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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오프닝처럼

김현식과 김장훈의 건조함이란..

by 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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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도 젖지 않는 날개를 갖고 태어나는 나비처럼. 젖지 않는 나래를 퍼덕이며 살아가는 나비 같은 삶이 김현식 같습니다.

퍼붓는 거리에서도 그의 노래는 종이인 듯 바스락거립니다. 헤어지는 길처럼 서럽게 갈라집니다. 그래서 비처럼 음악처럼은 우요일에만 들리는지 몰라요.


김소연 시인이었나요...

"비 오는 거리도 모자라/제 눈물까지 /이불처럼 덮고 사는 여자/ 햇빛 가득한 날에도

슬픔이 드러나는 여자라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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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김장훈 "햇빛 비추는 날"


시인 김소연의 <이 지구가 우주의 도시락이라면>은 비 오는 날의 걸작입니다. 사랑인 줄 몰랐다가 떠난 뒤에 터져 나오는 고백처럼. 내 사랑인 고모가 작고하신 날 우주가 곡哭을 합니다.

고모가 사는 도시로 출장 갔을 때 특유의 걸음걸이로 마중 나와서 밥 사주고 때마침 수확철인 체리를 터지도록 먹여주고...

이름 난 집이라며 사 준 조지타운 거리의 스테이크는 소태 같았지만 그 짠맛조차 그리워져버린 마지막 날.

나의 고모 민지희가 한창 걸어가고 있을 길은 지금 어디쯤일까. 하고픈 말, 해야 할 말 참고 살았던 고모의 층계들이었겠으나 지금 가는 천국의 계단은 가파르지 않겠지, 응.?

보고 싶어요, 고모.

...




< 김소연- 이 지구가 우주의 도시락이라면 >



긴 손가락으로 애써 박아 넣은 보름달이 내려앉아요

이 지구가 우주의 난간이라면

나는 지금 펄럭이는 하얀 빨래의 위치에 서 있죠

정이 들도록 오래 머물지 않고

빨래를 걷어 쉽게 떠날 수 있다니 한참이나 기쁘죠


토요일엔 지도를 펴 보겠어요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한 후엔

꼭 필요한 것만 배낭에 넣고서 다른 생으로 넘어가야죠

이 지구가 우주의 간장 종지라면 오늘은 저 별들을 찍어 먹을래요

이 지구가 우주의 눈물 한 방울이라면 오늘은 우산을 쓰고 초원으로 가야죠

표범을 타고 날뛰며 새로 산 초록 머플러를 휘날려야죠


아-

입을 벌린 먹장구름이 지구별 세척을 마치고 가는 새벽

주인집 아주머니가 가마니 속 젖은 콩들을 테라스에 쏟아놓고 말려보며

별 하나에 콩 하나와 콩 하나에 추억 하나를 세어봅니다


토요일엔 아주머니

식구처럼 키워온 양들을 팔러 시장에 나가보세요

제일 어린 양 한 마리는 남겨두세요

그날 저녁은 새끼 고양이 바베큐로 파티를 열어주세요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으며 늑대처럼 씩씩하게 뜯어 먹게요


일요일엔

치즈를 말리러 지붕에 올라가겠죠

이 지구가 우주의 도시락이라면 치즈 한 덩이는 지도에 싸서

배낭에 넣고 떠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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