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면허 강의를 듣던 날이었다. CPR 교육 시간이 되자 강사는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심정지 상황에서 빠르게 CPR을 시행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수강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 찬 눈빛들이었다.
강사는 마네킹을 꺼내며 밝은 목소리로 시범을 보였다. "자, 이렇게 손을 깍지 끼고 가슴 정중앙을 누릅니다. 분당 100-120회 속도로요!" 다른 수강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하려 했다. 몇몇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마네킹의 가슴을 누르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내 귀에는 다른 소리가 겹쳐졌다.
가슴을 압박하면서 내뿜던 거친 숨소리, "하나, 둘, 셋..." 세던 떨리는 목소리, 심전도 모니터의 날카로운 경고음. 심장 리듬이 돌아올까 절망적인 기대와 긴장감이 다시 밀려왔다. 손바닥 아래로 전해지던 갈비뼈가 부러지는 그 둔탁한 느낌까지.
나는 묘하게 불편했다. 팔짱을 낀 채 마네킹을 바라만 봤다.
" 수강생님, 같이 해보시죠?" 강사가 나를 지목했다. 다른 수강생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와중에 나만 뒤로 빠져 있으니 눈에 띄었나 보다.
"먼저 진짜 심정지 상황인지 확실히 확인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퉁명스러웠다. "잘못하면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집니다.“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강사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방금까지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기술"이라며 열변을 토하던 그의 입가가 살짝 경직됐다.
"네... 물론 확인은 중요하죠." 강사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일단 시도하는 게...“
"일반인이 잘못 판단해서 멀쩡한 사람한테 CPR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내가 끼어들었다.
강사가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차가워졌다. 다른 수강생들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희망적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 수강생님은 CPR에 대한 감정이 있는 분 같네요." 강사의 말투가 조심스러우면서도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혹시 관련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는 더 이상 나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수강생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자, 다른 분들은 저를 따라 해보세요." 의도적으로 나를 배제하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희망적인 기술일지는 몰라도 CPR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게는 트라우마였다.
일반인들은 뉴스를 통해 CPR의 성공 사례만 접한다. 젊은 사람이 갑자기 쓰러졌는데 지나가던 시민이 CPR로 살렸다는 미담. 댓글은 늘 찬사 일색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내 입장은 다르다.
병원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시행하는 CPR은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 이미 중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설령 심박동이 돌아와도 저산소성 뇌 손상, 갈비뼈 골절로 인한 폐 손상 등 후유증이 남는다. CPR로 소생해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빨리 뛰었던 기억도 CPR 콜 받았을 때였다. 외래 진료 중 병동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방금 입원시킨 정신과 환자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환자는 "사람들이 감시한다", "외계인과 대화한다"며 며칠째 잠을 못 자고 있었다. 급성 정신병 상태로 입원 치료가 필요했다. 보호자 동의를 받아 입원시킨 지 한 시간도 안 됐을 때였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즉시 CPR을 시작했다. 다행히 병동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빠른 조치가 가능했다. 십여 분 만에 심박동이 돌아왔다. 하지만 저산소성 뇌 손상은 피할 수 없었다.
그 후 3년간 재판이 진행됐다. 병원 측이 상당한 치료비와 간병비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나는 증인으로 출석했고, 상대 변호사로부터 후안무치한 의사라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과연 그때 CPR을 했어야 했을까?
재판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환자가 사망했을 때와 살아서 평생 간병이 필요한 경우를 비교하면, 유감스럽게도 후자의 비용이 훨씬 컸다. 자살 시도였기에 본인 과실도 인정되어 가족의 부담은 더욱 컸다. 몇 년, 어쩌면 몇십 년이 될지 모르는 간병에 가족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답이 없었다.
떡이 목에 걸려 심정지가 온 환자도 있었다. CPR로 살렸더니 10년간 연락 없던 먼 친척이 나타나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상당한 액수의 보상비를 요구했다. 환자는 부작용이 경미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불만인 것 같았다. 내가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는 길에서 잠시 실신했을 뿐인데, 지나가던 누군가의 과도한 CPR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 손상으로 돌아가셨다. 불필요한 CPR이 오히려 죽음을 부른 것이다.
지금도 병원에서 코드블루(심정지 응급신호)를 들으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내 환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 특유의 경보음이 울리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심장이 빨라지고, 손에 땀이 난다. 다시 그 병실로 뛰어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압박하던 가슴의 탄력이 손바닥에 되살아나고, 인공호흡을 불어넣던 그 절박함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의 느낌조차도 생생해진다. 그리고 이내 좌절감이 스쳐 지나간다. CPR을 들으면 나는 생명보다 죽음을 먼저 떠올리게 됐다.
나는 한동안 뒤에 서서 지켜만 봤다. 다른 수강생들이 하나둘 실습을 마치고 돌아갔다. 강사는 내게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격증을 따려면 어쩔 수 없었다.
"저도 하겠습니다.“
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서 '드디어'라는 안도감이 읽혔다. 나는 마네킹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기계적으로 가슴압박 30회, 인공호흡 2회를 수행했다.
"네, 합격입니다." 강사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설령 CPR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나는 정말 모르겠다.
제발 내 앞에 CPR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