 충돌 때와는 달리 충격적이고 파괴적인 수준이었다.


하마스는 알-아크사 폭풍(Al-Aqsa Storm)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지역에 5,000여 발의 로켓을 발사하고, 6,000여 명의 전투원을 패러글라이드, 차량, 오토바이, 땅굴을 이용해 분리 장벽을 통과하여 이스라엘 남부 지역으로 침투시켰다. 전투원들은 키부츠 레임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바 음악 축제에 난입하여 축제 참가자들을 무차별 사살하고 수십 명을 납치해 갔다.


전투원들은 인근의 다른 키부츠에도 들이닥쳐 같은 방식으로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납치했다. 키부츠 베에리, 키부츠 카파르 아자, 키부츠 니르 오즈가 하마스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키부츠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집단 농업 공동체로,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민들은 토지와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공동 식사, 공동육아, 공동 노동의 방식으로 생활하며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실천한다. 이스라엘 전역에는 270여 개의 키부츠가 있고 거주민은 1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마스가 키부츠를 공격한 것은 이스라엘 고유의 전통 공동체를 파괴했다는 상징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스라엘은 10월 7일 하루 동안에만 1,195명(민간인 736명, 군인 379명)이 사망하고, 3,400여 명이 부상했으며, 251명이 납치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하마스가 여전히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무장 조직이라는 점에 경악하고 분노했다. 서방 국가 중 44개국 이상이 즉각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테러 행위로 규탄했다.

2023년 10월 8일 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 주재로 긴급 내각회의를 열어 하마스에 대한 전쟁을 결의하고, 하마스의 모든 무장 거점을 완전히 파괴할 목표로 ‘철검’(Iron Swords) 작전을 시행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고, F-35 전투기를 증강하는 한편 제럴드 R. 포드 항모전단을 동지중해로 이동시켰다.


국제 사회는 이란의 개입과 중동 전역으로의 확전을 우려했다.



하마스 지도부 제거 작전


이스라엘은 우선 첨단 무기를 활용한 정밀 표적 공격으로 하마스 지도부 제거 작전에 돌입했다. 이는 헤즈볼라, 이란 등 잠재적인 하마스 지원 세력을 선제 타격한다는 의도이기도 했다.


2024년 1월 2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베이루트 외곽 다히예에서 활동 중인 하마스 지도자 살레 알 아루리를 드론을 이용하여 정밀 타격하여 제거했다. 그는 하마스 정치국의 2인 자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기습공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루리는 1차 인티파다 중 하마스에 가담하여 군사 조직 '알카삼 여단'을 창설하고 1992년 오슬로 협상을 반대하며 무장 투쟁을 주도하다 이스라엘에 체포되어 15년 동안 수감된 인물이었다. 출옥 후에는 레바논에서 활동하며 하마스-헤즈볼라 연대를 주도하여 헤즈볼라 주재 하마스 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5년 미국 국무부는 그를 국제 테러 용의자로 지정하고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아루리를 제거한 것은 기습공격에 대한 보복과 함께 하마스-헤즈볼라와의 연결망을 끊어 헤즈볼라의 개입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할 전략이었다.


2024년 4월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하여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장교 여러 명을 폭사시켰다. 이스라엘은 이 작전이 하마스와의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근접하며 자국에 위협을 가하고 있음에 대한 선제적 대응(preemptive strike)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란이 이스라엘 핵시설 관련 기밀을 빼갔다는 첩보가 공습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 이란 영사관을 공습한 것은 이란이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 반이스라엘 민병대 조직(저항의 축)을 지원하고 있고, 시리아 주재 영사관이 민병대 조직의 작전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에 따른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스라엘의 영사관 공격을 받은 이란은 사상 최초로 자국 영토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미사일 수 백기를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미국, 영국, 프랑스의 지원하에 공중 방어망을 가동하여 대부분의 이란 미사일을 요격했다.


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스라엘은 F-35 전투기를 발진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여 이란 서부의 혁명수비대 기지, 미사일 발사대, 통신 · 지휘 시설 등을 정밀 타격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에게 확전 자제를 요청하고, 이란이 다시 보복 공격을 할 경우 미국이 직접 개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국은 일단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4년 4월 10일 가자지구 북부 알샤티 난민촌에서 하마스 최고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의 아들 세 명이 이스라엘의 정밀 공습으로 사망해다. 이들은 라마단 종료를 축하는 ‘이드 알 피트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차량에 탑승하던 중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것이었다. 같은 차량에 있던 하니예의 손주들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하니예의 아들들이 하마스 군사 조직의 지휘관이거나 대원들로 이스라엘군에 대한 테러를 지휘하거나 실행 중이었다고 주장했다.


2024년 7월 31일 이스라엘은 아들들에 이어 최고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도 표적 공격으로 살해했다. 하니예는 이란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뒤, 테헤란 외곽의 이란 정부 인사 관저에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 관계자들과 회동 중이었다. 관저는 이란 정부의 비밀 보안 장소였으며, 이란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관저의 존재나 하니예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밤 10시경 하니예가 회의실에서 나와 정원으로 이동하던 순간, 고고도 미사일이 관저 건물을 정밀 타격했다. 폭발음은 테헤란 시내까지도 들릴 만큼 엄청나, 주민들은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착각하여 대피할 정도였다. 하니예는 현장에서 폭사했다. 함께 있었던 경호원들과 하마스 요원들도 사망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격이 자국 영토에 침략 행위라며 보복을 경고했다. 하마스는 ‘순교자의 피는 저항의 불꽃이 될 것’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최고 지도자 하니예의 죽음은 하마스에게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스마엘 하니예는 하마스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 가자지구에서는 최고의 지도자로 추앙받아왔다.


하니예는 1962년 1월 29일 가자지구 알샤티 난민촌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1948년 1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난민이었다.


그는 UNRWA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자의 이슬람 대학교에서 아랍어 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학생회 활동을 통해 하마스 창설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과 친분을 쌓고 1988년 1차 인티파다에서 하마스 대원으로 참여했다.


2004년 야신이 사망한 후 하마스 지도부의 일원으로 부상했으며, 2006년 하마스가 총선에서 파타를 누르고 승리한 후 자치정부 총리로 선임되었으나 파타가 이를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자치정부와 단절하고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2017년 하니예는 야히야 신와르에게 가자지구 통치를 넘기고 자신은 하마스 정치국 의장 직책으로 카타르와 튀르키예 등 해외에서 활동하며 아랍 국가 내에서 하마스의 지지를 확보하는 외교 채널 역할에 전념해 왔다.


하니예를 이어 가자지구를 통치해 온 야히야 신와르도 이스라엘의 정밀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신와르도 야신과 다름없이 이스라엘에 수감되어 25년간 복역하다 석방되어 하마스 최고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1980년대 하마스의 보안 조직을 운영하며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하마스 내부 인물을 색출하여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이스라엘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인 그는 2011년 하마스가 납치하여 5년간 억류한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 병장과 하마스 수감자들의 교환 석방 협상으로 석방되어 가자지구로 돌아왔다.


2006년 6월 25일 하마스 무장 대원들은 300m 길이의 땅굴을 통해 이스라엘 남부 케렘 샬롬(Kerem Shalom)에 침투하여 이스라엘 병사들을 공격하고 그중 부상한 샬리트 병장을 납치해 갔다.


하마스는 샬리트 병장의 생존 영상과 녹음을 공개하며 그의 석방 조건으로 이스라엘에 수감된 하마스 요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집트가 중재한 협상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수감자 1,027명과 샬리트 병장을 교환 석방하는데 합의했다. 이때 석방된 하마스 수감자 중 한 사람이 신와르였다.


2024년 10월 17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남부 라파 인근 지하터널에 숨어 이집트로의 탈출을 시도하던 신와르를 인근 아파트 건물에서 포착하여 포격으로 사살했다. 이스라엘군은 DNA 검사를 통해 사살된 인물이 신와르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영상은 신와르가 파괴된 건물 안에서 얼굴을 천으로 가린 채 접근하는 이스라엘군 첩보 드론을 향해 막대기를 휘저으며 저항하고 있었다. 그는 오른팔을 철사로 동여맬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드론의 표적 신호에 따라 발사된 이스라엘군의 전차 포탄을 맞은 건물 파편 더미에 묻혔다.


이스라엘은 신와르를 ‘겁쟁이’, ‘굴 속 도망자’ 등으로 묘사하고, 손가락이 잘린 시신 사진을 전단으로 뿌리는 등 하마스의 전의를 흔드는데 활용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신와르의 마지막 장면을 확대하여 ‘최후의 순간까지 적에 저항한 순교자’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의 분노와 저항 의지를 고조시켰다.


이스라엘은 신와르의 가족이 명품 가방을 들고 땅굴로 피신하는 영상을 공개하며 여론의 반전을 시도했으나 하마스는 이를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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